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의료분쟁 논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싸움”
  • 경기취재본부 윤현민 기자 (hmyun911@sisajournal.com)
  • 승인 2019.10.25 11: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해 주요 병원 의료분쟁 비용 ‘반토막’

지역 내 한 병원의 태아 사망사고로 다시 의료분쟁 논란이 촉발됐다. 이번에도 피해자에 치우친 의료과실 입증책임에 대한 개선책이 관건이다. 보건당국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해자의 조정신청 건수도 매년 증가세다. 반면 의료기관의 의료분쟁 비용은 전년대비 절반 가까이 줄어든 실정이다. 이 와중에 의료사고 피해구제 등 관련 법안들은 수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경기 부천시 A 여성전문병원 앞에서 태아 사망 피해 유가족이 현수막을 걸고 항의 시위 중이다. /윤현민 기자
경기 부천시 A 여성전문병원 앞에서 태아 사망 피해 유가족이 현수막을 걸고 항의 시위 중이다. /윤현민 기자

위장약 처방 후 31주 태아 자궁파열 질식사

24일 경기 부천시 A 여성전문병원과 태아 사망사고 피해자 유가족에 따르면 지난 4월 15일 당시 임신 31주째인 산모 B(39)씨는 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A병원을 찾았다. 이날 B씨는 병원으로부터 위장약 처방을 받고 입원 후 하루 만에 퇴원했다.
이후 통증이 더 심해져 4월 21일 급히 병원에 다시 왔지만 태아는 사망한 뒤였다.
산모의 자궁파열에 의한 질식사였다.

B씨의 남편은 “임신진단 때부터 걱정스런 마음으로 산모의 자궁근종수술 이력과 희귀혈액형을 얘기하자 담당의사는 아무 걱정 말고 수혈도 문제없다고 해 놓고 막상 21일 병원에 오니 여기선 수술할 수 없다고 해서 허겁지겁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는데 혈액공급이 제 때 안 되다 보니 혈압도 급히 떨어져 하마터면 아내까지 잃을 뻔했다”고 말했다.

이에 병원 측은 자궁파열의 사전징후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병원 관계자는 “당초 자궁파열은 예측 불가능한 질병인데다 환자의 입·퇴원 당시 시행한 검사상 태아는 정상이었으며, 자궁파열을 의심할만한 의학적 이상소견은 없었다”며 “퇴원 4일 후 갑작스런 복통으로 내원했을 당시 (태아는) 이미 사산된 것으로 확인됐고, 상급 종합병원으로 옮기기 전날 저녁까지 산모가 태동을 느꼈다고 한 걸 보면 갑작스런 자궁파열이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했다.

양 측의 책임공방 속에 유가족은 병원 앞 항의시위까지 나섰다. B씨의 남편, 오빠, 어머니 등 일가족이 나와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 달 넘게 시위를 벌이다 지난 16일께 양 측은 피해보상에 합의했다. 

 

조정신청 늘어도 병원 의료분쟁 비용은 50% 줄어

이 같은 의료사고 의혹에 따른 조정신청은 해마다 늘고 있다. 최근 3년 통계치를 살펴봐도 연평균 20% 이상 증가세를 보인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2018 의료분쟁 조정·중재 통계 연보’에 따르면 조정신청 건수는 2016년 1907건이던 것이 2017년 2420건, 2018년 2926건으로 각각 26.9%와 20.9%씩 늘었다.  

하지만 정작 의료기관의 의료분쟁 비용은 반비례 하는 추세다. 부천시 관내 주요 병원을 놓고 봐도 전년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다. 해당 대학교 부속병원과 의료재단의 연도별 결산공시 분석결과 가톨릭중앙의료원의 의료분쟁비용은 2017년 33억2256만원에서 2018년 16억1560만원으로 51.4% 감소했다. 여기엔 부천성모병원을 비롯해 서울성모, 여의도성모, 의정부성모, 은평성모, 인천성모, 성빈센트, 대전성모 등 산하병원 8곳이 포함됐다.

세종병원(혜원의료재단)도 지난해 의료분쟁에 4억5351만원을 지출했다. 전년 10억3861만원보다 56.3% 줄어든 수치다. 순천향중앙의료원(서울, 부천, 천안, 구미 등 부속병원 4곳 합산)은 2017년 18억3759만원에서 이듬해 14억3127만원으로 22.1% 줄었다.

의료과실 규명과 피해자 구제는 여전히 요원한 모습이다. 실제 법적 다툼에서 피해자의 승소율도 1% 남짓에 불과하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사법연감 분석자료에 따르면 2017년 전국 법원에 접수된 의료사고 손해배상청구소송 955건 중 원고 전부승소는 11건(1.2%)이다. 연도별로는 ▲2016년 0.6%(970건 중 6건) ▲2015년 1.4%(963건 중 13건) ▲2014년 1.5%(946건 중 14건) 등이다.

이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예방교육팀 관계자는 “통계연보 작성 시 의료사고의 원인과 과정까지 일일이 분석하지는 않는다”며 “다만 해마다 고액사건의 증감에 따라 의료기관의 의료분쟁 비용도 격차를 보일 수는 있다”라고 했다.

 

의료법 등 개정안 수년째 국회 계류

관련법 정비를 통한 개선노력도 수년째 국회에서 맴돌고 있다. 앞서 지난 2017년 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의료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의료사고 감정신청 대상을 현행 법원, 검찰 등 기관에서 피해환자 등에까지 확대하는 게 골자다.

같은 당 윤후덕 의원도 2017년 10월 피신청인(의료기관)의 동의 없이도 조정절차가 자동 개시되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냈다. 하지만 이들 법안 모두 여태껏 소관 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당초 승산 없는 다툼이란 체념 섞인 지적까지 나온다. 한 시민활동가는 “의료행위는 전문영역이라 과실 여부를 규정짓기가 매우 어려워 결국 의료분쟁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 구제 차원에서 법 개정을 통해 의료진에게 과실 입증책임을 지우려 해도 의료계 반발로 성립되긴 힘들 것”이라고 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