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검사의 ‘휴게소’로 전락한 법무연수원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4.03.25 07:30
  • 호수 1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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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국민의힘), 이성윤(더불어민주당), 차규근(조국혁신당) 등 4.10 총선 전면에 등장

4·10 총선을 앞두고 검찰 출신들이 약진하면서 법무연수원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법무연수원을 거쳐간 검사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정계에 대거 진출했기 때문이다. 좌천된 검사들의 ‘유배지’로 인식됐던 법무연수원이 이제는 정치검사들의 ‘휴게소’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22년 간(2002년 1월~2024년 2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지내다 정계에 진출한 검사들이 작성한 연구보고서는 단 한 건도 없었다(<[단독]월급 870만원짜리 한직…연구보고서 대신 출마용 책 쓰는 연구검사들> 기사 참조).

익명을 요구한 검찰 관계자는 “법무연수원이 아니라 ‘정치연수원’으로 불러야 할 판”이라면서 “여야로 흩어진 법무연수원 출신들은 서로를 향해 ‘정치검사’라고 손가락질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 검찰의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있지 않나. 이들로 인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참담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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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또는 승진을 위해 ‘쉬어가는 곳’

법무연수원은 법무부 소속 공무원의 교육·훈련과 법무 정책의 연구·조사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1951년 형무관(교도관)학교를 모태로 설립된 법무연수원은 1972년부터 보호직·출입국관리직·교정직 등 법무부 소속 공무원은 물론 검사·수사관에 대한 교육까지 맡고 있다. 이 밖에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식품·환경 분야의 특별사법경찰관, 국가소송의 실무를 담당하는 소송수행자도 법무연수원에서 교육을 받는다.

법무행정의 이론적 측면을 맡고 있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범죄의 예방과 대처 방안, 형사 정책, 행형 등 중요한 법무 정책에 관한 연구를 담당한다.

김석우 법무연수원장(사법연수원 27기)은 “교육과 연구라는 2개의 큰 과제를 수행하는 법무연수원은 단순히 법무부 소속 공무원의 자기계발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우수한 법무 인재 양성을 위한 ‘국가 발전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무연수원은 당초 ‘쉬어가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한 예로, ‘6공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당시 검사(사법시험 8회)가 1986년 검사장으로 승진했는데 마땅히 갈 자리가 없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다. 이후부터 연구위원은 검사장 또는 검사장 승진을 앞둔 검사가 잠시 머물렀다 가는 자리로 인식됐다.

이 밖에 법무연수원장의 경우 퇴임을 앞둔 고검장의 마지막 보직으로 여겨지며, 부원장은 통상 초임 검사장이 발령받는 자리다. 법무연수원은 말 그대로 ‘숨고르기’를 할 수 있는 한직(閑職)이었던 셈이다.

왼쪽부터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 김진모 국민의힘 후보(청주 서원)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페이스북
왼쪽부터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 김진모 국민의힘 후보(청주 서원) ⓒ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페이스북

문제적 검사의 ‘유배지’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법무연수원은 ‘유배지’로 전락했다.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권) 말기인 2002년, ‘이용호 게이트’ 수사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기소된 김대웅 전 광주고검장(3기)이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 났다. 당시 법무부는 김 전 고검장의 전보를 위해 1급 관리관이나 평검사를 임명하던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자리에 검사장 또는 고검장도 임명할 수 있도록 ‘검찰 직제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기까지 했다.

이명박 정부 초인 2009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1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를 받은 민유태 전 전주지검장(14기) 역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됐다. 민 전 지검장은 박 전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은 인정됐지만 직무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내사 종결됐다. 다만,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로부터 감봉 3개월 처분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 말기인 2016년에는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은 진경준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검사장급·21기)이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됐다. 진 전 본부장은 2005년 친구인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주에게서 넥슨 비상장 주식 매입대금 4억여원을 받아 주식을 사들여 120억원대 차익을 얻은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시사저널 사진자료·최준필·연합뉴스
왼쪽부터 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민주당 전북 전주을 후보),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조국혁신당 비례 10번), 신성식 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무소속 순천·광양·구례·곡성갑 후보) ⓒ시사저널 사진자료·최준필·연합뉴스

보복 인사의 수단…정치검사의 ‘등용문’

현재 법무연수원은 유배지를 넘어 ‘보복 인사’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반(反)정부 성향의 검사들에 대한 노골적인 ‘법무연수원행(行)’ 인사가 단행됐다.

