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값이 미쳤다” 한 알 3000원 돌파한 ‘다이아’ 사과에 물가 초비상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8 10:00
  • 호수 1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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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대형마트·전통시장·슈퍼마켓·청과물 가게 둘러보니…
복합 요인에 과일 가격 속수무책으로 비싸져 소비자도 상인도 ‘한숨만’

3월9일 저녁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마트 과일 코너에선 실시간으로 탄식이 터져나왔다. 사과 가격 때문이었다. 한 중년 남성은 아내가 들어 보인 5개들이 사과 한 봉지 가격이 1만7900원인 걸 확인하고는 “아이고, 개당 3000원이 넘네”라며 혀를 내둘렀다. 부부는 한참 동안 사과를 살펴보다 결국 사지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20대 여성이 사과 가격표를 보고 “헐”이라며 외마디 비명을 지르자 옆에 있던 어머니는 “요새 다 이 정도 해”라고 알려줬다. 모녀 역시 사과를 ‘패싱’했다. 30대 주부 두 명은 농산물 검수 담당자라도 된 듯 나란히 서서 사과를 꼼꼼히 살펴봤다. 그중 한 사람은 쇼핑카트에 사과를 담으며 “비싸게 사놓고 맛없기라도 하면 큰일 나”라고 읊조리듯 말했다. 

3월9일 오후 서울 용산의 한 대형마트 과일 코너에서 소비자들이 사과를 살펴보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3월9일 오후 서울 용산의 한 대형마트 과일 코너에서 소비자들이 사과를 살펴보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3월9일 서울 용산의 한 대형마트 알뜰(할인 상품) 코너에 사과가 쌓여 있다. 할인해도 비싼 가격 탓에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시사저널 오종탁
3월9일 서울 용산의 한 대형마트 알뜰(할인 상품) 코너에 사과가 쌓여 있다. 할인해도 비싼 가격 탓에 좀처럼 팔리지 않았다. ⓒ시사저널 오종탁

진열대에 수북이 쌓인 사과는 지켜본 1시간여 동안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마트 직원이 바나나를 정신없이 채워놓고 잠시 숨을 돌리면서 사과 진열대를 멍하니 바라봤다. 알뜰(할인 상품) 코너에도 사과만 그득히 쌓여있었다. 할인해도 여전히 비싸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는 것이다. 사과 외에 1kg 1만4900원인 귤, 4~7개들이 한 박스가 2만3900원인 배도 찬밥 신세였다. 신용카드 할인행사에 들어간 딸기(할인가로 750g 8960원)나 개당 2980원인 태국산 망고 코너에만 발길이 몰렸다. 

대형마트뿐 아니라 골목상권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과값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가 있었다. 3월10~12일 돌아본 서울 광진구 일대의 슈퍼마켓 3곳과 청과물 가게 7곳, 전통시장 2곳의 사과 가격을 살펴보니 마트보다 저렴하긴 했으나, 소비자들의 기대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 슈퍼와 전통시장은 4~5개들이 한 소쿠리 1만원 정도에 사과를 팔았다. 카드를 받지 않고 현금 결제와 계좌이체만 할 수 있도록 한 동네 청과물 가게들의 사과 판매가도 대동소이했다. 어느 청과물 가게는 사과를 박스 단위로 팔면서 가격은 손님들이 부담을 느낄까 봐 아예 기재하지 않았다. 한 청과물 가게 주인은 “사과를 필두로 과일 도매가격이 전반적으로 대폭 올라 도무지 싸게 팔 수가 없다”며 “마진이 적은 데다 (손님들이 과일 구매를 꺼려) 매출까지 쭉쭉 떨어지니 본전치기만 하며 겨우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3월10일 서울 광진구 한 전통시장의 청과물 가게가 한산한 가운데 상인이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3월10일 오전 서울 광진구 한 전통시장의 청과물 가게가 한산한 가운데 상인이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시사저널 오종탁
3월10일 서울 광진구의 한 청과물 가게. 사과 가격표만 보이지 않는다. ⓒ시사저널 오종탁
3월10일 오전 서울 광진구의 한 청과물 가게에서 사과 가격표만 보이지 않는다. ⓒ시사저널 오종탁

국내 생산에만 의존하니 늘 불안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3월12일 기준 사과(후지·상품) 10kg당 도매가격은 9만1700원으로 1년 전(4만1060원)보다 123.3% 급등했다. 사과 도매가는 올해 1월17일(9만740원) 사상 처음으로 9만원을 넘어섰다. 이어 같은 달 29일 9만4520원까지 올라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고, 이후에는 9만원 선을 오르내리고 있다. 3월6일(9만1120원)부터는 9만원 선을 계속 웃도는 중이다. 대형마트와 골목상권의 물가가 반영되는 소매가격은 3월12일 사과 10개당 3만97원으로 전년 동기(2만3063원) 대비 30.5% 상승했다. 평년보다는 31.0% 높은 수준이다. 

사과값 폭등은 대한민국 전체 소비자물가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통계청이 3월6일 발표한 2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3.77(2020=100)로 1년 전보다 3.1% 올랐다. 농산물 물가가 20.9% 올라 전체 물가를 0.80%포인트 끌어올렸다. 지난해 8∼12월 3%를 웃돌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월(2.8%) 2%대로 떨어졌다가 한 달 만에 3%대로 올라섰다. 농산물 물가 상승률은 2011년 1월(24.0%) 이후 13년1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사과가 71.0% 올랐고, 사과 대체재로 부상해 소비가 늘어난 귤이 78.1% 뛴 영향이 컸다. 같은 기간 배(61.1%)와 딸기(23.3%) 가격 오름세도 가팔랐다. 

