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인 아이 볼모 삼아 돈 뜯은 악랄한 ‘그놈’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5 08:00
  • 호수 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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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락인의 사건추적] 1991년 이형호군 유괴살인 사건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구김 없고 여린 마음을 가진 아이였다. 또래들처럼 군것질도 좋아하고 전자오락게임도 즐겼다. 그런 아이가 어느 날 흔적 없이 사라졌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초등학교 3학년이던 이형호군(10)은 당시 ‘부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살았다. 아버지 이아무개씨(35)는 피혁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아버지는 형호의 생모와 이혼하고 새 아내를 맞이했다.

지난 1991년 1월29일 오후, 이군은 학교가 끝나고 친구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어 두 아이는 현대아파트 205동 쪽에 있던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았다. 오후 5시20분쯤 친구가 먼저 집으로 갔고, 이때까지 이군은 계속 그네를 타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형호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을 코앞에 두고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했다. 어둠이 찾아오자 부모는 더욱 초조해졌다. 지금처럼 휴대전화가 일반화된 것도 아니어서 아이와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놀이터 등 인근지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무작정 기다릴 수 없었던 부모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형호의 연락을 기다리며 전화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때인 밤 11시30분쯤, 애타게 기다리던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더니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우리가 형호를 데리고 있다. 이틀 안에 현금 7000만원과 카폰을 준비하라.” 부모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형호 아버지는 아이의 유괴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범인으로부터 걸려온 협박전화

이틀 후인 1월31일, 범인으로부터 두 번째 전화가 걸려왔고, 형호 계모가 전화를 받았다. 범인은 주도면밀했다. 경찰에 신고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서초경찰서 형사입니다. 거기 있는 형사들 좀 바꿔주세요”라고 말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옆에 있던 형사의 유도로 “가정집에 무슨 형사가 있나요”라고 말해 무사히 넘어갔다.

이후 이군 부모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범인은 ‘몸값’을 받기 위해 ‘007작전’을 시작한다. 범인은 이군 아버지의 그랜저 승용차에 있는 카폰으로 연락을 했다. “김포공항 국내선 주차장 2구역에 차를 세우고 두 번 전조등을 켠 다음 돈을 놓고 나가라. 실내등을 켜놓고 차에 키는 꽂아두고 바로 600번 공항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지시했다. 이씨는 시키는 대로 따랐으나 범인은 3시간이 지나도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이날 밤 전화를 걸어 “왜 이렇게 약속을 안 지키느냐. 뒷좌석에 누가 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이 있었지만 승용차 뒷좌석이 아니라 트렁크에 숨어 있었다. 범인은 형사가 승용차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챘다기보다 미리 넘겨짚고 경찰이 있었는지 시험한 것으로 보인다.

범인의 전화 지시는 계속됐다. 지하철 3·4호선 충무로역 공중전화를 이용해 아버지 이씨의 카폰에 전화를 걸어 다른 장소로 불러냈다. “대한극장 맞은편 택시정류장 근처에 차를 세우고 실내등을 켜둔 상태에서 뒷좌석 문을 한 번 열어보고 트렁크도 한 번 열어봐 줘라. 키는 꽂아둬야 한다. 그런 다음 건너편 빵집에 들어가라”며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알려줬다.

하지만 제과점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그러자 범인은 즉시 연락해 “제과점 문이 닫혔다. 근처에 치킨센터는 열려 있으니 그쪽으로 가라”며 장소를 변경했다. 범인은 이곳에 나타나는 대신 집으로 전화했다.

범인은 “지금 누군가가 주변을 계속 얼쩡거리고 있다. 경찰에 연락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계속 잡아뗄 건가? 애에 대한 애착이 없는 것 같다. 내가 분명히 말했다. 연락하지 말라고. 대한극장 앞에 내가 아는 형사만 해도 두 명이 와 있었다”며 추궁했다. 당황한 계모는 얼떨결에 “삼촌이 같이 나간 것 같다”고 둘러댔다. 이날 범인은 하루 동안 총 16차례의 협박전화를 걸었다. 

