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합의”라는데, 시진핑은 “협력” 주장, 왜?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4 17:00
  • 호수 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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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 몰린 시 주석, 미국과 화해 불가피하면서도 겉으론 ‘애국주의’ 강조

10월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중국과 무역분쟁과 관련해 매우 실질적인 1단계 합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이튿날 트위터에 “중국과 이룬 합의는 단연코 위대하고 애국적인 농부들을 위해 이뤄진 가장 위대하고 큰 합의”라고 자평했다. 이는 중국이 미국의 농산물을 대량 구매하겠다고 표명한 점을 부각한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합의는 서면화되지 않았다”면서 “11월 칠레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날 때까지 서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직후 중국 상무부는 “양국이 실질적인 진전을 이뤘으며, 최종 합의를 위한 방향으로 협력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발표문에는 1단계 합의나 미국산 농산물의 대규모 구매 등의 내용은 없이 ‘협력’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관영 신화통신도 관련 소식을 보도하면서 ‘합의했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10월15일 겅솽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이 설명하는 상황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황과 일치하며 차이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겅 대변인도 끝내 미국과 1단계 합의를 했다고 말하진 않았다.

6월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미·중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6월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이 미·중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애국주의’ 비웃듯 악화되는 중국 경제 

2018년 3월 미국이 중국의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율을 25% 인상하면서 촉발된 무역전쟁의 끝이 차츰 보이고 있다. 그동안 양국은 관세 부과와 관세율 인상을 6차례나 주고받으면서 전선을 확대해 왔다. 특히 지난 8월 상호 보복조치의 영향은 컸다. 미국은 2018년 중국의 대미 수출액 5432억 달러의 96% 규모인 5247억 달러의 중국산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거나 관세율을 올렸다. 이에 질세라, 중국도 2018년 미국의 대중 수출액 1551억 달러 전체에 달하는 미국산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거나 관세율을 높였다.

이번 보복 조치는 오는 12월15일 발효된다. 만약 그대로 실시될 경우 미국의 중국산 제품 수입관세율은 무역전쟁 이전 3.1%에서 22.7%로 급등한다. 중국의 미국산 제품 수입관세율도 7.5%에서 32%로 상승한다. 이럴 경우 향후 세계 무역거래는 악화된다. 특히 대중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이 받는 타격이 크다. 경제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대미 및 대중 수출이 각각 9억1000만 달러, 43억1000만 달러씩 감소할 것으로 추산됐다. 무엇보다 양국의 분쟁이 관세에서 환율·기술 등 경제 전반으로 확대해 나가는 조짐까지 보여 큰 우려를 샀다. 

이렇듯 확전일로였던 무역전쟁이 종전으로 방향을 튼 것은 양국의 국내 상황 때문이다. 먼저 미국은 야당인 민주당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조사 절차에 돌입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자랑해 왔던 경기 호황이 끝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통계로 드러난다. 지난 6월 이래 전월 대비 소비 증가율이 0%대에 머물고 있다.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개인소비가 GDP 성장률을 견인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 산업생산 증가율도 0%대다. 지난해에는 무역전쟁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했다. 기업 설비투자는 높은 증가세를 유지했고, 수출은 꾸준히 늘어났다. 하지만 올해 상황이 급변했다. 기업 설비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1분기 -0.1%, 2분기 0.7%로 추락했다. 수출도 1분기 1.1%, 2분기 -1.7%로 감소했다. 즉 무역전쟁의 한파가 미국 경제를 엄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올 3분기 GDP 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6.0%를 기록했다. 이는 중국이 분기별 GDP 성장률 통계를 공개한 1992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이처럼 성장률이 떨어진 이유는 내수와 수출이 모두 부진했기 때문이다. 3분기 소비지출의 성장 기여도는 3.75%로 지난 10년래 가장 낮았다. 수출은 7월 반짝 증가를 기록한 뒤 8~9월 연속 줄어들었다. 특히 대미 수출은 전월 대비 8월 -16%, 9월 -21.9%로 감소폭이 아주 컸다. 수입은 올해 들어 3월을 제외하고 계속 줄어들었다. 수입 감소는 기업투자 및 개인소비 하락으로 이어진다. 세계은행·IMF·OECD 등 주요 국제기관은 내년 중국의 GDP 성장률이 6%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런데 중국은 왜 미국과 1단계 합의한 걸 인정하지 않을까? 또 미국산 농산물의 대규모 구매 사실을 왜 회피할까? 이는 시진핑 주석이 중국인들에게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양보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사실 이번 1단계 합의 발표 시점은 중국 정부 입장에서 여러모로 곤혹스러웠다.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열렸던 건국 70주년 국경절 직후였다. 또한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 개최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다. 중국은 국경절을 앞두고 국기인 오성홍기로 대륙 전체를 도배하다시피 했다.

오성홍기는 도시 및 농촌의 거리와 주택가뿐만 아니라 유명 관광지까지 넘실댔다. 이는 24년째 중국에서 사는 필자조차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국경절 연휴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이런 분위기는 지속됐다. 그렇게 애국주의 열기를 고조시켰는데, 갑작스러운 미국과의 합의는 중국인 입장에서 당황스러울 수 있다. 얼마 전까지 중국 정부는 장기 항전 의사까지 내비치면서 협상에 임해 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이 집요하게 요구했던 농산물 구매를 받아들인 사실은 중국인들이 볼 때 자국의 패배를 의미한다.

비록 중국 언론은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지만, 미국산 농산물의 대규모 구매는 중국 정부가 직접 확인했다. 겅솽 대변인은 “올해 들어 중국 기업이 미국에서 사들인 농산물은 대두 2000만 톤, 돼지고기 70만 톤, 수수 70만 톤, 밀 23만 톤, 면화 32만 톤 등”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국내 수요에 따라 자체적으로 산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리커창 국무원 총리도 10월24일 주재한 상무회의에서 “농산물과 일용 소비재, 설비와 부품 등의 수입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10월11일 미·중 무역협상을 마치고 악수하는 양국 대표 라이트하이저(왼쪽)와 류허 ⓒ 연합뉴스
10월11일 미·중 무역협상을 마치고 악수하는 양국 대표 라이트하이저(왼쪽)와 류허 ⓒ 연합뉴스

무역전쟁 앞 위태로운 시진핑 지도력 

10월28일 개최된 4중전회는 중국 최고지도부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보통 4중전회에서는 중국공산당의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 따라서 시진핑 집권 2기 지도부의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로드맵을 논의한다. 특히 이번 중앙위원회 전체회의는 지난 2월 3중전회 이후 20개월 만에 열렸다. 이는 1977년 이래 가장 긴 공백을 두고 개최된 것이다. 최근 중국 일각에서는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 시위 사태의 장기화를 두고 시진핑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이 일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4중전회를 하루 앞두고 시 주석의 발언을 집대성한 책자가 중국 전역에 배포됐다. 책자에는 2012년 11월 이후 시 주석이 연설했던 70여 편의 원고가 담겼다. 중국 내 모든 사업은 공산당의 지도를 견지하고 그 핵심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있다는 게 주 내용이다. 이는 시진핑 지도부에 대한 책임론을 불식시키고 반대파를 억누르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진검승부의 무대는 다가오는 APEC 정상회의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과 무역전쟁의 종식에 서명하지 못한다면, 시 주석의 지도력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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