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리얼리티의 변화와 진화는 계속된다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2 14:30
  • 호수 1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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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PD의 《연애남매》, 무엇이 달랐나…‘가족애’ 키워드로 연애 리얼리티 새 지평 열어

최근 예능의 주요 트렌드는 관찰카메라, 즉 리얼리티쇼다. 그중에서도 연애 리얼리티는 가장 뜨거운 영역인데, 양적으로 폭증하면서 변별력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일까. 변화와 진화를 보여주는 JTBC 예능 《연애남매》는 오히려 더 도드라져 보인다. 

최근 연애 리얼리티 트렌드에서 《환승연애》는 하나의 변곡점을 만든 예능 프로그램이라 할 만하다. 리얼리티를 강조했던 《짝》에서 시작해(이 흐름은 현재 《나는 솔로》로 이어지고 있다) 판타지로 확장한 《하트시그널》과 글로벌 색깔을 더해 넣은 《솔로지옥》 등이 연애 리얼리티라는 예능 트렌드의 뼈대들을 만들었다면, 《환승연애》는 그 위에서 새로운 길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JTBC 제공

우려를 기대로 바꾼 기획력 

남녀가 출연해 서로 감정을 교류하고 그 과정에서 변화해 가는 관계를 들여다보던 다소 단순한 방식에, 먼저 ‘환승’이라는 개념을 더해 넣은 점이 그렇다. 헤어진 연인들이 그 관계를 숨긴 채 한 공간에서 지내며 벌어지는 이야기는 그래서 새로운 인연을 향해 나아가거나 혹은 끊어졌던 인연을 다시 이어가는 두 방향으로 흘러가는 변주를 가능하게 했다. 애틋함은 더 커졌고 안타까움이나 설렘 또한 더 강렬해졌다. 어찌 보면 헤어진 연인들이 한 공간에서 지내며 X의 선택을 보게 된다는 지점이 주는 자극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출연자들의 성품이 그 향방을 가른 이유였다. 그들은 아파하면서도 동시에 X가 새로운 만남을 통해 행복하기를 바라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러니 자극과는 정반대로 더 큰 감동의 진폭을 느끼게 했다. 

티빙 오리지널 예능으로 소개되며 신규 가입자 유입의 일등공신으로 떠오른 《환승연애》는 2021년 티빙이 소개한 콘텐츠 중 최고의 성과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 프로그램을 만든 이진주 PD라는 스타 연출자 또한 탄생시켰다. 나영석 사단에서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와 《삼시세끼 고창편》을 거쳐 《윤식당》으로 주목받았던 이진주 PD는 《환승연애》로 확고한 위상을 세웠고 이듬해 《환승연애2》로 최고의 주가를 올렸다. 그 인지도가 워낙 커서였을까. JTBC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은 이진주 PD는 새 방송사로 환승해 첫 작품으로 《연애남매》를 내놨다. 

연애와 남매.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의 조합 때문이었을까. 《연애남매》는 저 《환승연애》가 처음 시작됐을 때처럼 그다지 끌리는 연애 리얼리티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혈육이 보는 앞에서 새로운 이성과 만나는 것이 과연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들이 나왔다. 그건 X들이 함께 모여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던 《환승연애》 때의 우려들을 닮아있었다. 하지만 《환승연애》 때처럼 《연애남매》 역시 우려는 기대로 바뀌었다. 그것 역시 남다른 공을 들인 출연자 섭외 덕분이었다. 남매라고 하면 어딘가 툭탁대는 관계처럼 여겨지는 그 선입견을 깨고, 여기 출연한 남매들은 더할 나위 없이 끈끈한 관계를 보여줬다. 자신이 0표를 받더라도 혈육이 표를 더 받았으면 좋겠다는 남매애가 느껴지는 출연자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장난을 치면서도 서로를 챙겨주려는 생각이 묻어나는 사이좋은 남매나, 아버지의 부재를 든든히 채워줘 오누이 그 이상의 관계를 보여주는 남매, 또 많은 어려움을 겪은 가족사 때문에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려는 남매 등등. 이들은 자신의 연애만큼 혈육의 연애에도 진심이었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누나가 좋아하는 인물과는 다른 자신의 이상적인 매형을 꿈꾸는 동생이 등장하고, 누구보다 대단한 누나를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는 화난 모습을 애써 숨기는 동생이 등장하며, 0표를 받은 오빠를 응원하기 위해 괜스레 “공유 닮았다”는 말에 애써(?) 동조하는 여동생이나, 출연자들의 직업을 공개하는 시간에 혈육이 써준 소개서를 읽으며 울컥해 눈물을 흘리는 오빠를 보며 그런 모습은 처음이라고 말하는 여동생이 등장한다. 혈육이 걸림돌이 될 것 같았던 연애는 이제 혈육의 든든한 지지와 응원을 받는 것으로 오히려 더 주목하게 만든다. 