2월1일 새벽, 범인은 이군의 부모에게 연락해 “현금 7000만원을 갖고 종로구 세종로 교보빌딩 대로변으로 나오라”고 했다. 이군의 부모는 오전 2시20분쯤 가짜 돈뭉치를 갖고 지정한 장소로 나갔다. 용의자로 보이는 20대의 수상한 남자가 나타났으나 경찰이 머뭇거리는 사이 달아났다. 이후 범인은 한동안 연락을 끊었다.

유괴 일주일째인 2월5일, 범인은 다시 이군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이번에도 돈 요구는 계속됐으나 이전과는 수법이 확연하게 달랐다. 직접 돈을 건네받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특정 장소에 메모를 남긴 후 이를 통해 다음 장소로 이동시켰다. 이군 부모에게는 메모의 위치만 알리는 간단한 통화만 했다.

범인은 이날 전화를 걸어 “장충동 태극당 밑으로 보면 코끼리 분식집이 있다. 그 앞에 조선일보사의 신문 게시판이 있는데 그 게시판을 보라”고 지시했다. 여기에는 “한일은행 명동지점 앞의 쓰레기통에 붙어 있는 메모지를 보라”고 쓰여 있었다. 그곳 메모에는 ‘윤정수’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한일은행 계좌번호와 ‘김주선’이라는 이름의 상업은행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다. 범인은 두 계좌에 각각 2000만원씩 넣으라고 했으나 이군의 부모는 경찰과 협의해 한일은행 계좌에만 입금했다.

경찰은 계좌조회를 통해 두 통장이 개설된 곳을 추적했다. 한일은행 동여의도지점과 상업은행 문래동지점으로 확인됐다. 이곳은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항시 은행을 찾는 고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었다. 범인은 이런 상황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곳에서 계좌를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범인이 은행계좌에서 돈을 빼갈 것에 대비해 이군의 부모에게 한일은행에 입금됐던 돈을 상업은행 계좌로 송금하게 했다.

2월13일 오후 5시30분쯤, 범인은 이군의 집에 전화를 걸어 재차 돈을 요구했다. “아이에 대한 애착이 없다. 형호가 죽기를 바라나?”라고 잔뜩 겁을 주며 “현금 5000만원을 준비해 저녁 8시 서울대교 남단 올림픽대로 차도와 인도 사이 경계선 블록에 돌로 메모를 눌러놨으니 확인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이니 신경 쓰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이군의 아버지가 곧바로 범인이 알려준 곳에 갔더니 역시 메모지가 있었다. “양화대교 남단 올림픽대로 첫 번째 교각 철제 배전반 위에 돈가방을 놓고 가라”고 적혀 있었다. 이씨는 현금 10만원과 신문지를 섞은 돈뭉치를 가방에 넣어 그곳에 갖다 놓았다. 범인은 이 가방을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돈을 가져간 범인은 다음 날 새벽에 전화를 걸어 “가짜 돈이 잔뜩 섞여 있다. 아들을 되찾고 싶지 않은 것으로 알겠다. 다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은 감사하다”는 말을 남긴 채 연락을 끊었다. 이게 범인의 마지막 전화였다. 이때까지도 범인은 이군의 부모가 경찰에 신고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5일이 지난 2월19일, 범인은 상업은행 상계동 지점에 나타났다. 한 남자가 찾아와 계좌에 있던 돈을 인출하려고 했고, 은행 직원이 단말기를 통해 조회했다. 그랬더니 ‘사고신고’ 계좌라는 문구가 뜨자 당황해했다. 이 남자는 문제가 생긴 것을 눈치채고 은행직원에게 건넸던 통장을 낚아채듯이 빼앗아 황급히 달아났다. 이후 지금까지 범인은 더 이상 전화도 없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형호군이 유괴된 지 44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한강 고수부지 하수구와 범인의 몽타주 ⓒ 연합뉴스
이형호군이 유괴된 지 44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한강 고수부지 하수구와 범인의 몽타주 ⓒ 연합뉴스

