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티모시 샬라메 시대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6 14:00
  • 호수 1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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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니 데이 인 뉴욕》 재개봉으로 주연작 3개 동시에 상영
타고난 스타성과 대체 불가 연기력으로 독보적 행보

“티모시 샬라메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잇는 청춘스타일까?” 얼마 전 40·50대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저 사안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티모시 샬라메 매력에 감전됐다”고 외치는 찬성파와 “몸도 비리비리하고 무슨 매력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반대파 사이에서 더 눈에 띄었던 건, ‘티모시 샬라메가 당최 누구당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지인. 티모시 샬라메를 모른다고?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한 장면 ⓒ그린나래미디어㈜ 제공

‘전화위복’이 된 스파이더맨 오디션 탈락 

그저 취향 차이겠거니 했던 내 예감이 엇나갔음을 알려준 이는 뜻밖에도 성시경이었다. 맞다. “이윽고~”의 가수 성시경 말이다. 티모시 측에서 자신의 유튜브에 출연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는데, 조건을 내세우다가 불발됐다고 말하면서 성시경이 전한 말 “티모시 샬라메 알아? 난 잘 몰랐다. 지금 얼마나 핫한지 몰랐다.” 성시경 외에도 티모시의 존재를 모르는 이가 많다는 걸 알게 된 것도 이때. ‘아… 한국에선 티모시의 인지도가 아직 부족하구나!’ 이 글은 그러니까, 티모시 팬이, 티모시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쓰는 ‘티모시 추앙글’이랄까. 

사실, 국내 관객들에게 티모시가 더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바로, 스파이더맨. 2015년 약 7000명의 젊은 남자배우가 응시한 할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 스파이더맨 오디션에서 티모시는 최종까지 올랐지만, 배역을 따내지 못했다. 알다시피, 스파이더맨을 차지한 건 톰 홀랜드다. 마블 전성기인 페이즈3 시기에 등장한 톰 홀랜드가 국내에서도 친숙한 배우로 급부상하는 사이, 티모시는 아트하우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 출연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티모시의 스파이더맨 탈락은 그의 긴 배우 인생을 보면 전화위복이 됐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판박이 스타가 아닌 독자성을 지닌 연기파 배우가 될 기회를 그에게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오해 마시길. 톰 홀랜드가 판박이 스타라는 얘긴 아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디스테이션 제공

열일곱 소년의 열병과도 같은 첫사랑을 그린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티모시는 사랑에 막 눈뜬 엘리오를 연기했다. 미세한 떨림과 이별의 통증을 이야기했다. 모스부호처럼 사랑의 기호를 흘리는 눈동자, 겅중겅중 뛰어가 사랑하는 이에게 안길 때의 충만한 제스처, 찬란했던 그해 여름이 끝나가고 있음을 직감한 ‘라스트 신’의 녹진한 표정, 그리고 복숭아…. 아, 천하제일 에로틱 복숭아…(티모시는 영화에서 복숭아 하나로 에로티시즘을 구현했다). 

티모시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증명해낸 자질은 유일무이함. 그의 연기는 대체 불가다. 연기에 기술이나 감성뿐 아니라, 뉘앙스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기술은 연마하면 되고, 감성은 흉내 낼 수 있지만, 뉘앙스는 그럴 수 없다. 고유하고 독자적인 기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티모시를 통과한 캐릭터들은 그가 아닌 배우를 떠올리기 힘들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컬트적 인기와 함께 티모시의 인생도 새로운 챕터로 접어들었다. 이 영화에서의 매혹적인 연기로 그는 22세의 젊은 나이에 세 번째 최연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됐다. 마침 그가 조연으로 출연한 그레타 거윅의 《레이디 버드》 역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에 이름을 올렸다. 올스타전을 방불케 하는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티모시는 스포트라이트를 집어삼켰다. 말 그대로 ‘스타 탄생’이었다. 

이후 그는 ‘매끈하고 익숙한 길’ 대신, 비포장도로를 선택해 배역의 크기에 상관없는 입체적인 인물들을 필모에 태웠다. 마약에 취해 비틀거리는 소년(《뷰티풀 보이》), 부자 한량 로니(《작은 아씨들》), 왕관의 무게를 짊어진 헨리(《더 킹: 헨리 5세》), 뉴욕 거리를 배회하는 청년 개츠비(《레이니 데이 인 뉴욕》)까지…. 브로드웨이 댄서 출신 미국인 어머니와 출판일을 하는 프랑스인 아버지의 DNA를 골고루 수혈한 이 배우는 특정 스타일에 포박되지 않고,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초적 기질의 부재와 패션계의 탄성마저 자아내게 하는 패션 센스, 성의 경계를 넘는 감수성은 그가 지닌 또 하나의 무기. 티모시와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을 함께 한 그레타 거윅은 그런 그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어린 크리스찬 베일과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섞어서 어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뿌린 인간.” 

