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 인터뷰] “‘젊은 층 외면’은 거짓…이승만 롤모델 삼게 된 사람 많아”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2 14:00
  • 호수 1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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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다큐 영화 흥행 4위’ 《건국전쟁》 만든 김덕영 감독
논란도 ‘역대급’…편향·왜곡·총선 개입 등 비판에 정면으로 반박

“《건국전쟁》이 젊은 층에 전혀 어필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거짓입니다.” 3월15일 시사저널 서울 용산 스튜디오에서 차분히 인터뷰에 응하던 김덕영 감독이 강한 어조로 유감을 표출했다. 

ⓒ시사저널 이종현

제작비 3억원 들여 관객 116만 명 돌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다룬 영화 《건국전쟁》은 2월1일 개봉 후 100만 관객 돌파를 넘어 국내 다큐멘터리 영화 역대 흥행 순위 4위(3월21일 오전 10시 현재 116만4873명)에 올랐다. 약 3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100억원 넘는 매출을 뽑아낸 ‘대박’ 콘텐츠가 됐다. 

놀라운 성과에도 평단에서 혹평이나 외면을 받았다. ‘프로파간다 영화다’ ‘일방적인 이야기만 해댄다’는 비판은 영화 제작 단계부터 예상한 공격이었지만, ‘보수적인 중노년층이 관객의 대다수를 차지한다’란 말은 눈앞에 빤히 발생한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 당황스럽다고 김 감독은 말했다. 

《건국전쟁》의 관람 후기들도 그렇고 데이터도 그렇고 ‘50대 이상 중노년층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쪽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것이 왜 사실 왜곡이라 생각하나. 

“우선 비판적인 시각으로 관람 후기를 전한 사람들이 각자의 단편적인 경험을 내세워 ‘상영관에 50대 이상만 많다’거나 ‘《건국전쟁》은 중노년층의 영화’라고 규정짓는 걸 일반화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데이터도 제대로 해석해야 한다. 10~40대 관객이 과반을 차지해 50대 이상 관객 비율을 앞서는데, 어떻게 ‘중노년층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나. (비주류인) 다큐 영화의 100만 관객 돌파는 중노년층 지지만으로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주변에서 확인한 젊은 층의 반응은 어떤가. 

“청소년과 청년층이 이승만 전 대통령과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 관해 몰랐던 사실을 비로소 알게 돼 충격을 받는 모습을 속속 목격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 전 대통령을 롤모델 삼기로 했다는 이도 많이 만났다. 여담인데,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젊은 학부모 상당수는 이 전 대통령의 학력에 큰 호기심을 느끼더라. 이 전 대통령이 100년이 훨씬 넘는 과거에 미국 조지워싱턴대 학사, 하버드대 석사, 프린스턴대 박사라는, 웬만한 선진국 수재들도 밟기 힘든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력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은 탓이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 영화관 체인 CGV의 관객 데이터를 살펴보니 3월21일 기준 《건국전쟁》 예매 관객 연령대별 비율은 50대 이상이 44.2%로 가장 높았고 40대(26.6%), 30대(20.3%), 20대(8.0%), 10대(0.9%)가 뒤를 이었다.(남성 49.4%, 여성 50.6%) 연령대가 고루 분포하지 않았으나, 젊은 층은 완전히 외면하고 중노년층만 쏠린 영화로 치부하긴 분명 어렵다. 

CGV와 네이버 등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건국전쟁》을 본 관객들의 관람평이 각각 7300여 개, 900여 개나 올라와 있다. 여기서 심심찮게 젊은 층의 관람평이 눈에 들어왔다. ‘편향된 역사 교육 때문에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과(過)에 대해서만 잔뜩 배워 알고 있었다가 영화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한 네티즌은 자신을 20대라고 밝히며 “그동안 왜 (이 전 대통령의) 공(功)은 누구도 강조하지 않았을까 의구심이 든다.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토론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관람평을 남겼다. 전반적인 관람평 내용도 비슷했다. 

