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없는 ‘의대 증원’ 갈등, 총선 앞 與에 정말 호재일까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0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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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정부-의협 갈등 속 ‘의대 증원 2000명’ 찬성 여론 과반 육박
의료 대란 현실화 우려에 與일각 “대화 여지 차단은 말아야”

‘의대 증원 2000명’을 둔 정부와 의사 단체의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사상 초유의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경찰이 전공의 집단 사직을 교사했다는 의혹을 받는 대한의사협회(의협) 간부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시작했다. 총선이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여야 모두 이번 사태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당장 정부 여당에 호재가 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지만, 일각에선 사태가 장기화될 시 정부 여당에도 부담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6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월6일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의협 ‘배수진’…대치 장기화되나

7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의대 증원’을 임기 내 무조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참모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며 전공의들의 이탈에 응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대통령은 전날 세종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스스로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며 자유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며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불법 집단행동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증원 규모인 ‘2000명’을 두고도 정부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는 근거로 전국 의과대학이 내놓은 정원 신청서를 공개했다. 교육부에서 2월22일부터 3월4일까지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신청을 받은 결과, 총 40개 대학에서 3401명 증원을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들 모두 정부에 증원을 요청했다고 한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대학의 신청 결과는 평가인증기준 준수 등 의료의 질 확보를 전제로 2025년에 당장 늘릴 수 있는 규모가 2000명을 월등히 상회한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특히 비수도권 대학의 증원 신청 비율이 72%로 지역의료 및 필수의료 강화에 대한 지역의 강력한 희망을 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정부의 이 같은 입장에 의협은 “정부 압박에 따른 각 대학본부의 만행”이라고 반박했다. “정부는 의대가 속해있는 각 대학본부를 압박해 의대정원 증원을 신청하게 만들었다”는 게 의협의 주장이다.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은 ‘정부가 대학본부를 압박한 근거가 있느냐’는 질문에 “의대생들이 나서 의대 증원을 수용할 수 없다고 하고 의대학장과 교수들도 (의대 증원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는 상황에서 일부 학교는 현재 정원의 3~4배를 적어냈는데, 이것이 과연 대학 총장들의 순수한 판단에서 나온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협의 반발이 계속되자 정부도 칼을 빼들었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6일 피고발인 가운데 첫 번째로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을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의협 회장을 역임한 주 위원장은 ‘전공의 집단 이탈’과 관련한 의료법상 업무개시 명령 위반, 업무방해 교사·방조 등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지난 1일 의협을 압수수색해 의협 회의록과 투쟁 로드맵, 단체행동 관련 지침 등 자료도 확보했다.

미복귀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도 임박했다. 보건복지부는 5일 각 수련병원으로부터 전공의 7854명에 대해 업무개시(복귀) 명령을 불이행했다는 확인서를 받았다. 정부는 이들에 대해 추후 의료법에 따른 행정처분을 이행하기로 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국 40개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의 휴학 신청이 이어지고 수업 거부 움직임도 계속되는 가운데 4월6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강의실 복도에 의학서적과 의사가운이 널려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의대 증원에 반발해 전국 40개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의 휴학 신청이 이어지고 수업 거부 움직임도 계속되는 가운데 4월6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강의실 복도에 의학서적과 의사가운이 널려있다. ⓒ 시사저널 박정훈

피해는 국민이…與일각 ‘투트랙 대응’ 목소리도

정부와 의협의 ‘강대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보름을 넘기면서 전국 주요 병원들이 본격적인 ‘축소 운영’에 들어갔다. 의료계에 따르면, ‘빅5 병원’ 등 서울 주요 병원이 수술 건수를 50% 수준으로 축소한 데 이어 전남대병원 등 일부 지방병원은 수술 건수를 평소의 30% 수준까지 줄였다. 서울아산병원 응급실도 내과계 중환자실은 더 이상 환자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병원의 축소 운영은 환자들의 피해로 직결됐다.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따르면,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이 시작된 지난달 19일부터 5일까지 누적 상담 수는 916건으로 1000건에 육박한다. 환자들의 피해신고 접수 건수는 388건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먼저 협상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사들을 ‘강제 진압’ 하는 과정에서 환자들이 입게 될 피해가 너무 크고, 그렇다면 의대 증원 규모를 두고 협상에 돌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여야·정부·의료계 포괄 4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다만 이 같은 주장에 여당은 반발하는 모습이다. 되레 민주당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해결사 노릇을 자처했다는 비판이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5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의 눈에는 지금의 상황이 해결사를 자처함으로써 정치적 이익을 한몫 챙길 매력적인 기회로 보일지 모르겠다”며 “그러나 의료 개혁은 누군가에게 정치적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해 준비된 무대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정부와 의협의 갈등, 여야의 대립 속 ‘의료대란’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이번 사태가 ‘표심’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도 정치권의 관심이 쏠린다. 당장은 여권에 유리한 지형이 형성됐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응대 증원을 바라는 민심이 과반에 육박하면서다. 여론조사 업체 메트릭스가 연합뉴스와 연합뉴스TV 의뢰로 지난 2~3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 48%는 의대 정원에 대해 ‘2000명은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2000명보다 적게 늘려야 한다’는 36%,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11%, 모름·무응답은 5%였다.

다만 일각에는 의료대란으로 환자 피해가 급증할 경우 ‘대화’를 요구하는 민심이 더 커질 것이란 시각도 있다. 여권 일각서도 정부에 ‘투트랙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친윤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한 의원은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라며 협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앞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도 정부와 의협의 대화를 요청한 바 있다. 그는 지난달 19일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서로 대화해 국민을 위한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의대 정원을 늘려야 된다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 그런데 의사 집단이 거부하고 있다. 정부로선 ‘강공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명분을 쥔 것”이라며 “당장은 (정부의 강공 기조가)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총선이 있는) 4월 초까지 응급 체계마저 붕괴된다면 역풍이 불수 있다. 대화와 타협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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