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영화를 닮은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조용한 관객몰이중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4 14:00
  • 호수 1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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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화된 동물들의 무대 된 1980년대 뉴욕이 배경
대사 없이도 마음 울리는 ‘힐링 매력’이 관객들 마음 사로잡아

동그란 눈, 단순하고 부드러운 선을 가진 캐릭터들이 볼수록 정겹다. 대사 한마디 없지만 역으로 더 많은 것이 마음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3월13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얘기다. 개봉 5일 만에 누적 관객 1만 명을 돌파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중이다. 천만 영화도 나오는 극장가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수치 같지만, 독립예술영화 관객의 스코어로는 값지고 귀한 기록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한 시절을 함께 보냈던 이와의 우정과 남은 추억을 행복하게 반추하게 될뿐더러, 눈물 섞인 잔잔한 감동까지 덤으로 안고 극장 문을 나섰다는 관람평이 다수다. 살랑거리는 꼬리를 가진 외로운 개와 충직한 로봇이 나누는 우정의 모양은 그만큼 곱고 사려 깊다. 

ⓒ영화사 진진 제공

외로운 개와 충직한 로봇의 우정 

《로봇 드림》은 인공지능 로봇의 위험을 고발하거나 윤리적 의미를 탐색하는 영화들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속 깡통로봇은 애초에 그렇게 고사양 기종도 아니다. 인류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가 되기 위해 태어난 존재. 외로움을 이해하는 일상의 파트너. 로봇은 뼈와 살 대신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반려동물에 가깝다. 부드러운 미소와 주인에게 고정된 눈동자를 가진 로봇은 무해함 그 자체다. 브래드 버드 감독의 걸작 애니메이션 《아이언 자이언트》(1999)처럼 로봇과의 유대를 그린 기존 작품들도 물론 있지만, 무성영화의 형식을 빌려 비언어적 표현들로 가득한 《로봇 드림》은 한층 더 독자적인 개성으로 빛난다. 게다가 이 세계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속 1980년대 뉴욕은 의인화된 동물들의 무대다. 

도그는 이스트 빌리지에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개다. 그의 일상은 일과 산책, 매일 같은 레토르트 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저녁식사로 채워진다. 변화는 어느 날 TV 광고를 유심히 보던 도그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직접 조립하는 로봇 키트를 주문한 것이다. 부품을 끼워 완성한 로봇은 그날부터 도그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둘은 어느덧 일광욕부터 관광, 센트럴파크에서 롤러스케이트를 타거나 핫도그를 나눠 먹는 소소한 일상에 익숙해진다. 대도시에서 홀로 살아가는 외로움은 이제 그들의 것이 아닌 듯 보인다. 

그러나 헤어짐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해변가 유원지인 코니 아일랜드에서 물놀이를 즐긴 날, 로봇은 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한다. 도그는 무거운 로봇을 옮겨올 방책을 고민하지만, 야속하게도 바로 다음 날부터 해수욕장은 폐장한다. 로봇을 데려오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번번이 이런저런 절차에 제지당하던 도그는 다음 시즌 개장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다시 외로워진다. 해변에 홀로 누워 도그를 기다리는 로봇 또한 고독한 시간을 견뎌야만 한다. 

영화의 원작은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 사라 바론이 2007년에 출간한 동명 그래픽 노블이다. 동물 캐릭터를 통해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온 바론은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반려견을 안락사시켰던 개인적 경험을 반영해 《로봇 드림》을 쓰고 그렸다. 병으로 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반려견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 믿었지만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이는 우정을 탐구하고 추억을 통해 상실에 대처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창조하는 밑거름이 됐다. 

스페인 출신 연출가 파블로 베르헤르는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기면서 찰리 채플린과 자크 타티 등 위대한 무성영화 창작자들의 방식을 취했다. 대사 없이 이미지만으로도 이야기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영화 매체의 정수를 담은 것이다. 3D의 화려한 비주얼과 유려한 대사들에 감탄하게 만드는 작품도 많지만, 본질은 아주 단순한 것에 있음을 《로봇 드림》은 새삼 일깨운다. 이 영화에는 관계와 인생을 그 어떤 가르침보다 쉽고 깊게 깨우치게 했던 무성 애니메이션의 감성이 물씬하다. 뉴욕을 예찬하는 대표적 영화인 《맨하탄》(1979) 등 곳곳에 숨은 명작 패러디를 찾는 재미 역시 좋다. 영화의 포스터는 존 카니 감독의 음악영화 《원스》(2007)를 어렵지 않게 연상시킨다. 

《로봇 드림》이 가장 특별한 지점은 캐릭터들이 재회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각기 다른 공간에 남겨진 도그와 로봇은 다시 만나는 꿈을 계속 꿀 정도로 서로를 그리워한다. 함께 봤던 《오즈의 마법사》(1939) 속 세계를 경유해 모험을 겪기도 하고, 환한 얼굴로 서로에게 달려가 기꺼이 다시 만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슬프게도 꿈에 불과하다. 제목이 ‘로봇 드림’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꿈은 다시 만나고 싶다는 도그와 로봇의 바람이 담긴 환상적인 무의식이자, 한 편의 꿈을 꾸는 것과 같은 영화적 경험의 극대화다. 

도그와 로봇은 서서히 새로운 인연을 만나 변화한다. 마음이 변했다기보다 그저 시간이 흐른 것이다. 도그는 공원에서 친해진 덕의 연락을 기다리며 설레고, 또 다른 반려로봇 틴을 집에 들이기도 한다. 로봇은 자신의 몸에서 부화하고 성장하는 새들 가족을 지켜보기도 하고, 불순한 의도로 접근한 누군가로부터 몸통이 분리되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다행히 그에게도 새 인연 라스칼이 찾아온다. 정성스레 로봇을 개조한 라스칼은 도그만큼 좋은 친구다. 

이전과는 달라진 일상 속에서 각자의 행복을 누리던 둘은 극적으로 재회의 순간을 맞닥뜨리지만, 로봇의 어떤 선택으로 인해 그 재회는 끝내 완성되지 못한다. 하지만 노래를 통해 추억하는 것은 가능하다. 박자에 맞춰 둘이 함께 즐겁게 춤을 추었던 곡인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의 《September》는 이제 다른 공간에서 홀로 즐기는 멜로디다. ‘Do You Remember?(기억하니?)’라는 가사 위에서 함께 나눈 기억과 시간은 영원하다. 헤어짐이 반드시 관계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인생의 긴 레이스 안에는 또 다른 해피엔딩이 자리할 수 있다는 성숙한 철학을 받아들이는 이 영화의 엔딩은 비범하고 소중하다. 

 

모든 헤어짐이 관계의 실패는 아니다 

쌍둥이 빌딩의 모습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1980년대 뉴욕의 마천루는 돌아갈 수 없는 한때를 추억하게 하는 배경이다. 지금의 도그와 로봇이, 더는 그때의 도그와 로봇이 아니듯 시간은 존재와 관계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상실이자 또 다른 시작을 끊임없이 경험하는 것을 우리는 인생이라 부른다. 평생이든 아니면 삶의 어떤 한 시절이었든, 소중한 존재를 가졌던 행운은 마음 안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혹여 친구나 사랑하는 사람, 가족을 잃더라도,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그들은 우리 안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나는 내가 만나온 모든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베르헤르 감독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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