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조작하고 연출한 치밀한 ‘잔혹 게임’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9 08:00
  • 호수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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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청테이프 살인 사건

부산시 서구 서대신동에 살던 구아무개씨(여·38)는 일찍 사회에 나와 유흥업소 생활을 오래했다. 구씨는 약 9년 정도 동거하던 박아무개씨(남·45)와 2007년 9월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부부는 유흥업소 밀집지역에서 술집을 함께 운영하며 생활했다. 2008년 5월7일, 새벽에 영업을 마친 부부는 시간차를 두고 귀가했다. 구씨가 집에 들어간 시간은 오전 6시쯤이다. 그는 평소대로 밀린 집안일을 처리했다. 오전 7시쯤 남편이 먼저 잠자리에 들었고, 구씨도 뒤따라 남편 옆에 누웠다.

부부가 잠에서 깬 시간은 점심 무렵인 오후 12시10분쯤이다. 박씨는 외출 준비를 하면서 구씨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오후 1시쯤 박씨는 외출하고, 구씨는 계속 잠을 잤다.

오후 7시25분쯤 외출했던 박씨가 집에 들어왔다. 그런데 잠겨 있어야 할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집 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온갖 물건들이 거실에 내팽개쳐져 있었는데, 누군가 뒤진 흔적이 역력했다.

박씨는 천천히 안방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은 켜져 있었고, 거실과 마찬가지로 난장판이 돼 있었다. 이어 침대 쪽을 바라본 박씨는 기겁했다. 아내가 침대 위에 반드시 누운 상태로 숨져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이 기이했다. 손과 발, 얼굴에는 청테이프가 칭칭 감겨 있었다. 박씨는 깜짝 놀라 112에 신고했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범인의 수상한 발자국

출동한 경찰은 사건 현장을 정밀감식했다. 안방 창문은 열린 상태였다. 바깥쪽의 겨울용 바람막이 비닐은 칼 같은 것으로 찢겨져 있었다. 현장 정황상 금품을 노린 ‘강도 살인’이 분명해 보였다. 안방에는 구씨가 쓰던 파우더 화장품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그 안에 있던 분가루가 쏟아져 나왔다. 그 위에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운동화 발자국도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런데 사건 현장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경찰은 현장을 정밀감식하면서 여러 가지 모순점을 발견한다. 부부가 살던 주택은 4층 다세대 건물 꼭대기 층이다. 인근에는 비슷한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주택 밀집지역이다.

외부에서 구씨 집 창문으로 침입하려면 지상에서 건물 벽을 타고 올라가거나 옥상에서 내려가는 방법 두 가지다. 건물 벽을 타고 올라가는 것은 위험하고 사람들의 눈에 띄기도 쉬워 보였다. 옥상에서 4층 창문까지 맨손으로 내려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어떤 방법이든 외부에서 침입했다면 건물 벽이나 옥상, 베란다에 흔적이 남기 마련인데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경찰은 창문 쪽에서 수상한 발자국 하나를 발견한다. 창문 옆에는 오디오가 놓여 있었는데 스피커 위에 분가루가 묻은 발자국이 남겨져 있었다.

이게 심상치 않았다. 범인이 창문을 통해 집 안에 들어온 후 파우더 화장품이 바닥에 떨어졌고, 다시 창문을 통해 나갔다면 발자국의 방향은 창문 쪽을 향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발자국은 방 안쪽을 향해 있었다. 집 안에 들어온 범인이 현관문을 놔두고 위험천만하고 발각되기 쉬운 창문을 통해 나갔을 리도 만무했다. 결과적으로 범인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았던 것이다.

이제 범인이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현관문이 유일하다. 범인이 문을 따고 들어갔거나 안에서 열어줘야만 가능하다. 경찰 조사 결과 현관문에는 열쇠가 아닌 다른 도구를 이용해 문을 따거나 훼손한 흔적이 없었다. 범인의 지문도 나오지 않았다. 남은 방법은 구씨가 현관문을 열어주는 방법밖에 없다. 이것은 구씨가 살아 있어야만 가능하다.

구씨의 시신에서는 외상이나 저항한 흔적이 없었다. 구씨가 살아 있을 때 범인이 청테이프로 결박하거나 제압하려고 했다면 심한 몸싸움이 예상된다. 그런데 구씨의 몸에서는 별다른 외상이나 저항 흔적이 없었다.

