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헌 인터뷰②] “공안사건 수사·판결 유감스러운 사례 나와”
  • 김지영 기자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9.08.20 14: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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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30주년 특별기획 ] 대한민국, 길을 묻다(27)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이야기 《그분을 생각한다》 펴낸 ‘인권변호사’ 한승헌

한 사람의 삶 크기와 무게는 그 시대 요구를 얼마나 제대로 반영해 충실히 응답했느냐로 측정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1세대 인권변호사’인 한승헌 변호사의 삶의 크기와 무게는 크고 묵직하다. 독재정권 서슬이 퍼렇던 70~80년대, 당시 ‘민주화’라는 시대 요구에 몸소 응답했던 한승헌 변호사. 그는 변호사로 누릴 수 있는 안온한 삶을 스스로 뒤로 물렸다. 그 자리를 궂은일과 남을 위해 헌신하는 일들로 채웠다. 법정 싸움과 거리 투쟁 등으로 두 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한 변호사는 1967년 동백림 간첩단 조작 사건부터 1974년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등 한국 현대사를 얼룩지게 한 시국사건들 한복판에 섰다. 양심수와 시국사범 변호에 발 벗고 나섰다. 이후에도 문익환 목사 방북 사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 변론을 맡았다.

그는 최근 출간한 스물일곱 명의 ‘잊을 수 없는 사람들’ 이야기 《그분을 생각한다》에서 “이 세상에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의인이 있는가 하면,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도 있다”며 “우리는 자칫 자신이 의인이라고 착각하는 죄인이 되어 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준엄한 자기성찰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1934년생, 올해 85세. 법조계 원로로 여전히 냉철한 이성으로 시대를 꿰뚫는 혜안을 소유한 이 시대 진정한 원로 가운데 한 분이다. “누구로부터도 책잡힐 오점 하나 없이 늘 올곧은 자세를 유지해 온 참된 지식인의 본보기”로도 평해진다.

그런 한 변호사와 인터뷰하긴 결코 쉽지 않았다. 6월11일 오후 5시경 한 변호사의 서울 은평구 갈현동 자택으로 전화를 걸어 인터뷰 요청을 했다. 한 변호사는 첫 전화통화에선 승낙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날 두 번째 통화에서 “좋은 말 할 게 없어서 (우리 집에) 오셔도 들을 게 없을 거다”며 “우리 집사람이 (언론에) 나가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말린다. 집사람 말을 들어야지”라며 정중히 사양했다. 그때부터 한 변호사와 인터뷰 실랑이가 한 달 이상 이어졌다. 기자가 한 변호사 자택을 불시에 ‘급습’하기도 했다. 삼고초려 끝에 결국 7월31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 19층 카페에서 한 변호사와 마주 앉는 데 성공했다. ‘유머리스트’로도 유명한 한 변호사의 유머 본색은 이날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90분 인터뷰였다. 한 변호사의 깡마른 얼굴엔 형형한 눈빛이 서려 있었다. 

2004년 4월27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 변호인단 문재인 간사와 한승헌 변호사가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4년 4월27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에서 변호인단 문재인 간사와 한승헌 변호사가 뭔가를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요즘도 시국사건에 관심이 많으시죠.

“난 이제 은퇴한 고물이어서 그전과는 같지 않지만 사건에 따라선 관련 기사를 유심히 보고 있지요. 예전에 비해선 인권 침해 사례가 많이 시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공안사건에선 수사나 판결에서 유감스러운 사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에 많은 시국사건 변론을 맡으셨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인가요.

“제가 언론 인터뷰를 열 번 하면 열 번 다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그런데 자칫하면 사건의 무슨 경중을 비교해 말하는 것 같아 난처할 경우가 있어요. 그래도 굳이 답을 한다면 검거 기소된 인원수, 사건의 정치적 성격, 형벌의 정도, 사회적 반응 등을 가지고 말할 수는 있겠지요. 예컨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 그런 충격적인 사건들은 지금도 기억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후 검찰과 법원 등 과거사위원회에서 재조사하고 재심의해 무죄 판결을 받아내지 않았습니까.

“재심에 무죄 판결이 난 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겠죠. 그러나 인혁당 사건이나 그 밖의 소위 공안사건으로 사형집행까지 당한 사람한텐 재심 무죄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때늦은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란 말까지 있지 않습니까.”

2010년쯤 변호사님께서 갖고 계신 책과 시국사건 기록들을 서울대로 보내셨습니다. 당시 언론 인터뷰를 보니 ‘나머지 서적이나 자료도 분양하거나 기증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더 분양하거나 기증하셨는지요.

“그때 서울대로 사건 기록과 자료를 보낸 건 사실인데, 서울대에서 전부 복사한 다음 원자료는 다시 저에게 돌려줬습니다. 대학에서 사건 기록 내용을 볼 수 있으면 되지 꼭 친필 자료를 볼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다시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시국사건 기록들을 계속 가지고 계실 건가요.

“주변에서 저한테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말해 줍니다. 이미 제 모교인 전북대 중앙도서관에 ‘산민문고’를 개설해 제가 기증한 상당량의 서적, 문헌이 보관돼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바로 옆에 공간이 있으니까 그 문고를 확장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한편 제 장서 일부는 민족문제연구소에 가 있으니까 거기로 보내는 방법도 있습니다. 사법 관련 기념관에 자료실을 마련해 소장하는 것이 좋겠다는 아이디어도 최근 나온 바 있습니다.”

