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극처럼 인기 스포츠가 된 프로야구 스토리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7 10:00
  • 호수 1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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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구의 역사를 문화사로 풀어낸 《야구의 나라》
야구의 나라│이종성 지음│틈새책방 펴냄│328쪽│1만8000원
야구의 나라│이종성 지음│틈새책방 펴냄│328쪽│1만8000원

3월9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5개 야구장에서 열린 2024 KBO리그 시범경기에는 10경기 총 7만3862명의 관중이 입장해 전년 대비 70.2% 증가한 기록을 남겼다. 올해 프로야구 시즌은 12년 만에 KBO리그에 복귀한 류현진 투수가 등판하는 개막전 외에도 KIA, 롯데, SSG 3팀의 감독 교체 등으로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1982년 3억원에서 출발한 프로야구 중계권료는 2023년 현재 연간 760억원으로 올랐다. TV 방송사가 지불하는 중계권료는 1년에 540억원이며, 통신사와 인터넷 포털이 내는 유무선 중계권료는 한 시즌에 220억원이다. 프로축구, 프로농구, 프로배구의 한 시즌 중계권료를 모두 합쳐도 프로야구 유무선 중계권료에 미치지 못한다.”

왜 야구는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가 됐을까? 한양대에서 스포츠문화사학을 연구하는 이종성 교수는 이런 의문에서 출발해, 일제강점기부터 2000년대까지 야구가 국민 스포츠가 된 과정을 추적한 《야구의 나라》를 펴냈다. 이 교수는 야구가 태생적으로 국민 스포츠가 되기엔 불리했다고 운을 뗀다.

“우리나라의 ‘민족’ 스포츠는 누가 뭐라고 해도 축구다. 축구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일본을 꺾으며 민족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반면 야구는 일본이 만든 엘리트 학교에서 행해지던 전형적인 ‘금수저’ ‘귀족’ 스포츠였다. 조선인들이 하기엔 진입장벽이 높았고 일본과 대결해도 승산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사실 야구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 교수는 그런 야구가 국민 스포츠가 된 데는 엘리트들의 학연이 절대적이었다고 설명한다. 엘리트와 귀족을 상징하는 야구는 해방 이후에도 지역 명문교를 상징하는 스포츠가 됐다. 학창 시절 야구에 열광했던 엘리트들은 모교의 야구를 지원했고, 역시 엘리트들이 장악한 언론계는 야구대회를 열어 신문 판촉에 열을 올렸다. 1970년대 고교 야구의 흥행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프로야구가 출범하는 데도 엘리트들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미국 유학을 경험한 야구 명문교 출신 엘리트들은 정계와 재계를 장악하고 있었다. 유럽에 뿌리를 둔 축구보다 야구가 한발 앞서 간 이유였다. 여기에 고교 야구를 통해 발산된 지역주의가 프로야구에 그대로 이식되면서 야구는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가 됐다. 이렇게 탄생한 프로야구는 1980년대 문화의 아이콘이 됐다.”

이 교수는 스포츠가 단순히 자본이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라고 설명한다. 인도네시아의 배드민턴이나 인도의 크리켓처럼 한국이 야구의 나라가 된 데는 역사적·문화적 배경이 녹아있다는 것이다.

“한국 야구의 성장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일본의 귀족 스포츠로 외면받다가 한국 최고의 스포츠가 되는 과정은 놀라운 역전극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야구를 최고의 스포츠로 만들었던 여러 요인이 있었다. 이 과정들을 하나씩 따라가면 우리 사회가 보인다. 야구는 단순히 스포츠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역사적·문화적·정치적 맥락이 집약된 결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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