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대란’ 뒤에 어떤 표심 있었나
  • 김형준 교수│명지대 정책과학연구소(MPSI) 소장 ()
  • 승인 2011.05.0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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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동서리서치 공동, 분당 을 투표자 5백명 설문조사 / 고소득층 반란이 대세 갈라

 

▲ 손학규 후보가 당선 후에 분당 미금역 앞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사저널>은 여론조사 기관인 동서리서치에 의뢰해 경기도 성남 분당 을 지역을 대상으로 ‘4·27 재·보선 사후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성향의 유권자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는 대이변이 일어난 원인은 무엇인지, 유권자들이 표를 준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선거 결과는 향후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등을 정밀 분석했다. 이번 조사는 투표를 한 유권자 5백명을 대상으로 선거 다음 날인 4월28일 진행되었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4.4% 포인트이다. <시사저널>은 이 조사 결과를 명지대 정책과학연구소에 맡겨 심층 분석했다.

4·27 재·보궐 선거에서 민주당이 완벽하게 승리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 도호쿠 지역 대지진과도 같은 엄청난 대형 정치 지진이 발생했다. 진원지는 분당 을이다. 손학규 후보가 민주당이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던 분당 을에서 승리한 것은, 한나라당 후보가 광주·호남 지역구에서 승리한 것과도 같은 엄청난 사건이다. 한나라당에게는 ‘천당 같은 분당’이 지옥이 되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분당 대란의 핵심 요인은 이명박(MB) 정부에 대한 응징 욕구, 한나라당 지지층의 지각 변동, 한나라당 지지층의 전략 투표, 20~40대 세대의 야당 쏠림 현상, 고소득층 부자들의 반란 등으로 집약된다.

1.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응징 욕구

손학규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은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보다는 MB 정부에 대한 혐오가 강했다. 이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손후보에게 투표한 이유로 가장 많은 45.0%가 ‘이명박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응답한 반면, ‘한나라당이 싫어서’라는 응답은 16.1%에 불과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한편, ‘손학규 후보가 마음에 들어서는’ 26.8%. ‘민주당을 좋아하기 때문에’는 7.9%였다. 이것은 손후보가 MB 정부의 실정에 따른 반사 이익을 얻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조사 결과, 선거 과정에서의 후보 변경 사례도 일부 나타났다. 지지 후보를 변경한 응답자를 대상으로 최초 지지 후보를 묻는 질문에는 강재섭 후보가 66.1%로 손학규 후보(18.9%)보다 47.2% 포인트 앞섰다. 최초 지지하던 후보를 선거 과정에서 변경했는지 여부를 질문한 결과, ‘지지 후보를 바꿨다’는 응답이 9.3%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30대 11.2%, 40대 9.7%, 50대 이상 9.8%가 투표할 때 지지 후보를 바꿨다. 그런데, 지지 후보를 변경해 손학규 후보를 선택한 투표자들 사이에서는 ‘정부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라는 응답이 50.1%로, 강재섭 후보를 선택한  투표자의 ‘야권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7.4%)라는 응답보다 42.7% 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이런 조사 결과가 주는 함의는 한나라당이 ‘천당 아래 분당’이라고 여겼던 텃밭인 분당에서조차 MB 정부에 대한 반감이 빠르고 강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한나라당 지지층의 지각 변동  

분당 을 지역의 한나라당 지지층을 분석해보면, ‘과거에도 한나라당을 지지했고, 이번 선거에서도 지지했다’라는 ‘한나라당 절대 고정층’은 26.8%로 나타났다. 반면, ‘과거에도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았고, 이번 선거에서도 지지하지 않았다’라는 ‘한나라당 절대 반대층’은 28.0%였다. 한편, ‘과거에는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지지했다’라는 ‘한나라당 유입층’은 6.4%에 불과했다. 반면, ‘과거에 한나라당을 지지했으나 이번 선거에서는 지지하지 않았다’라는 ‘한나라당 이탈층’은 이보다 다섯 배 정도 많은 31.6%였다. 절대 고정층과 유입층을 모두 합쳐도 33.2%에 불과하고 ‘절대 반대층’과 ‘이탈층’을 합치면 59.6%로 이보다 훨씬 높았다. 한나라당 아성이었던 분당에서 한나라당 지지층의 지각 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후보 인물 경쟁력에서 앞선 손학규 후보가 이런 변화의 수혜자가 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나라당 이탈층의 94.2%가 손학규 후보를 지지한 데서 잘 나타나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 선거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화이트칼라층의 40.5%가 ‘한나라당 이탈층’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넥타이 부대’라고 불리는 화이트칼라의 한나라당 이탈 세력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함으로써 손후보의 승리에 기여한 면이 강하다.