사건 현장에 범인이 남긴 발자국
사건 현장에 범인이 남긴 발자국

사건 현장 조작하고 위장

구씨의 몸에 감겨진 청테이프의 상태도 이상했다. 살인 사건의 범행 도구 중 청테이프는 결박을 위한 용도다. 손을 결박할 때는 팔을 뒤로 꺾어서 묶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구씨는 앞쪽으로 손목이 묶여 있었다. 결박이나 제압 용도로 보기에는 허술하다.

구씨의 얼굴에 감긴 청테이프도 예사롭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에 따르면 구씨의 사망원인은 ‘비구폐색성질식사’였다. 코와 입이 동시에 막혀 산소 공급이 중단돼 죽은 것이다. 구씨는 얼굴 전체와 목까지 청테이프로 감겨 있었다. 언뜻 청테이프가 코와 입을 막아 이로 인해 질식해 숨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신에 감긴 청테이프의 상태는 너무 깨끗했다. 구씨가 살아 있을 때 청테이프가 감겼다면 고통 때문에 몸부림을 치게 되고 이로 인해 청테이프는 구겨지거나 말려 올라가 있어야 한다. 시신에 감긴 청테이프에는 이런 흔적이 전혀 없었다. 이것은 구씨가 이미 숨진 상태에서 범인이 청테이프를 감았다는 것을 말한다. 또 구씨의 시신은 침대 위에 반듯하게 누워 있는 형태였는데, 시신을 정리해 놓은 모양새다.

이를 토대로 보면 구씨를 살해한 도구는 청테이프가 아닌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가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 베개나 쿠션 등으로 눌러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구씨가 현관문을 열어줬다는 추론도 성립이 안 된다. 경찰 감식 결과 현장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지문이나 DNA가 나오지 않았다. 청테이프에서는 지문 대신 장갑흔이 나왔다. 범인이 장갑을 끼고 청테이프를 감은 것이다. 범인은 이렇듯 자신의 흔적을 철저하게 감췄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집 안 곳곳에 남아 있던 발자국이다. 범인은 왜 추적 가능성이 있는 발자국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고 나갔을까. 파우더 화장품은 범인이 집 안을 뒤지던 중 우연히 떨어진 게 아니다. 이 화장품 용기는 손으로 돌려야만 열리게 돼 있다. 뚜껑을 열어도 그 안에 내용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덮개가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2012년 3월17일 이 사건을 자세히 다뤘다. 당시 제작진은 구씨 집 안에 있던 화장대 정도의 높이에서 파우더 화장품의 용기가 바닥에 떨어져 열리거나 그 안에 있던 내용물이 쏟아져 나오는지 실험을 했다. 수차례 같은 실험을 반복했으나 파우더 화장품이 열리거나 내용물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결론적으로 범인은 사건 현장을 조작하고 위장했다. 강도가 침입해 구씨를 죽인 것처럼 집 안에 있는 물건을 어지럽게 해 놓았다. 구씨가 청테이프에 감겨 질식사한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침입경로도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나간 것처럼 꾸몄다. 의도적으로 베이킹파우더가 바닥에 떨어진 듯 연출하고 인증하듯 일부러 발자국을 남기고 갔다. 현장에 남겨진 신발 자국은 270mm인데, 범인의 발은 이보다 크거나 작다고 봐야 한다. 범인이 일부러 자신의 신발 크기와 다른 자국을 남겨 경찰 수사선상에서 벗어나려는 꼼수로 보인다. 발자국을 남긴 신발이 마모가 없는 새 신발인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일련의 행동은 범인이 구씨와 가까운 면식범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전혀 모르는 사이라면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시간과 공을 들여 연출할 이유가 없다.

범인이 면식범이라는 근거는 또 있다. 구씨는 집 안에 반려견 3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평소에도 외부인을 보면 사납게 짖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만약 외부인이 집 안에 침입했다면 반려견이 짖었어야 하는데 사건이 일어난 날에는 조용했다는 것이다.

