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추억’ 실체 33년 만에 드러나나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0 13:00
  • 호수 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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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락인의 사건추적] 경찰,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 이춘재 공개 막후

국내 대표 미제사건 중 하나인 ‘화성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의 실체가 드러났다. 경찰은 현재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56)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다. 최초 사건이 발생한 지 33년 만이다. 이로써 ‘살인의 추억’으로 고통받던 지역 주민들도 긴 악몽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 사건은 1986년 9월15일부터 1991년 4월3일까지 경기도 화성시(당시 화성군) 태안읍 일대에서 10명의 부녀자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사건이다. 이 중 8번째를 제외한 9명이 동일범에게 희생됐다. 그런데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뀔 때까지 베일 속에 있던 범인의 모습이 어떻게 드러난 것일까. 그 내막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사건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1986년 12월1일 연쇄 강간살인 사건이 발생한 화성군 태안면 주민들이 현장 주변 논에 허수아비를 세워놓았다. ⓒ 연합뉴스
1986년 12월1일 연쇄 강간살인 사건이 발생한 화성군 태안면 주민들이 현장 주변 논에 허수아비를 세워놓았다. ⓒ 연합뉴스

공포의 서막 오르다

1986년 9월15일 오전 6시20분쯤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의 풀밭에서 이아무개씨(여·71)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공포의 서막이 올랐다. 이씨는 수원 시내 딸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집으로 오다가 실종됐고 5일 만에 하의가 벗겨진 채 발견됐다.

두 번째 희생자는 35일 만에 나왔다. 10월20일 오후 2시쯤 결혼 상담차 인근 마을에 다녀오던 박아무개씨(여·25)가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에서 발견된다. 1차 사건 현장에서 불과 4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박씨도 옷이 모두 벗겨진 채 목이 졸리고 드라이버 같은 흉기에 4곳이나 찔린 상태였다.

동일한 수법의 두 번째 희생자가 나오자 경찰은 바짝 긴장했다. 그래도 연쇄살인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범인은 보란 듯이 경찰을 비웃었다. 정확히 58일 만에 세 번째 희생자인 주부 권아무개씨(여·24)가 살해당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하의가 벗겨지고 양손이 묶인 채였다.

범인의 살인행각은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틀 뒤에 네 번째 여성이 희생된다. 이아무개씨(여·23)는 맞선을 본 후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다 살해됐다. 화성시 정남면 관향리 논두렁에서 스타킹으로 목이 졸린 상태였다.

해가 바뀌었지만 살인은 계속 이어졌다. 1987년 1월10일 오후 8시50분쯤 화성시 태안읍 황계리 논바닥에서 여고생인 홍아무개양(18)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고 양손은 뒤로 묶인 채였다. 5차 희생자인 홍양도 성폭행당한 후 살해됐다. 범인은 홍양을 살해한 후 고추밭을 가로질러 잠적했다. 경찰은 처음으로 범인의 신발 자국(245mm)을 확보할 수 있었으나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면서 족적은 비에 묻혀버렸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일어나던 연쇄살인은 한동안 잠잠했다. 1월에 5차 희생자가 나온 이후 4월이 지날 때까지 살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범인의 살인행각이 멈춘 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 때쯤 또다시 화성에서 시신이 발견된다.

1987년 5월2일 오후 11시쯤 남편을 마중 나갔던 주부 박아무개씨(30)가 2차 사건이 발생한 태안읍 진안동 야산에서 발견된다. 박씨는 착용했던 브래지어 끈과 블라우스로 목이 졸려 있었다. 이번에도 피해자는 여성이었고, 성폭행을 당한 후였다. 1~5차 사건과 수법이 똑같았다.

4개월 후인 1988년 9월7일 오후 9시30분쯤 7차 희생자가 나왔다. 화성시 팔달면 가재리 농수로에서 안아무개씨(여·54)가 상의가 벗겨지고 양말과 손수건으로 재갈이 물린 채 발견된다. 직장에 다니던 안씨는 퇴근 후 버스에서 내려 귀가하다가 변을 당했다.