연기력을 매 시즌 갱신하고 싶어 하는 연기파 배우에게 ‘명성’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특혜는 ‘인기’가 아니다. ‘돈’도 아니다. 그건 ‘좋은 감독’을 선택하고, ‘훌륭한 배우’들과 협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티모시는 창의적인 동료들과의 작업을 통해 내공을 늘리는 전략을 구사했다. 범접하기 힘든 개성의 소유자 웨스 앤더슨과의 《프렌치 디스패치》 협업을 통해 틸다 스윈튼, 베니시오 델 토로, 레아 세이두 등 대배우들과 함께했다. 소행성 충돌을 앞두고 펼쳐지는 ‘대환장 파티’를 그린 아담 맥케이의 《돈 룩 업》을 하면서는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메릴 스트립, 케이트 블란쳇과 앙상블 연기를 펼쳤다. 중요한 건 단순히 대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게 아니다. 그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자기만의 개성을 흩뿌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인생에 또 한 번의 변곡점이 될 《듄》 시리즈를 만난다. 2억 달러에 육박하는 블록버스터의 메인 롤. 상업적 가치를 증명해야 할 스타로서, 언젠가 뛰어넘어야 할 도전이 펼쳐진 것이다. 《듄》에서 티모시는 우주 행성을 지배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폴 아트레이드를 맡았다. 거장 감독 드니 빌뇌브가 메가폰을 잡은 《듄》은 SF 문학사의 교본으로 불리는 프랭크 허버트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1965년 발간된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이 많겠지만, 알게 모르게 영향받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왜? 《스타워즈》 《매트릭스》 《왕좌의 게임》 등이 《듄》의 세계관에서 영향받아 나온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즉, 티모시가 연기한 폴이 새로운 캐릭터는 아니란 의미다. 상황상, 독창성 면에서도 원조임을 드러내기 힘든 인물. 이러한 인물의 클리셰를 티모시는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듄: 파트2》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밥 딜런 연기하는 차기작도 주목 

한 인터뷰에서 드니 빌뇌브는 《듄: 파트1》 첫 촬영 날에 티모시의 연기를 본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티모시는 못 봤겠지만, 저는 카메라 뒤에서 (그의 연기를 보며) 춤추고 있었어요. 이건 된다. 너무 잘한다. 감사합니다. 영화 신이시여!” 그리고 더한 말. “티모시는 내게 폴 아트레이드 그 자체였습니다. 무성영화 시대의 배우에게서 볼 수 있던 카리스마가 그에겐 있어요.” 실제로 《듄》과 《듄: 파트2》에서 티모시가 보여주는 신(Scene) 장악력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가느다란 몸과 음영 짙은 눈에서 뿜어내는 카리스마 또한 대단한 것이어서, 관객은 《듄: 파트2》를 보고 나오면 하나같이 이렇게 외치는지 모르겠다. “리산 알 가입!(메시아)” 폴이 모래 행성 원주민들의 지지를 얻어내며 ‘리산 알 가입’으로서 깨어나는 장면에서의 티모시는 위태롭도록 아름답고 불온하기도 하다. 20대 배우 중에 이처럼 거대한 프로젝트를 이토록 대담하게 감당해낼 배우가 있을까. 

《듄: 파트1》과 《듄: 파트2》 사이, 그는 폴과는 180도 대칭에 선 인물을 연기했다. 국내에서도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달달한 훈풍을 전하고 있는 윌리~웡카! 언제고 쓴 적이 있지만 《웡카》는 폴 킹 감독이 티모시가 지닌 여러 겹의 매력 중, 소년미 부분을 움푹 파서 작정하고 보여주는 영화다. 분위기는 물론, MBTI도 정반대로 보이는 웡카와 폴이 같은 배우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현재 극장가에선 《웡카》와 《듄: 파트2》가 상영 중인데, 그 기세에 발맞춰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이 재개봉한다. 한 배우의 세 작품이 극장에 동시에 걸리게 된 셈. 극장가는 티모시 풍년이다. 

《웡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웡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다시, 돌아가자. 티모시 샬라메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잇는 청춘스타일까. 이 물음이 얼마나 영양가 없는가를, 디카프리오를 보고 “저 뚱뚱한 아저씨 누구야?”라고 말하는 잘파세대(1020세대)를 보고 깨달았다. 디카프리오의 전성기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시대의 티모시 샬라메였어!”라고 말하면 사기꾼 취급을 당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 더 중요한 건, 티모시 샬라메는 ‘제2의 누군가’에 머무를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선배들이 가지 않은 길을 꿈꾸고 있는 티모시는 차기작에서 밥 딜런을 연기할 예정이다. 전설과 전설의 만남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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