그러나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법무연수원이 오히려 정계 진출의 ‘등용문’이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진보 각 진영에서 이들을 ‘투사’로 대접하면서 모셔가기 바빴기 때문이다. 이들은 ‘법의 수호자’ 또는 ‘검찰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국회의원 금배지를 너나 할 것 없이 달았다. 이와 같은 일은 4·10 총선에서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모양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17년 정점식 전 대검 공안부장(20기), 유상범 전 창원지검장(21기), 김진모 전 서울남부지검장(19기),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19기) 등이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됐다. 박근혜 정부의 우병우 전 민정수석(19기)의 ‘라인’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이들은 인사가 난 당일 모두 사의를 표명했다. 다음 행보는 정계였다. 정점식 전 공안부장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에 입당해 2019년 4·3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경남 통영 고성)에 당선됐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 승리한 후 이번 4·10 총선에서 3선에 도전하고 있다.

유상범 전 지검장 역시 21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배지(강원 홍청·횡성·영월·평창)를 달았고, 4·10 총선에 다시 한번 출마했다. 김진모 전 지검장도 단수공천을 받고 청주 서원에서 배지를 노리고 있다. 윤갑근 전 고검장은 2019년 자유한국당에 입당해 2020년 국민의힘 충북도당 위원장을 역임한 후 이번 총선에서 청주 상당에 출마했으나 결국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27기)도 문재인 정부 시절에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지냈다. 뒤이어 한 위원장은 또 다른 한직으로 평가되는 사법연수원 부원장까지 역임했다. 한 위원장은 이른바 ‘윤석열 사단’을 대표하는 인물이었고, 1년6개월 새 4번 좌천됐다. 당시 법무연수원에서 기자와 만난 한 위원장은 “(정권의) 보복을 견디는 것도 검사 일의 일부”라면서도 “다만 국가적 차원의 범죄 대응 역량이 약화되는 것이 큰 걱정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단숨에 법무부 장관에 올랐고, 4·10 총선에서는 여당의 비대위원장은 물론 인재영입위원장까지 맡고 있다.

정권이 바뀌자 법무연수원의 멤버도 전원 교체됐다. 이른바 ‘친문 검사’로 채워진 것이다. 심지어 법무부는 2022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4석에서 9석으로 증원하는 직제개편을 단행하기까지 했다. ‘유배지’를 대폭 확대한 것이다.

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23기)은 ‘친문 검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서울고검장까지 승승장구했으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첫 검찰 인사에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됐다.

이성윤 전 지검장은 지난해 9월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출판기념회에서 ‘윤석열 사단’을 ‘전두환 하나회’에 빗대어 비판해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에 회부됐고 결국 해임됐다. 그러나 이런 이력은 오히려 ‘훈장’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를 영입인재로 발탁해 전북 전주을 후보로 공천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차규근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24기)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7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임명됐다. 1심에서 무죄를 받고 2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차 전 본부장은 조국혁신당에서 비례대표(검찰 개혁 분야) 10번을 받았다.

‘KBS의 한동훈 녹취록 오보 사건’으로 기소된 신성식 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27기)은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법무연수원으로 내려왔다. 오보 사건으로 결국 지난 2월 해임된 신 전 부장도 4·10 총선을 노리고 있다. 민주당 순천·광양·구례·곡성갑 지역구 경선에 참여했다가 컷오프로 탈락한 신 전 부장은 3월17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이 밖에도 검찰 출신 출마자는 부지기수다. 이로 인해 형사·사법기관 출신의 선거 출마를 위한 사퇴 시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공무원 등 입후보 제한직에 있는 자가 공직선거에 입후보하는 경우 선거일 전 90일(비례대표·보궐선거의 경우 30일)까지 직을 사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병석 민주당 의원은 ‘판검사·고위 경찰의 경우 입후보를 위한 사퇴 시한을 6개월(비례대표·보궐선거의 경우 2개월)까지 확대’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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