그러나 “그냥 이승만 전 대통령 찬양물일 뿐이다”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역사적 평가가 끝난 이 전 대통령을 왜 다시 띄우려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관람평도 있었다. 네티즌들은 악평이라도 내놨지만, 영화 평론계에선 아예 싸늘한 침묵으로 영화에 대한 거부감을 대신했다. 김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해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건국전쟁》 내용이 일방적이라며 비판하거나 심지어 ‘볼 필요 없다’고 터부시하는 시각도 여전히 많다. 

“그동안 나온 다큐 영화 등 문화 콘텐츠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과오만 부각했기에 균형을 맞추려 《건국전쟁》을 만들었다. 주관을 최대한 배제한 채 객관적인 증거와 시각 자료들을 입수해 사실을 명확히 드러냈다. 무엇이 옳은지 대중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만든 영화라 자부한다. 바로 이것이 위력을 발휘해 100만 관객 돌파로 이어졌다고 본다. 《건국전쟁》이 사실에 관한 얘기라는 핵심 명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비판하든 뭘 하든 일단 영화를 보고 판단해 주면 좋겠다.”       

3월19일 서울 용산구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 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영화 《건국전쟁》이 상영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3월19일 서울 용산구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 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영화 《건국전쟁》이 상영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3월19일 서울 용산구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 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영화 《건국전쟁》이 상영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3월19일 서울 용산구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CGV 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영화 《건국전쟁》이 상영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영화 평론가들이 외면하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진보 성향의 다큐 영화에 호평을 아끼지 않고 사회·문화적 이슈에 대해서도 진보적 목소리를 높여온 평론가들이 지금은 찬물 끼얹은 듯 조용하다. 자신들만의 문화적 카르텔 안에서 똘똘 뭉쳐 그게 의식 있는 행동이라고 착각하는 듯하다. 다큐 영화를 100만 명 넘는 관객이 봤다면 좋든 싫든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비평해야 한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직무유기이며 116만 관객을 무시하는 태도다.”  

수면 아래에 있는 ‘안티 《건국전쟁》’ 정서는 인터넷상에서 거세게 분출되기도 했다. 가수 나얼(본명 유나얼)이 2월12일 인스타그램에 영화 《건국전쟁》 포스터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사용했던 낡은 성경책 사진을 게재하자 악플이 줄줄이 달리고 야권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비난글이 쇄도했다. 결국 나얼은 게시물에 댓글을 달지 못하도록 막아야 했다. 김 감독은 “사건이 있고 난 후 영화관에서 나얼씨를 만나 ‘고생하셨습니다’라고 했더니 그가 ‘아닙니다’라고 짧게 답했다”면서 “나얼씨가 《건국전쟁》을 여러 번 봤다고도 하더라”고 전했다. 

《건국전쟁》이 보수진영에선 환영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영화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 영상이 등장한 걸 두고 ‘총선을 앞두고 보수 결집의 도구로서 기획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왔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말 《건국전쟁》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어떤 조직이나 단체의 조력도 없이 ‘가내 수공업’ 형태로 어렵사리 영화를 만들어 나갔다. 영화에 삽입된 한동훈 비대위원장 발언은 법무부 장관 시절인 2023년 7월 이뤄졌다. 당시 이승만 정부 농지개혁에 대해 취재하다가 농지개혁을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토대를 만든 정책으로 평가한 그의 발언을 캐치해 일부분으로 포함시켰을 뿐이다.”  

《건국전쟁》과 같은 달 개봉한 영화 《파묘》의 흥행세를 보고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 《건국전쟁》에 위협을 느낀 자들이 이 영화를 덮어버리기 위해 《파묘》로 분풀이를 하고 있다’고 평했다. 이 발언에 대해선 진보진영은 물론 보수진영 일각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는데. 

