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 물리친다는 사령에 빠진 10대 살인마들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7 12:00
  • 호수 1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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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관계인 대학생 유인해 계획적으로 살해
범인들, 포털사이트 ‘사령카페’ 회원으로 활동

연인 사이인 고등학생들이 가담해 끔찍한 살인극을 벌이고, 범행 과정이 공개되며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이들은 미신이나 주술 등 오컬트 문화에 현혹돼 있었다. 오컬트는 신비주의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을 추종하는 현상이다. 요술이나 주술, 예언, 악령 등을 믿고 따르는 것도 오컬트 문화에 속한다.

2012년 4월30일 오후 8시50분쯤, 주민 정아무개씨(35)는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창천근린공원(바람산 어린이공원)을 산책하다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20대로 보이는 남성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고, 그 주변에 젊은 남성 두 명이 서있는데 이 중 한 명은 흉기로 보이는 물건을 들고 있었다. 정씨는 범죄 상황을 직감하고 곧바로 112에 신고했다. 산책로는 서울 시내 최대 번화가인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불과 400여m 떨어진 곳이었다.

얼마 후 경찰이 출동해 보니 정씨가 말한 장소에 아무것도 없었고, 인근을 수색해 공원 내 수풀 속에서 피를 흘린 채 숨져있는 남성을 발견한다. 시신은 목과 배 등을 흉기에 수십 차례 찔려 일부 장기가 몸 밖으로 빠져나왔을 정도로 참혹했다.

2012년 5월8일 서울 서대문구 창천근린공원에서 대학생 김아무개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윤아무개군과 이아무개군에 대한 현장검증이 진행되고 있다. ⓒ뉴스1

대학생과 고교생이 벌인 참혹한 살인극

경찰의 신원조회 결과, 이 남성은 강원도 삼척시 소재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아무개씨(20)로 확인됐다. 신고자인 정씨는 경찰에 “김씨 옆에 서있던 남성 2명이 각각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회색 후드(모자)티를 입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목과 머리 주변을 노려서 찌른 데다 범행 후 4~5m 정도를 끌고 가 화장실 옆 비탈길에 시신을 버려두고 도망간 점, 피해자가 반항한 흔적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원한을 가진 면식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인근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범행 전후 장면이 녹화된 장면을 확보한다. 여기에는 용의자로 보이는 남성 2명과 여성 1명이 공원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그 뒤를 피해자가 따라가는 모습이 찍혀있었다. 1시간 후에는 남성 2명만 내려오는 장면이 찍혔다.

경찰은 이들의 인상착의를 확인해 유력 용의자를 특정하고 그들을 추적했다. 얼마 후 살해 현장에 있었던 고교생인 이아무개군(16)과 홍아무개양(15)이 인근 찜질방에서 검거된다. 또한 이들과 함께 있었던 대학생 윤아무개군(18)도 붙잡았다. 경찰은 범행에 가담한 대학생 박아무개씨(여·21)를 추가로 검거하며 용의자들의 신병을 모두 확보했다.

경찰 수사를 통해 이군과 윤군이 김씨를 살해하고 홍양은 망을 본 것으로 드러났다. 이군과 홍양은 사귀는 사이였다. 범행 사실을 알면서도 방조한 박씨는 피해자 김씨와 한때 연인 관계였다. 이들은 이렇게 얽히고설켜 있었고, 피해자인 김씨는 주말을 맞아 서울에 있는 집에 왔다가 변을 당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고등학생까지 가담해 이런 끔찍한 살인극을 벌인 것일까. 경찰 조사에서 이들 모두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사령(絲靈)카페’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자신을 수호해준다는 사령이란 것을 불러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소환하는 방법이나 경험 등을 공유하는 카페다. 이들은 ‘악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수호령’인 사령을 소환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회원 대다수는 10대 청소년들이다.

