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에게 감동 선사한 ‘한국의 아놀드 파머’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press.com)
  • 승인 2016.07.18 14:40
  • 호수 1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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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떠나는 박세리의 30년 골프 인생

1998년 여름의 기적을 기억하는가. US여자오픈. 당시 듀크대 2년생인 아마추어 골퍼 제니 추아시리폰(태국)과 무승부로 경기는 다음 날 18홀 연장전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18번홀. 티샷을 한 볼은 워터해저드 쪽의 깊은 잔디로 날아갔다. 그녀의 선택은 ‘언플레이어블 볼’ 선언이 아닌 신발을 벗는 거였다. 양말까지 벗어 하얗게 드러난 발. 그녀는 물속으로 발을 담갔다. 물은 발목까지 찼다. 볼은 깊은 러프에 매달린 듯 서 있었다. 그리고 거침없이 샷을 했다. 볼은 밖으로 튀어나와 페어웨이에 안착했다. 그리고는 비겼다. 18홀 연장전도 동타로 무승부. 서든데스에 들어갔다. 연장전 첫 번째 홀에서는 둘 다 파로 비겼다. 두 번째 홀에서 그녀가 5.5m 거리에서 친 볼이 홀을 파고들었다. 가장 아름다운 버디였다. 


아마도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IMF 경제위기로 실의에 잠겨 있던 국민들에게 ‘다시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를 안겨준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 그런 그녀가 그린을 떠난다. 공식 은퇴는 아니더라도 미국여자프골프(LPGA) 투어에서는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을 것 같다.


박세리는 7월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마틴의 코르데바예 골프클럽에서 열린 US여자오픈 2라운드에서 8오버파 80타를 치고 컷오프 되면서 미국 무대와 작별을 고했다. “이 대회가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는 마지막”이라고 공언했던 박세리는 이날 경기를 마친 뒤 동반 라운드를 펼친 최나연(29)·유소연(26)을 끌어안으며 끝내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3월2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칼스베드에서 열린 2016년 기아클래식 4라운드 14번홀에서 박세리 선수가 버디에 성공한 뒤 갤러리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담력 키우기 위해 ‘묘지 훈련’

 


박세리는 경기를 마친 뒤 특별한 행사를 잡지 않았지만 캘리포니아주 모건 힐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최나연과 안선주(29)·이일희(28) 등 후배 선수들을 우연히 만나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회한의 은퇴 만찬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도 박세리는 소리 없이 가슴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숙소에 돌아온 박세리는 “다음 대회 장소로 가기 위해 짐을 싸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다음부터는 대회를 나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박세리는 대전 유성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 박준철씨의 권유로 클럽을 잡았다. 대전 갈마중에 다니던 1992년 주니어 시절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라일앤드스콧 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한국의 그린을 평정할 재목으로 급부상했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KLPGA 투어에서 6승을 거둔 뒤 1996년 프로로 전향해 8승을 추가했다. 1998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주니어 시절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묘지(墓地·무덤)에서의 훈련이다. 아버지가 박세리의 담력을 키워주기 위해 깜깜한 밤중에 묘지 근처에서 스윙 연습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세리는 정작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연습하던 근처에 묘지가 있었던 것이지 의도적으로 그곳을 찾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세리키즈’들에게는 밤중에 반드시 이 코스를 거쳐야만 하는 ‘훈련 장소’가 돼버린 것이다. 


‘골프지존’ 타이거 우즈(41·미국)가 전 세계의 대표선수인 것처럼 한국골프는 박세리를 두고 전과 후가 갈린다. 미국에서 그녀가 우승 행진을 벌이면서 한국에 골프붐을 일으켰다. 한국골프 발전을 수십 년은 앞당긴 선수다. 특히 수많은 ‘세리키즈’를 양산해냈다. 세리키즈는 1988년 전후로 태어나 1998년 미국 LPGA 메이저 대회인 LPGA 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을 제패하던 모습을 TV에서 보고, ‘나도 박세리 같은 훌륭한 골프선수가 되고 싶다’며 박세리를 롤모델로 삼아 골프에 입문한 선수들이다. 최나연(29·SK텔레콤)을 비롯해 신지애(28)·박인비(28·KB금융그룹) 등이 대표적이며 이제는 ‘제2의 세리키즈’까지 등장했다. 