 

 

3. 한나라당 지지층의 전략 투표

전략 투표(strategic voting)는 ‘현재뿐 아니라 미래도 내다보며 최종 단계에서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현 시점의 일차적 선호도가 아닌 쪽으로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조사 결과, ‘과거에 한나라당을 지지했으나 이번 선거에서 지지하지 않았다’라는 ‘한나라당 이탈층’은 31.6%였다. 그런데, 이들 계층에서 투표에 참여한 이유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경고’가 62.3%였다. ‘민주당을 지지하기 때문에’(22.1%)보다 세 배 가까이 많게 나왔다. 또한, 이들 이탈층에서는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게 된 이유로 ‘한나라당이 변화해야 되기 때문에’가 44.6%로 가장 많이 나왔다. 한편, ‘이명박 정권이 기대한 만큼 성과를 내지 못해서’라는 응답은 38.2%로 이보다 6.4% 포인트 적게 나왔다. 이런 조사 결과가 주는 함의는 과거 한나라당 지지층이 이번 선거에서 이탈한 것은 일시적일 수도 있고, 고착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한나라당과 MB 정부가 향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 4·27 재·보선 선거운동 첫날인 4월14일 분당 을에 출마한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의 본격적인 거리 유세에 앞서 분당구 정자공원에서 선거 도우미들이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4. 20~40대 세대의 야당 쏠림 현상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부터 한국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20~40대 연령층과 50대 이상 연령층 간의 지지 쏠림 현상이다. 20~40대층에서는 야당을 지지하는 성향이 강하고, 50대 이상 연령층에서는 한나라당 지지가 두르러진다. 이런 연령 분극화 형상의 이면에는 그동안 한나라당에게 우호적이었던 40대 연령층이 야권 성향으로 돌아섰다는 점이 있다. 그 이유는 40대에서 ‘연령 효과’보다는 세대 효과 현상이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젊었을 때는 진보 성향을 보이다가도 40대에 이르면 보수 성향으로 바뀌면서 실리적인 투표를 하는 연령 효과가 나타난다. 그런데 최근 40대에서는 이런 연령 효과보다 과거 386세대로서 자신들이 젊었을 때 경험했던 민주화 투쟁의 연속 선상에서 이념적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

조사 결과, 민주당 손학규 후보를 찍은 사람이 61.5%,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를 찍은 사람이 34.5%로 나타났다. 실제 양 후보의 득표율은 51.0% 대 48.3%로 격차가 2.7% 포인트에 불과하나, 이번 조사에는 선거 직후라 승자 쏠림 현상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수치가 아니라 조사에 나타난 흐름이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연령별 이반 현상은 뚜렷하다. 30~40대 투표자의 70.0% 이상이 손학규 후보를 선택했다. 반면에 50대 투표자 중 강재섭 후보를 선택한 비율은 55.0%로 나타났다.

 

 

5. 고소득층 부자들의 반란 

중산층이 밀집한 지역에서 손학규 후보가 승리한 것을 중산층 유권자들의 변화 욕구 때문이라고 사후적으로 해설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 이번 분당 대란을 유도한 것은 중산층보다는 월 소득 5백만원 이상의 고소득층이었다. 표에서 보듯이, 고소득층의 64.2%가 손후보를 지지한 반면, 강후보 지지는 32.1%에 불과했다. 그런데 월 소득이 2백만~5백만원인 중산층의 경우, 손후보(48.6%)와 강후보(47.2%) 간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MB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 하락의 직격탄을 맞은 고소득층이 과거 MB 지지에서 빠르게 반MB 세력으로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 손후보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실제로 고소득층에서 ‘과거에 한나라당을 지지했으나 이번 선거에서 지지하지 않았다’라는 ‘한나라당 이탈층’이 37.4%로, 저소득층(20.8%)·중산층(25.7%)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이를 입증해 주고 있다.         

이번 <시사저널>-동서리서치 조사 결과에서 보듯 4·27 재·보궐 선거 결과가 주는 함의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분당 을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했다는 것은 수도권에서 더 이상 한나라당의 텃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한나라당이 변화하고 유권자 투표 성향에 대해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 내년 총선의 수도권 전투에서 참패할 수 있다. 지난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수도권 전체 1백11석 중 81석(73%)을 차지했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제대로 변화하지 않으면 현역 의원 가운데 살아남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무기력에서 벗어나 역동적 보수, 서민을 하늘처럼 섬기는 서민적 보수, 젊은 세대와 호흡을 같이할 수 있는 젊은 보수로 탈바꿈해야 할 것이다. 선수에 상관없이 이런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개혁 성향 의원들이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것이다.

셋째, 여야 모두 공천 개혁을 통해 참신하고 전문성을 갖춘 젊은 개혁 성향의 인사들을 대대적으로 영입해야 할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이번 재·보선 승리에 도취되어 변화와 개혁을 거부한 채 교만하고 안이한 자세로 내년 총선에 임하면 까다롭고 현명한 유권자들로부터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다. 민주당이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한 후 안이한 공천으로 한 달여 만에 치러진 7·28 재·보선에서 완패했던 것과 같은 일이 재연될 수 있다. 동일 선상에서 손학규 대표도 승리에 도취되어 정책과 대여 투쟁 과정에서 지나치게 좌 클릭 행보를 함으로써 스스로 중간 계층의 지지를 잃어버리는 우를 또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 선거는 단판 승부가 아니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게임이다. 따라서 내년의 총선·대선 게임은 이제부터다. 어느 정당이 ‘변화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잘 수행하는지 여부가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와 민주당 손학규 후보 운동원들이 4월24일 부활절 미사가 열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성마테오 성당에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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