2011년 3월 김씨는 인터넷 게임 사이트에서 박씨를 만나 호감을 갖게 된다. 다음 해 1월1일 김씨는 박씨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박씨가 받아주면서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평소 김씨는 인터넷 게임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는 박씨와 연인이 된 후 자신의 블로그에 “처음 블로그 만들었을 때 그냥 합성 (그림) 저장용으로만 쓰일 줄 알았지만 다른 네티즌들을 만난 후로 점점 커져갔다”며 “수능이 끝나고 대학에 들어가 ‘노래하는 레카’(박씨 블로그 닉네임) 등을 만났다”고 적었다. 김씨는 박씨를 위해 블로그 프로필 사진을 직접 그려주기도 했다.

박씨도 자신의 지인들을 김씨에게 소개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살인에 가담한 이군과 홍양을 김씨에게 소개한다. 박씨는 인터넷 코스프레 카페에서 홍양을 알게 됐고, 홍양이 이군의 영어 과외를 박씨에게 부탁하면서 서로 알게 된다.

박씨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인터넷 음악밴드’ 스마트폰 대화방에 김씨와 이군, 홍양을 초대했다. 이들은 인터넷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서로 올리고 사이버 연주도 하며 친해졌다.

신촌 살인 사건 가해자 이아무개군과 홍아무개양이 코스프레 모델로 나선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여자친구를 카페에서 탈퇴시키려다 갈등 시작

평소 신비주의에 탐닉해 있던 박씨는 대화방과는 별도로 사령카페에 가입한 후 여기에 푹 빠져든다. 그는 자신이 악령계에서 인증을 받은 진짜 마녀이며, 치유마법과 영혼 소환의식 등을 포함한 영적인 능력을 쓸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박씨는 이군과 홍양도 카페에 끌여들여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김씨도 박씨의 권유와 호기심으로 사령카페에 가입했다.

그러나 김씨는 이내 사령카페의 분위기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회원들과도 갈등을 겪는다. 박씨의 경우에는 카페의 주도적 인물이 되어 갔고, 자신의 주장에 반하면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김씨는 박씨에게 사령카페에서 탈퇴하라고 설득하면서 마찰을 빚는다.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의 대립은 심해졌고, 급기야 참다못한 김씨가 결별을 통보한다. 박씨는 인터넷 음악밴드 스마트폰 대화방에서도 나갔고, 그가 나가자 김씨가 뒤를 이어 회장을 맡았다.

이때부터 박씨는 주변 지인들에게 김씨에 대한 극한 험담을 쏟아냈다. 4월24일 박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진심으로 니가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글을 올렸다. 또한 이군 등 가해자들이 참여한 대화방에서는 “네가 김◯◯을 죽이면 좋겠다”는 등의 글을 올려 살인을 유도했다.

이군과 홍양은 “김씨가 리더 자격도 없으면서 회장을 맡았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새로 대화방을 만들어 그를 집단으로 따돌리기 시작했다. 화가 난 김씨는 이군 등이 새로 만든 대화방을 “사령카페 소굴”이라 부르기도 하고, 이군과 홍양의 신상과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홍양에게 “이군이 질이 안 좋으니 헤어지라”는 문자메시지도 보냈다.

이군은 자신의 블로그와 스마트폰 메신저 서비스(틱톡) 등을 통해 김씨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을 토해 냈다. 범행 전인 3월에는 자신의 블로그에 ‘죽음 문답’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죽음이란 “누구나 겪어야 하는 마지막이자 최초의 관문”이라고 정의하며 “나는 3~4번 자살 시도를 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군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나’라는 문항에는 “몇몇”이라고 적었다.

이군은 또 틱톡에는 “김◯◯(김씨의 본명)을 죽여버려야겠다”거나 “이 일을 처리해 줄 사람이 있다”는 내용의 글을 수차례 올렸다. 이군은 또 홍양의 소개로 코스프레 카페에서 만나 가까워진 윤군에게 “김씨가 너무 싫어 죽이고 싶다”는 문자메시지를 자주 보냈다. 이군이 밝힌 ‘처리해 줄 사람’은 바로 윤군이었던 것이다. 이군과 윤군은 범행 계획을 구체적으로 모의했다. 사용할 흉기에서 피가 튈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계획까지 세웠다.