유괴 44일 만에 시신 발견

그리고 유괴 44일째인 3월13일 낮 12시20분쯤, 송파구 잠실2동 올림픽대로에서 가드레일 도색작업을 하던 김아무개씨(39)가 배수로에서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사람 같기도 하고 인형 같기도 한 것이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어린아이의 시신이었다. 신원 확인 결과 실종됐던 이형호군이었다. 당시 시신은 눈과 입은 비닐테이프로 감겨 있었고, 손과 발은 끈으로 결박돼 있었다. 옷은 실종 당시 입었던 그대로였다. 유괴 당시 친구에게 빌렸던 만보기도 함께 발견됐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이군의 집이 있는 유괴 장소에서 차로 불과 10여 분 거리였다.

부검 결과 코와 입이 테이프로 막혀 질식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위에는 유괴 당일 먹었던 보리밥알, 쌀밥, 파 등이 소화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이는 이군이 유괴 직후 살해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범인은 이군을 곧바로 살해해 유기한 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꾸며 44일 동안 무려 50여 차례 전화해 돈을 요구했던 것이다.

경찰은 시신이 발견된 다음 날 곧바로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범인이 통장을 개설한 은행원의 기억을 되살려 몽타주도 만들었다. 이걸 전단에 담아 28만 장을 전국에 뿌렸고, 범인의 음성 테이프 1000개를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건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수사는 미궁에 빠져들었고, 2006년 1월28일 공소시효가 만료돼 영구미제로 남았다.

사건 이후 악몽에 시달리던 이군의 아버지는 모든 것을 잊기 위해 현대아파트를 팔고 서울의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 2007년에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그놈 목소리》가 개봉돼 사회적 이슈가 됐었다. 최근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이춘재가 지목되고 범행을 자백하면서 이 사건에 대한 재수사 움직임이 활발하다. 서울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은 당시 범인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디지털화 했다고 밝혔다. 

 

경찰, 범인 검거 기회 세 번 놓쳤다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경찰의 초동수사 실패다. 또한 경찰은 범인을 검거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가 세 번이나 있었지만 어이없게 놓쳤다. 첫 번째는 2월1일이다. 이군의 부모는 가짜 돈뭉치를 갖고 세종로 교보빌딩으로 나갔다. 주변에는 형사들이 잠복해 있었다. 이군의 계모는 교보빌딩 앞 신문가판대 뒤에 몸을 숨기고  주변을 유심히 살폈다. 이때 수상한 남자가 접근하는 것을 보고 잠복 중인 형사에게 알렸다. 하지만 형사들은 용의자를 검문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그사이 용의자는 도주했다.

두 번째는 더 어이가 없다. 2월13일, 범인은 이군 부모에게 돈뭉치를 준비해 갖다 놓으라며 장소를 알려줬다. 범인이 말한 곳은 ‘양화대교 남단 올림픽대로상 첫 번째 교각 철제 배전판’이었다. 그런데 형사들은 범인이 말한 장소가 아닌 엉뚱한 곳에 잠복해 있었다. 그사이 범인은 이군 아버지가 갖다놓은 돈을 갖고 유유히 사라졌다. 

세 번째는 2월19일이다. 이날 오후 3시쯤 범인은 상업은행 상계동 지점에 나타나 이군 부모가 입금한 돈을 인출하려고 했다. 은행원이 단말기에서 계좌를 조회해 보니 ‘사고계좌’ 표시가 뜨자 당황했고, 이를 눈치챈 범인은 황급히 달아났다. 경찰과 은행이 공조가 안 돼 잡을 수 있었던 범인을 놓친 것이다. 경찰은 ‘은행 측의 실수’라고 했지만 수사상 협조사항을 은행 측에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경찰의 책임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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