“일차적으로는 5년 전 도올 김용옥 선생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말한 게 떠올라 자연스레 《건국전쟁》과 《파묘》를 연장선상에 두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일제가 민족정기를 끊기 위해 우리나라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근거 없는 설을 앞세워 억지로 민족주의적 감정을 끌어내려는 영화(《파묘》)보다 우리나라를 구한 인물을 조명하는 영화(《건국전쟁》)에 주목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발언한 것이다. 진의는 이렇지만, 발언의 파장을 놓고 여러 아쉬움이 뒤따를 순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논쟁적인 주장들이 제기됐다. ‘김구-유어만(리우위안)’ 대화 비망록을 근거로 김구 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 북한의 남침 의도를 알고도 방관한 정황을 드러낸 부분이 대표적이다. 비판이나 반박이 많이 들어왔을 것 같다. 

“반드시 논란이 생기고 공격도 받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영화 제작 과정에서 자문단과 함께 대응책을 면밀히 준비했다. 하지만 막상 개봉하고 흥행몰이를 하면서 누구도 이 내용에 별다른 반론을 제기해 오지 않았다. 치열한 토론을 기대했다가 맥이 빠졌다.” 

김구 전 주석의 증손자인 김용만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후보)가 해당 내용에 대해 ‘김 전 주석이 마치 북한 편에 서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듯이 비망록 원문을 의역했다. 이승만-김구의 대립 구도를 만들고자 일방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는데. 

“말이 안 된다. 우리는 영화에서 정직하게 로데이터(raw data·원자료)를 제시했고 해석은 붙이지 않았다. 로데이터를 감추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내용을 앞세울 때 의역이란 개념이 성립한다.” 

“카퍼레이드 영상, 누군가 지우려 한 듯” 

영화에서 처음 공개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뉴욕 카퍼레이드 영상은 이념 논쟁을 떠나 큰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발견하게 됐나. 

“영화 제작 중 우연히 카퍼레이드 사진을 발견해 ‘왜 사진만 있고 영상은 없지?’라는 의문을 품고 추적하기 시작했다. 찾는 과정에서 어떤 기관으로부터 관련 영상을 입수하게 됐는데, 딱 이 전 대통령의 카퍼레이드 장면만 훼손돼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이 차에 타서 뉴욕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딱 한 프레임 빼고 나머지 영상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지웠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큰 충격을 받아 온전한 영상 찾기에 ‘올인’했고, 결국 6개월 만에 미 워싱턴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전격적으로 발견해 영화에 넣을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이 이끄신 일이라 생각한다.” 

동유럽으로 이주한 북한 전쟁고아들을 소재로 한 김 감독의 전작 《김일성의 아이들》은 국내외에서 쏟아진 호평에도 2020년 6월25일 개봉 후 관객이 1768명 드는 데 그쳤다. 16년 동안 제작한 작품이 수익을 내지 못하니 실망감을 곱씹을 겨를조차 없이 생활고가 삶을 덮쳤다. 그 와중에 ‘이승만 영화’를 하겠다는,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에 나섰던 것이다.  

김 감독은 “주위에서도 다 말리고 고민이 안 될 순 없었는데, 모르겠다. 뭘 믿고 시작했는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김일성의 아이들》도 《건국전쟁》도 모든 활동은 거짓에 맞서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작은 사명감에서 시작됐다. 개인의 이기적 욕망이 개입되지 않은 건 분명하다”면서 “대한민국 사회의 건강성을 믿었고,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낸다면 언젠가 대중이 호응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래서 《건국전쟁》의 흥행이 너무도 반갑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의 목소리가 인터뷰를 시작할 때보다 더욱 갈라져 있었다. 《건국전쟁》 흥행에 피곤한 줄도 모르고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체력이 많이 떨어진 그다. 영화의 흥행세가 꺾이고 극장가에서 퇴장을 준비하는 요즘도 김 감독은 막바지 홍보·강연 활동에 여념이 없다. 김 감독은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지만, 가능한 한 오래 영화관에서 상영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며 옅게 웃어 보이고는 다음 스케줄을 위해 서둘러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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