9일 후인 1988년 9월16일 화성 인근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수사 당국은 처음에는 동일범에 의한 8번째 연쇄살인으로 봤다. 이날 오전 2시쯤 진안동 자신의 집 안방에서 잠을 자던 여중생 박아무개양(13)이 성폭행당한 후 피살된 것이다.

현장에는 남성의 음모가 남아 있었다. 경찰은 인근 경운기수리센터 종업원인 윤아무개씨(22)을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했다. 현장에 남아 있던 음모와 윤씨의 음모를 비교해 보니 일치했다. 하지만 이전의 범행과는 수법이 완전히 달랐다. 이로써 8차 사건은 동일범의 연쇄사건에서 제외됐다.

1988년 9월7일 7차 범행 이후 범인은 약 2년2개월 동안 살인행각을 멈췄다. 그것도 잠시였다. 화성 연쇄살인 공포가 잦아들 무렵인 1990년 11월15일 8차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이날 오후 6시30분쯤 태안읍 병점5리 야산 소나무 밑에서 중학교 1학년이던 김아무개양(13)이 발견된다. 최연소 피해자다. 김양은 학교 수업이 끝난 후 귀가하다가 성폭행당한 후 목 졸려 살해됐다. 시신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범인은 김양의 필통에서 면도칼을 꺼내 가슴 부위를 격자 모양으로 38번이나 그었다.

마지막 9차 사건의 희생자는 약 5개월 후인 1991년 4월3일 오후 9시쯤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발견된다. 딸 집에 다녀오던 마을 주민 권아무개씨(여·60)가 성폭행당한 후 피살됐다. 권씨의 목에는 신고 있던 스타킹이 감겨 있고, 음부가 크게 훼손당했다. 이 사건을 끝으로 4년7개월간 화성 일대에서 발생했던 ‘연쇄살인극’도 막을 내렸다.

1993년 7월14일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가 화성군 정남면 관항리 인근 농수로에서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김아무개씨가 버렸다고 진술한 금반지 등 유류품을 찾고 있다. ⓒ 연합뉴스
1993년 7월14일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가 화성군 정남면 관항리 인근 농수로에서 자신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김아무개씨가 버렸다고 진술한 금반지 등 유류품을 찾고 있다. ⓒ 연합뉴스

공소시효 지나 처벌 어려워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것과 피해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양손을 뒤로 묶은 뒤 성폭행하거나 성기를 훼손하고 목 졸라 살해했다는 점이다. 살해 도구는 흉기 대신 피해자의 옷, 스타킹, 브래지어 등을 이용했다. 또 피해자의 나이(10~70대)를 가리지 않고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여기에 범행이 화성군 태안읍을 중심으로 반경 3㎞ 안 4개 읍·면에서 발생했다. 그렇다고 범인이 자신의 모습을 완벽하게 숨긴 것은 아니다. 긴 범행 기간과 범행 횟수가 늘어나면서 예상치 않은 곳에 흔적을 남기고 목격자도 있었다.

4차 사건이 일어나기 보름 전인 1986년 11월30일 오후 9시쯤 김아무개씨(여·45)는 교회에 가려고 태안읍 정남리 논길을 지나고 있었다. 이때 흉기를 든 괴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김씨는 범인이 자신의 가방을 뒤지고 있는 사이 달아나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당시 범인은 김씨의 양말로 양손을 결박하고, 속옷(팬티와 거들)으로 입에 재갈을 물리고 얼굴을 덮었다. 범행 수법은 이전과 똑같았다.

경찰은 김씨를 성폭행한 범인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동일범으로 판단했다. 김씨의 진술에 의해 범인의 나이는 20대 중반이고, 키 165~170cm에 호리호리한 몸매, 오똑한 코에 쌍꺼풀이 없고 눈매가 날카롭다는 인상착의가 만들어졌다.

경찰은 7차 사건 이후 범인에 대한 유력한 진술을 확보했다. 그날 밤 발안에서 수원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에 한 남성이 올라탔다. 피해 여성이 살해당한 곳에서 400m 떨어진 지점이다. 당시 운전기사는 “남자의 운동화와 바지가 젖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스포츠형 머리에 165~170cm가량의 키, 25~27세 사이의 남성으로 생존자 김씨의 진술과 일치했다.