반면 김씨는 이군 등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했다. 이와 관련해 자신의 블로그에 “정말 미안하다. 어제 일이 하나도 기억 안 나”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범행 전날인 4월29일 김씨는 관계를 풀어보려고 이군에게 연락해 “그동안 심한 말을 한 것을 사과하고 컴퓨터 그래픽 카드를 주고 싶다”고 하자 이군은 다음 날 만나자고 했다.

이군은 드디어 범행 계획을 실행할 때가 왔다고 보고 윤군에게 “흉기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김씨를 뒤에서 제압해 주면 내가 흉기로 찌르겠다”고 말한다.

윤군은 범행에 사용할 과도와 접이식 칼, 전기선을 준비했다. 반면 김씨는 약속 장소로 나가면서 사과의 뜻으로 이군이 갖고 싶어 하던 ‘그래픽 카드’(5만원 상당)를 선물로 들고 갔다. 이군 등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김씨는 오후 8시13분쯤 친구에게 “골목길로 들어선다. 왠지 수상하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연락이 끊긴다. 김씨가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이군은 김씨에게 말싸움을 걸었다. 이때 윤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군에게 신호를 보냈고, 동시에 등 뒤에서 전선으로 김씨의 목을 조르자 이군이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김씨가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뒤로 넘어지자 공원으로 오는 길에 이삿짐 차량 밑에서 주운 쇠파이프로 머리를 내리쳐 살해한다. 이들은 김씨를 살해한 후 시신을 수풀 속에 은폐한 다음 그의 휴대전화, 노트북, 그래픽 카드, 현금 등을 절취해 도주했다.

범행 이후 이군과 홍양은 “내일 데이튼데 헤롱대면 때찌할거야”(이군), “내일 오빠 옆에서 자게 해줘~, 바보, 사랑해, 잘 자구, 내꿈꿔♥”(홍양) 등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등 살인에 대한 반성과 죄책감이 전혀 없었다.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가해자들의 블로그에는 네티즌들의 방문이 폭주했다. 특히 이군 등이 김씨의 목과 배 등을 40차례 이상 흉기로 찔러 잔혹하게 살해한 것을 두고 “악령을 쫓는 방법 중에 기를 담아 칼로 수차례 찍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보고 따라 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CCTV에 촬영된 피의자들과 이들을 따라가는 피해자 ⓒKBS 뉴스 캡처
CCTV에 촬영된 피의자들과 이들을 따라가는 피해자 ⓒKBS 뉴스 캡처

사건 이후 사령카페 강제 폐쇄 조치

이군 일당은 살인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재판부는 살인에 직접 가담한 이군과 윤군에게 각각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범행을 함께 모의하고 살인을 묵인한 혐의(살인 방조 등)를 받은 홍양에게는 징역 장기 12년, 단기 7년을, 박씨에게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흉기와 쇠파이프, 전기선 등을 미리 준비했고 피해자가 애원했는데도 잔인하게 살해했다”며 “‘카카오톡’ 메시지나 대화 내용을 봤을 때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는 피고인들의 주장과 달리 미리 계획한 범행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들이 범행 후에도 인터넷으로 기사를 보며 완전범죄를 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데이트를 약속하는 등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며 “다만 이들이 미성년자임과 성장환경을 감안해 법정 최고형보다 낮은 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 형량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김씨 유족 측은 가해자들과 그 부모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는 피해자 가족들에게 총 4억544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판결했다.

김씨의 전 여자친구인 박씨는 2019년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출소했다. 이 사건 이후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사령카페는 대부분 강제 폐쇄 조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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