 

용의선상에서 빠져나간 남편

살인 사건에서 ‘사망 시각’은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다. 정확한 사망 시간을 알아야 용의자도 특정할 수 있다. 남편 박씨는 경찰 조사에서 “내가 외출할 때까지 아내는 살아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구씨는 남편이 외출한 오후 1시부터 시신으로 발견된 오후 7시25분 사이에 살해됐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남편의 말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는 오로지 ‘말’뿐이다. 국과수 부검에서도 사망 시각이 정확히 나오지 않아 실제 구씨가 언제 살해됐는지는 알 수가 없다. 구씨가 누워 있던 침대의 전기장판이 켜져 있었던 것에 원인이 있다.

시신을 발견했을 때 전기장판의 온도는 38.7도에 맞춰져 있었다. 당시 5월 초순이었지만 일부 지역은 30도를 오르내릴 만큼 초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구씨의 복장도 반바지와 반팔 차림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범인이 의도적으로 전기장판을 켜 놨다고 봐야 한다. 이로 인해 시신은 발견될 때까지 체온이 떨어지지 않았고 사망 시각을 알 수도 없게 됐다.

구씨가 남편이 외출하기 이전에 사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이 사건 당일 구씨의 통신내역을 조사해 보니 낮 12시37분과 42분에 친구에게 걸려온 두 통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남편의 말대로라면 이 시간은 구씨가 잠에서 깨어 있을 시간이다. 오후 2시에는 우체국 집배원이 등기를 전달하기 위해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왜 구씨를 죽인 것일까. 지금까지 살해동기가 명확하지 않다. 구씨가 남편과 함께 유흥주점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당시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신용불량자인 남편이 구씨를 내세워 사채를 끌어다 쓰면서 4000만원에 달하는 채무가 있었다. 집 안을 요란하게 뒤진 흔적이 있었지만 실제 없어진 물건도 없었다. 집 안에 범인이 훔쳐갈 만한 값나가는 물건도 없었다고 한다. 성폭행을 의심할 만한 것도 나오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평판도 좋아 원한을 살 만한 사람도 찾지 못했다. 이에 따라 범인의 목적은 처음부터 ‘살인’에 무게가 실렸다

사건 발생 이후 남편 박씨가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아내를 살해할 만한 동기를 찾지 못했다. 구씨는 사망하기 1~2년 전에 각각 3개의 생명보험에 가입했다. 그러나 구씨와 박씨는 혼인신고가 돼 있지 않아 보험금(2억2200만원)은 구씨의 친정 식구들이 받아갔다. 구씨가 죽음으로써 박씨가 얻는 금전적 이익은 없었던 것이다. 또 박씨가 외출한 뒤 집에 돌아와 시신을 발견할 때까지의 알리바이도 모두 확인됐다. 결국 사망추정 시각의 함정에 빠져 사건은 미제로 남고 말았다.

미제사건을 모방해 살인계획 세운 범인

범인은 완전범죄를 노리고 살인계획을 세웠다. 특히 기존의 미제사건을 모방해 실행에 옮긴 정황이 보인다. 2004년 9월 ‘광주 여대생 테이프 살인 사건’과 2005년 11월 ‘대전 갈마동 빌라 살인 사건’이 이번 사건과 유사하다. 모두 ‘부산 청테이프 살인 사건’ 이전에 발생했으며 현재까지 미제로 남아 있다.

‘광주 사건’은 대학 졸업반이었던 여대생이 집 안에서 살해됐는데 머리와 얼굴이 노란 상자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었다. 직접적인 사인은 ‘비구폐쇄로 인한 질식사’였다. 부산 피해자와 얼굴에 감겨진 형태가 비슷하다. 두 사건 이전에 이와 유사한 것은 없었다.

‘대전 사건’은 남편과 떨어져 살던 20대 주부가 집 안에서 살해됐다. 당시 집 안에 있던 TV가 켜져 있었고, 방 안에는 살림살이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범인은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고 부침가루를 방 안 곳곳에 뿌려 놓았으나 이로 인해 발자국이 남았다. 또 방 안에 있는 보일러를 켜서 시신이 빨리 부패되도록 했다. 당시 초겨울 날씨에다 사망한 지 3~4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피해자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부패해 있었다. 이런 정황에 따라 범인은 기존의 미제사건을 분석한 뒤 자신의 살인계획에 반영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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