물론 《환승연애》에서 마치 《엽기적인 그녀》의 한 대목을 연상케 해서 눈물과 감동을 선사했던 ‘X를 소개하는 시간’은, 《연애남매》에서도 똑같은 장치로 활용된다. 하지만 ‘혈육을 소개하는 시간’으로 변주된 그 서사는 연애의 차원을 벗어나 가족애의 훈훈함을 담는다. 또 하루를 마감하며 자신의 마음에 들었던 이성을 선택하는 시간 역시, 혈육이 몇 표를 받았는가를 연달아 알려줌으로써 연애 감정이 주는 설렘과 안타까움에 혈육에 대한 남다른 감정을 더해 넣는다. 특히 가정불화를 겪은 남매의 출연은 이들이 이 공간에서 인연을 찾아가는 이야기와 더불어, 함께 출연하는 이들과의 ‘유사가족’ 같은 풍경들로 시청자들을 응원하게 만든다. 이들 남매들이 이 경험을 통해 따뜻한 가족애를 느꼈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들이 거주하는 공간에 마련된 지하 아지트는 ‘Love or Blood’라는 콘셉트로 일대일(1:1) 이성이 예약을 통해 들어갈 수 있다는 룰이 제시돼 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이성 혹은 혈육을 의미하는 것이다. 《연애남매》라는 연애 리얼리티가 어떻게 가족애라는 색다른 지대를 연결해 그 서사를 확장시키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공간이 아닐 수 없다. 

JTBC 예능 《연애남매》의 한 장면 ⓒJTBC 제공
JTBC 예능 《연애남매》의 한 장면 ⓒJTBC 제공

리얼리티, 연애를 넘어 어디까지 갈까 

이미 예능은 리얼리티의 시대로 들어섰다. 한때 스타 예능인들이 일종의 캐릭터쇼를 보여줬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 관찰카메라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리얼리티쇼인 이 트렌드에는 연예인 대신 매력적인 일반인들이 주인공으로 세워지고 있다. 《하트시그널》이나 《솔로지옥》 《환승연애》처럼 매력적인 일반인이 출연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는 연애 리얼리티가 현재는 리얼리티쇼의 대세로 자리했다. 

‘연애’가 가장 익숙한 틀인 데다, 멜로드라마 같은 감정 과몰입을 유발할 수 있는 힘이 있어 현재의 리얼리티쇼는 이 소재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연애남매》가 살짝 틀어놓은 방향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그건 연애에 가족애라는 새로운 지점을 섞어 넣으면서 생겨난 새로운 방향이다. 가족을 담은 리얼리티쇼는 물론 앞에서 언급한 전문가 관찰카메라에 자주 등장했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가족사를 담기보다 오히려 갈등과 문제들을 꺼내놓는 데 집중하곤 했다. 하지만 가족을 담은 서사에 왜 그런 갈등만 있을까. 마치 《인간극장》같이 평범하지만 소시민적인 따뜻함이 느껴지는 형태로 예능화한 가족 리얼리티쇼도 충분히 가능한 영역이 아닐까. 

결국 이러한 리얼리티쇼가 담아내는 건 ‘관계’라고 볼 때 그 소재의 확장은 연애, 가족을 넘어 우정이나 동료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펼쳐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소재에 따라 그걸 담는 그릇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이지만, 이미 열린 리얼리티쇼의 시대에 재기발랄한 신예 연출자들에게는 그런 새로운 영역이 기회의 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서구의 리얼리티쇼가 주로 관음증적인 자극 지점에 집중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도 그럴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문화적 코드에 어울리는 새로운 리얼리티쇼가 충분히 가능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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