박세리는 그때의 US여자오픈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다. 사실 US여자오픈 전에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이 첫 승이었는데 얼떨결에 우승했다. 이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 아무것도 모를 때였고 혼자만 바빴던 것 같다. 늘 같은 일과가 반복됐다. 연습라운드, 예선과 본선, 짐 싸고 이동하는 것이 전부였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때서야 메이저 대회라는 사실을 알았을 정도로 맥도널드 챔피언십 때는 아무것도 몰랐었다. 그 이후부터는 모든 게 달라졌다. US여자오픈에서는 마음먹은 대로 모든 게 잘될 것 같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1998년 7월4일 US오픈 당시 해저드에 빠진 공을 치는 박세리 선수 © usga museum 영상캡쳐


 


골프史에 ‘내 이름 석 자 쓰겠다’ 꿈 이뤄


박세리는 18홀 연장이 처음이었다. 다시는 치고 싶지 않을 만큼 어려운 골프장이었다. 그런데 또 18홀을 친다고 생각하니 그저 막막했다. 18홀이 36홀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밤을 꼬박 새웠다. 한 샷 한 샷, 한 홀 한 홀이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18번 홀에서 친 티샷이 워터해저드 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런데 막상 가 보니 잡풀 속에 볼이 있는 것이 아닌가. 잔디 상태를 봤을 때 볼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 보였다. 하지만 풀은 볼의 무게를 이기고 잘 떠 있었다. 딱 봐도 칠 수 있는 라인도 아니고 가망성도 없어 보였다. 길게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지금 이 경험을 하지 않으면 또 다른 기회가 왔을 때 또 그렇게 흘려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볼을 치기로 했다. 볼이 놓인 자리에서 위쪽 언덕이 마치 성벽처럼 보였다. 볼이 페어웨이로 날아갈까 하면서 그냥 쳐냈다. 볼은 그림처럼 페어웨이로 날아갔다. 


그의 우승 경력은 화려하다. LPGA 투어에서 메이저대회 5승을 포함해 25승이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30승을 올렸다. 1998년 LPGA 신인상을 수상했고, 2003년에는 베어트로피, 2006년에는 헤더파 선수상을 각각 받았다. LPGA 투어 통산 상금은 1258만3713달러(약 142억8251만원), 생애 최저타는 1998년 제이미파크로거클래식 2라운드에서 기록한 61타, 연장전은 6전 6승이다. 미국 스포츠전문 매체 ESPN은 그녀를 ‘한국의 아널드 파머’라고 평가했다. 아널드 파머는 골프의 전설과도 같은 선수다.
어떻게 이런 업적을 이뤄냈을까. 미국에 가기 전에 그녀는 원대한 꿈을 가졌다. ‘명예의 전당’에 반드시 들어간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이미 기량은 만들어져 있었고, 정신무장만 잘하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졌다. 세계골프사에 ‘내 이름 석 자를 쓰겠다’는 꿈은 결국 이뤄졌다. 


사실 그녀가 내내 아쉬운 것은 커리어그랜드슬램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메이저대회 5승을 올리고도 5개 그랜드슬램에서 2개의 우승 타이틀을 손에 쥐지 못했다. 자라나는 차세대 주니어들이 이를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래서 드림골프단 단장 역할을 맡고 있다. 주니어에 애착을 갖고 있는 그녀는 아마도 은퇴하면 후진양성에 ‘올인’할 가능성이 크다.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착잡하다는 박세리. 그녀의 결혼관은? “나도 그냥 여자다. 원하는 거 없다. 그저 남자답게 대시해주는 거? 남자들이 나를 어렵게 생각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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