더 이상 텃밭 아니다? 민주당 ‘호남 위기론’ 실체는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5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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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파동 영향에 호남 14%P ‘뚝’…野 “실망해 회초리 든 것”
이낙연 ‘서진 정책’에 이재명도 긴장…‘긴급 대책’ 마련 지시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으로 불렸던 호남 민심이 심상치 않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호남의 민주당 지지세가 크게 꺾였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줄어든 지지율이 모두 여권으로 옮겨간 것은 아니다. 이에 공천 파동 등에 따른 ‘단기적 하락세’란 시각도 있다. 다만 야권 일각에선 ‘긴장을 놓을 수 없다’는 불안감도 감지된다. 일부 비이재명(비명)계 의원들과 이낙연 새로운미래 대표가 ‘진짜 민주당’을 기치로 내걸고 ‘호남 공략’에 속도를 붙이기 시작하면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가 28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가 28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천 파동’ 영향? 차게 식은 호남 민심

민주당에게 영남이 그렇듯, 보수정당에 호남은 뚫기 어려운 요새와 같았다. 그만큼 민주당 지지세가 두터운 지역이다. 정권 교체, 총선 승패와 관계없이 호남의 표심 상당수가 민주당을 향했다. 그런데 22대 총선을 앞두고 호남 민심에 ‘적신호’가 켜진 모습이다. 정권심판론과 맞물려 더 공고화될 것이라 전망됐던 호남의 민주당 지지세가 하락하는 양상이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7~29일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이달 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국민의힘은 전주(37%)보다 3%포인트(p) 올라 40%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같은 기간 2%p 내린 33%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당의 최대 지지 기반인 광주·전라 지역의 지지율이 53%로 전주(67%)보다 14%p 떨어졌다. 이렇게 이탈한 민심 상당수가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층’으로 변모했다. 같은 시기 호남 지역에서 자신을 무당층이라고 답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 중 26%로 10%였던 전주에 비해 16%p 급증했다.

정치권에선 최근 잇따라 불거진 ‘비명계 공천 학살’ 논란이 민심을 악화시켰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여론조사 전문가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은 “광주와 호남은 대한민국에서 전략적 의사 결정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라며 “갤럽조사에서 호남의 무당층 응답률이 크게 오른 것을 유의깊게 봐야 한다. DJ(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였던 설훈 의원의 탈당과 친문계 홍영표 의원의 탈당 예고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호남의 ‘진정한 민심’을 두고는 민주당내 분석이 엇갈리는 양상이다. ‘정권 심판론’이 여전히 적지 않다는 점을 근거로 호남이 민주당에게 일시적인 ‘사랑의 매’를 들었다는 분석과, 민주당 지지층 중 상당수가 무당층이 됐다는 점에서 ‘낮은 투표율’을 걱정하는 시각이 공존한다.

수도권 지역구의 민주당 한 의원은 “더 크게 사랑하는 만큼 더 크게 실망하는 법이다. 호남이 회초리를 든다면 겸허히 종아리를 걷어야 한다”면서도 “(호남은) 부모의 마음이지, (민주당을) 버리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다른 야권 한 관계자는 “이들(호남 유권자)이 국민의힘을 지지할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면서도 “투표장에 나오지 않는 걸로 항의 표시를 할 수 있다. 호남 투표율이 떨어지면 민주당에는 악재”라고 짚었다.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가운데)가 4일 오후 광주시의회에서 총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가운데)가 4일 오후 광주시의회에서 총선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서진정책’ 본격화…민주 ‘전전긍긍’

일각에는 민주당의 위기가 이낙연 대표에겐 기회가 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정치권에는 공천에서 탈락하거나 ‘하위 10%’ 평가를 받은 의원들 상당수가 이낙연 대표와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는 후문이 파다하다. 이들이 ‘진짜 민주당’을 내걸고 호남 공략에 나설 경우 민주당으로선 또 하나의 악재에 직면하는 셈이다.

이낙연 대표도 당초 불출마 결심을 거두고 광주 출마를 선언했다. 이 대표가 이끄는 새로운미래 측은 인지도와 경륜이 있는 이 대표가 본격 유세전에 들어가면 ‘호남 바람몰이’가 충분히 가능하다 보고 있다. 이 대표는 4일 광주 서구에 위치한 광주시의회를 찾아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전남 시도민이 저에 대해 많이 아쉽고 서운해 하신다는 것을 잘 안다. 제가 부족한 탓”이라며 “부디 어머니 같은 고향의 마음으로 받아 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민주당 지도부에도 비상이 걸린 모습이다. 총선 승패의 가늠자인 수도권과 호남 민심이 동시에 흔들린다면 ‘총선 위기론’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다. 이에 이재명 대표가 직접 대책 마련을 주문하고 나섰다. 취재에 따르면, 이 대표는 전날(4일) 오후 지도부가 참여한 고위전략회의에서 전반적인 지지율 현황을 보고받은 뒤 ‘지역별 여론 심층 분석’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지도부 한 핵심관계자는 “분명 1~2달 전 여론조사 결과와 최근 발표되는 숫자는 차이가 있다”며 “다만 선거는 진다고 생각하는 쪽이 이긴다.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절박하게 정권 심판 필요성을 호소한다면 국민과 한 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사에서 인용한 여론조사는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통한 전화 인터뷰로 진행됐고 응답률은 15.8%,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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