이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11월 이후 농산물 물가 관리에 만전을 기해온 노력을 무색하게 하는 결과다. 농식품부는 한훈 차관을 물가안정책임관으로 하는 농식품 수급상황실을 설치하고, 주요 품목의 가격과 수급 상황을 중점 관리해 왔다. 절대적인 물량 부족 문제가 워낙 중대한 탓에 정부 대책이 먹히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사과와 배 농사는 개화기 때부터 이상 저온으로 열매가 덜 맺히는 피해를 봤다. 여름에는 너무 덥고 비가 자주 와 생육이 부진했고, 가을 수확기 직전엔 탄저병까지 돌았다. 농촌 고령화로 문 닫는 과수원이 늘어난 점도 악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사과 생산량은 총 39만4428톤으로 2022년(56만6041톤)보다 30.3% 감소했다. 배 생산량도 26.8% 줄어들었다. 

현재로서는 가격 상승세가 단기간 내에 꺾일 여지가 없다. 즉각적인 상황 타개책으로 꼽히는 외국산 수입은 제도에 가로막혀 있다. 사과와 배의 경우 다른 과일들과 달리 수입되지 않는다. 정부가 병해충 유입 위험 등을 이유로 금지하고 있어서다. 만약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사과를 수출하려면 접수부터 최종 고시까지 총 8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에 사과 수출을 요청한 국가는 일본·미국·독일 등 11개국이다. 이 대열에서 가장 앞선 일본이 아직 5단계에 머물러 있는데, 이마저 9년 전에 프로세스가 멈춰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 밖에 국내 사과농가들의 이해관계도 수입을 어렵게 만드는 한 요인으로 거론된다. 

사과 수입 필요성이 대두되고, 이와 관련해 정부가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지는 데 대해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농산물 수입 절차는 전 세계 공통이다. 한 사례를 들자면 뉴질랜드로 우리 감귤을 수출하는 데 27년 걸렸다”면서 “우리 사과 시장을 보호하려고 일부러 (검역 협상을) 늦추는 게 아니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고 일축했다. 이어 사과와 배는 (7~8월에) 햇과일이 나오기 전까지 가격 강세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최소 4개월 이상은 ‘다이아 사과’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는 말이다. 

다만 송미령 장관은 “이달부터 기온 상승, 일조량 증가 등 기상 여건이 좋아지고 출하 지역도 점차 확대돼 (딸기, 토마토, 참외 등) 시설채소를 중심으로 농산물 수급 상황이 나아지면 사과, 배 등 과일 부족 문제 완화에 상당히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하다”며 “참외가 본격적으로 출하되는 4월까지 소비자가격이 높은 과일과 채소를 중심으로 전방위적 대책을 추진해 국민 체감물가를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농식품부는 사과와 대파 등 13개 품목 납품단가 지원 예산을 15억원에서 204억원으로 대폭 확대해 유통업체 판매가격에 직접 연동되도록 할 계획이다. 과일·채소 등 할인 지원 예산도 대폭 늘려 지원 품목을 확대하고 전·평년 대비 30% 이상 가격이 오른 모든 품목을 대상으로 할인율도 최대 40%가 적용되도록 할 방침이다. 아울러 국내 공급이 부족한 과일·채소는 할당관세 등을 활용해 해외 공급을 확대한다. 구체적으로 aT가 오렌지·바나나를 직수입해 저렴한 가격으로 시중에 공급하고 만다린, 두리안, 파인애플주스에 대해 추가 관세 인하를 적용할 계획이다. 

이 같은 정부의 의지와 노력에도 시장 불안은 잦아들지 않는 모습이다. 인터넷상에는 “연봉 1억원 이하면 과일에 손대면 안 된다”는 등 자조 섞인 네티즌 반응이 폭발하고 있다. 발 빠른 이들은 하세월인 정책 효과를 기다리기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냉동과일을 구매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냉동과일 수입량은 지난해 6만4000톤으로 전년보다 6% 증가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과일값 고공행진이 ‘뉴 노멀’이 된 상황에서 올해도 냉동과일 수입 증가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국내 최대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과일값 상승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는 글이 상당수 올라오고 있다. ⓒ네이버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
최근 국내 최대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과일값 상승으로 인한 고충을 토로하는 글이 상당수 올라오고 있다. ⓒ네이버 카페 ‘아프니까 사장이다

“사과값 괜찮아지면 다른 물가 폭등할 것” 

예측 불가능한 물가 흐름에 자영업자들도 패닉 상태다. 부산 사하구의 한 전통시장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임현자씨(가명·67)는 “과일이나 채소 가격이 비싸진 게 꼭 날씨 탓만은 아니다”면서 현장에서 인지하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환기했다. 그는 “일단 요새 하도 품삯(인건비)이 비싸서 아무도 농사를 안 지으려 한다”면서 “고령화와 1~2인 가구 증가 같은 사회구조 변화로 식품 수요가 근본적으로 줄고 있기 때문에 과일 물가가 잡힌다고 해도 다른 형태의 가격 지각변동이 얼마든 발생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자영업자는 국내 최대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인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글을 올려 “과일 가격이 내려가나 하면 또 채소가 비싸진다”며 “마트 갔더니 애호박 하나를 3000원에 팔더라. 예전에 800원 할 때가 있었는데,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다른 자영업자도 댓글에 “채소 괜찮아지면 축산물 (가격 폭등이) 시작될 거고, 축산물 괜찮아지면 수산물 시작하겠지”라고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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