변호사님께서 1975년 여름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을 때 반독재 시위를 하다가 옆방에 들어온 감방 후배 문재인을 위해 ‘러닝셔츠 이웃돕기’를 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나요.

“마치 내가 대통령하고 친하다는 자랑을 하는 것처럼 돼서 지금은 그 얘기를 더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전에 쓴 《운명》이란 책에서 언급해서 화제가 된 거죠. 더구나 대통령 되신 다음에 여기저기 그 기사가 나가니까 화제가 된 것입니다.”

 

(한승헌 변호사가 ‘어떤 조사(弔辭)’라는 글을 써서 반공법 위반 혐의로 1975년 3월 서울구치소에 구속돼 있을 때다. 경희대 학생회 간부인 문재인이 시위를 하다 구속됐다. 당시 한 변호사는 교도관을 통해 러닝셔츠 한 벌을 일면식도 없던 문재인 학생에게 보냈다. 훗날 문 대통령은 《운명》에서 “(한 변호사가 보내준 속옷이) 큰 도움이 됐다. 나중에 1987년 대우조선 사건으로 공동변호인이 됐을 때 말씀드리니 기억을 하셨다”고 언급했다.)

 

일제하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위안부 문제 등으로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수출보복을 하면서 한·일 양국 갈등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지금까지 한국에 대한 침략과 관련해 사과한 적이 있지만 나중에 그 사과를 거의 모두 뒤집고 딴소리를 해 왔지요. 그렇다고 해서 옛날 원한을 갖고 앞으로 한·일 관계가 계속 이렇게 나가면 안 되겠죠. 다만 모든 출발은 일본의 침략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그 근본을 일본이 잊어선 안 됩니다. 일본이 침략과 강압 통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에 한 번이라도 인정한 이상 책임을 모면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아베 정권이 한·일 갈등과 긴장을 극대화해 개헌을 하고 나아가 군사력을 강화하고 군국주의를 부활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아베 정권을 선택한 일본 국민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아닐까요.

“아베 정권이 선거에 의해 집권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 국민이 아베의 모든 주장이나 정책을 찬성하는 건 아닙니다. 흥미로운 건, 저하고 친한 일본인들은 거의 다 ‘반(反)아베’파예요. 그래서 만나면 서로 맞장구치면서 아베를 비판하죠. 그러면서도 아베를 권좌에서 밀어내진 못합니다. 일본의 민주 세력과 반정부 세력의 한계죠. 우리는 광장에서 촛불 들고 대통령을 탄핵시킨 국민이지만 일본은 상상도 못 하죠.”

 

“모든 출발은 일본의 침략에서 비롯된 것”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도 반아베 운동에 나설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엊그제 일본에서 2000여 명이 (아베 총리의 대한 수출보복 조치 등에 대해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어요. 거기에 저하고 친한 사람들 이름도 나와 있습니다. 일본 지식인들이 집단적으로 아베 정권을 비판하면서 그렇게 나온 데 대한 응답으로 우리 한국에서도 지식인들의 성명이 곧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금 의견을 모으고 있는 과정인데, 근일 중에 발표가 나올 것으로 믿습니다.”

변호사님도 서명하셨죠.

“제 이름도 끼어 있을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해빙됐다가 요즘은 주춤하고 있습니다. 북·미 관계는 아직 나빠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 한반도 정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해방 70년 동안 (남북이) 정말 서로 불신하고 증오했는데 그게 몇 년 사이에 다 잊히기는 어려울 거예요. 제가 보기엔 아직도 남북 간에 완전한 신뢰가 회복된 게 아닙니다. 이 때문에 이런 좀 애매한, 정말 오해하기 쉬운 이런 시기가 어느 정도는 지속될 거라 봅니다.”

남북 간 신뢰 회복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간만 가도록 내버려둔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나아지는 게 아닙니다. 그 시간 동안 한 가지씩, 한 가지씩 신뢰를 쌓다보면 요즘 같은 애매한 현상은 없어질 것 아닌가요. 남과 북이 잘 이해하고 일치하면 미국과 일본을 대하는 힘이 강해질 수 있죠.”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 가운데 잘하고 있는 것과 잘못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현재 여건하에서 남북관계는 정부가 제대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미국을 보면 역시 자국 이익을 우선으로 하다보니 남북이 더 어긋나는 것도 볼 수 있어요. 우리가 그런 걸 알고 극복하면 남북이 이른바 평화세력이 돼 더 좋은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텐데, 조금 두고 봐야죠.”

그런데 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선 불만의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경제에 대해 말 몇 마디로 옳고 그름을 얘기할 수 없죠. 더욱이 저 같은 사람은 전문가도 아닌데 무슨 말을 하겠어요. 그러나 큰 틀에서 남북이 서로 신뢰하고 안정 세력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면 크고 작은 문제들도 부수적으로 잘 해결될 거라 봅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해 주십시오.

“그냥 나이 든 할아버지로서 제 손자 걱정하는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있는데, 그게 괜히 어른 중심으로 이러고저러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생채기를 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청년기에 접어든 젊은이들에겐 ‘입신을 한 다음엔 반드시 헌신을 해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몇 해 전, 서울대 로스쿨 입학식 기념 강연에서도 이 말을 했습니다.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도 가끔 쓰지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아까 말한 책이나 자료(시국사건)를 잘 정리해 동시대나 후대 사람들의 연구나 활동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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