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 39일의 기록] 사직서 품은 의사들…병원이 쪼그라들고 있다
  • 강윤서·정윤경 기자 (kys.s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15 14:00
  • 호수 1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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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 교수, 3월18일 기점 '집단사직' 천명...출구가 보이지 않는 '의료전쟁' 현장

“2025학년도부터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증원한다.”

2월6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의 한마디는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의대 정원 확대가 발표되면 즉시 총사퇴할 것”이라던 대한의사협회(의협) 집행부는 곧바로 직을 내놨다. 보수정당 지지세가 높은 직역인 의사들은 ‘총선 심판’ 구호를 내걸고 이번 4·10 총선에서 여당을 향한 표를 거둬들이겠다고 경고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물러서지 않았다. 2월7일 KBS 《신년 특별 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 출연해 “의대 정원 확대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2월13일, 대전성모병원 소속 한 전공의가 처음으로 사직하면서 사실상 ‘의료전쟁’이 시작됐다.

정부의 의대증원 강행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발한 전국 의사들이 3월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정부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
정부의 의대증원 강행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발한 전국 의사들이 3월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로에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열고 정부 정책을 규탄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의료계 “정부에 2000명은 신앙 같아”

의료계의 이탈 행렬은 전국으로 퍼졌다. 2월18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민 생명을 볼모로 잡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전국 100개 수련병원 소속 전공의 절반 이상(6415명, 2월19일 23시 기준)이 가운을 벗었다. 정부는 2월29일까지 병원에 복귀하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전공의는 돌아오지 않았다. 정부는 ‘수사’로 응수했다. 전공의에게 “면허 박탈까지 고려한다”는 초강수를 뒀다. 이제 의대 교수들이 나서겠다고 한다. “후배들을 지키겠다”는 명분이다. 3월15일, 전공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던 전국 19개 의대의 교수들이 집단사직 여부를 결정한다. 또한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3월18일을 기점으로 전원 자발적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의료 현장에서 ‘최후의 보루’인 교수들이 사직 카드까지 꺼내든 것이다. 총선을 앞둔 정부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한 치 양보도 없는 줄다리기는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의대 교수의 ‘집단사직’ 불씨는 서울대가 댕겼다. 서울대 의대 비대위는 3월11일 긴급 총회를 열고 정부가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 사직서를 내겠다고 했다. 의료 현장의 최일선인 의대 교수가 사직을 고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사저널 인터뷰에 응한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정부에 2000명은 신앙 같다. 숫자만 고집하지 말고 현실을 들여다봐 달라”고 입을 모았다. 비대위는 10년 후인 2035년 의사가 1만 명 부족해 증원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에는 공감했다. 그러나 5년간 해마다 2000명을 늘려야 한다는 증원 규모에 대해선 “어떠한 근거도 없다”고 반발했다. 비대위가 공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서울대 의대 전체 교수 1475명 중 1146명)의 99%는 정부의 증원 규모를 ‘비합리적’이라고 답했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지역별로 분석한 결과, 가장 합리적인 규모는 500~1000명”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정부가 근거로 제시했던 의사 인력 추계 보고서의 연구자다.

대학의 임상실습 과정 등을 고려할 때 증원 규모가 '비현실적'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대 의대 교수는 “위암 수술 실습 중 환자 곁에서 참관하는 학생이 기존 2명에서 6~8명으로 늘어나게 된다”며 “위암 수술 건수가 3~4배로 늘지 않는 이상 학년이 끝날 때까지 수술 한 번 제대로 못 보는 학생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2000명을 증원했다가 상황이 뒤바뀌면 막대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게 의료계의 지적이다. 홍윤철 교수는 “정책이나 의료시장 상황이 변할 것에 대비해 ‘돌아갈 수 있는 수준’으로 증원해야 한다”며 “대학에서 교수 증원과 시설 준비 등 막대한 투자로 학생을 증원했는데, 5년 후에 상황이 달라지면 그 손해는 누가 감당하느냐”고 지적했다.

의대 교수들은 집단사직 명분으로 ‘제자 구하기’를 내세우고 있다. 배우경 비대위 언론대응팀장(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은 “전공의 사직서가 처리되기 전이 정부와 협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대다수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는다면 병원 시스템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직 처리가 안 되고 대화의 장이 열린다고 해도 전공의 복귀를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홈페이지

의료 현장 악화일로…전공의 10명 중 1명 복귀

정부는 단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모양새다. 정부는 “의대 증원 계획을 1년 유예하자”는 서울대 의대 교수들의 제안을 즉각 거부했다. 복지부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의료 수요를 감안해 증원 시기를 늦추면 피해가 훨씬 커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부는 의료법을 위반해 현장을 이탈하는 집단행동을 하면 전공의와 마찬가지로 교수에게도 법적 잣대를 들이밀겠다고 했다. 역대 정권에서 실패를 거듭했던 만큼 이번에는 의대 증원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이미 의료진이 대거 이탈한 병원은 사실상 ‘비상 진료체제’에 돌입했다. 비수도권 소재 대구가톨릭대병원은 홈페이지에 “본원 소속 전공의들의 근무 중단에 따라 진료에 일부 차질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환자 안전을 위해 비상 진료체제를 가동한다”고 밝혔다. 비상사태에 직면한 각 병원은 당장 병동을 통합하거나 폐쇄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입원병상 가동률과 수술 건수를 전공의 이탈 전과 비교해 30~50%가량 줄였다. 비응급 수술 일정은 연기했다. 제주대병원도 내과 환자실 운영 병상 수를 20개에서 12개로 축소했다. 수술실도 12개에서 8개로 절반 가까이 줄였다.

의료 공백을 메우고 있는 교수들은 체력적 한계를 호소하고 있다. 정진행 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는 “인원으로 따지면 전공의가 전체 의사의 46%지만, 업무로 보면 70~80% 수준이다. 전공의가 섰던 당직까지 60대 교수들이 대신하면서 육체적 한계가 극에 달했다”고 토로했다.

수련병원을 떠난 전공의 10명 중 단 1명만이 의사 가운을 다시 입었다. 복지부에 따르면 100개 수련병원 1만2909명 전공의 중 93%인 1만2002명이 근무지를 벗어났다.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한 2월19일 이후 이탈자가 가장 많다.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들에게 면허정지 사전통지서를 보내고 있지만 복귀는커녕 더더욱 병원을 벗어나는 모양새다. 정부는 의료진 잔류를 위해 막판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가 물밑 대화에 성공할 수 있을지, 국민의 관심은 서울대 의대 교수의 전원 사직이 예고된 3월18일에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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