운전기사에 따르면 해당 남성은 자신에게 담뱃불을 빌리기도 했는데, 그때 오른쪽 둘째 손가락에 작은 흉터와 새끼손가락에 봉숭아 물을 들인 흔적이 보였다. 시계를 찬 왼손 손목에 작은 문신이나 점이 있는 것을 봤다.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몽타주가 제작됐고, 경찰은 현상금 500만원을 내걸었지만 이미 이 남성은 사라진 뒤였다. 4, 5, 8, 9차 사건에서 정액과 혈흔, 모발 등을 통해 확인된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국내 과학수사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방대한 범죄 데이터베이스도 구축됐다. 경찰이 확보한 DNA와 일치하는 사람이 나오면 범인이 누군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됐다.

경찰은 지난 7월 이 사건의 증거물 일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DNA 분석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범죄 데이터베이스에 보관된 DNA와 일치 여부를 확인했고, 이 중 5차(1987년 1월), 7차(1988년 9월), 9차(1990년 11월) 사건 현장 증거물에서 검출된 DNA와 이씨의 것이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경찰은 ‘이춘재의 인적사항’을 공개했다.

이씨는 1994년 처제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성폭행한 후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이 사건까지 합치면 이씨가 살해한 피해자는 총 10명이 된다. 현재 이씨는 연쇄살인을 부인하고 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추가 조사를 통해 이씨가 진범인지를 밝힐 예정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보를 종합하면 연쇄살인 범인의 혈액형은 B형이다. 키는 165~170cm에 호리호리하고 쌍꺼풀이 없고, 날카롭고 갸름한 얼굴, 구부정한 몸매, 왼쪽 손목에 점(문신)이 있다. 이씨와 비교해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문제는 이씨가 범인으로 확정돼도 처벌할 근거는 없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2006년 4월에 끝났다. 다만, 경찰은 “공소시효가 만료됐더라도 역사적 소명을 갖고 실체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완전범죄’ 무너뜨리는 시민 감시자들

최악의 연쇄살인으로 기록된 ‘화성 사건’은 전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 비록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범인의 실체를 밝히려는 노력은 계속됐다.

지난 2016년 10월13일 저녁 기자에게 한 통의 제보가 왔다. 화성 인근 지역에 사는 B씨(남)였다. 그는 “화성 연쇄살인범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며 자신의 연락처를 남겼다. 그러면서 “아는 형님인데 너무나 몽타주가 똑같아서 상의 좀 해 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쓴 기사를 보고 제보한 것이다.

기자는 용의자의 특징을 메모한 후 B씨와 통화했다. 그에 따르면 기사 속에 있는 몽타주를 보고 단번에 자신과 가깝게 지냈던 C씨라고 단정했다. B씨는 “몽타주를 아내에게 보여줬는데 너무 똑같아서 소름끼쳐 했다”는 말까지 전했다.

하지만 얼굴이 닮았다고 해서 용의자로 볼 수는 없었다. 기자는 B씨에게 C씨의 나이부터 물어봤다. “50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다른 곳으로 이사했지만 사건 당시 살던 지역도 화성 인근이었다.

C씨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수시로 거주지를 옮겨 다니고, 자신의 개인 신상을 말하지 않았으며 만약 물어보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든지 항시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 것도 이상한 점이었다.

눈매가 날카롭고 성격도 거칠다고 했다. 여러 가지 정보가 용의자의 특징과 아주 유사했다. 전화도 대포폰을 쓴다고 했다. 기자는 B씨를 통해 C씨의 사진을 확보했다. 사진 속 얼굴은 몽타주와 너무 닮아 있었다.

기자는 B씨의 제보가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까지 확보된 정보를 가지고 후배 기자와 상의하고 친분 있는 경찰 간부와도 만나 자문을 구했다. 이들도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봤다. ‘공소시효’ 문제 등을 놓고 의견도 교환했다. 그러나 이번 경찰 발표로 C씨는 화성 사건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확인됐다.

지금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수많은 미제사건들, 전국 곳곳에 B씨 같은 시민 감시자들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완전범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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