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롯데·현대차 등 ‘형제 전쟁’ 점입가경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9.11.06 10:00
  • 호수 1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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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재벌가 형제간의 분쟁은 비단 범(汎)LG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재벌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50대 그룹 가운데 무려 18곳이 혈족 간 분쟁을 벌였다. 재산이나 사업영역을 둘러싼 법적 다툼은 기본이다. 가족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심한 말이 오가기도 했다.

범삼성가 역시 형제 기업 간의 파열음이 그동안 적지 않았다. 특히 삼성그룹과 CJ그룹은 2012년을 전후로 갈등이 극에 달했다. 이전까지 삼성전자는 CJ그룹 계열인 CJ GLS(현 CJ대한통운)에 물류사업을 맡겨왔다. 하지만 2011년 대한통운 인수 과정에서 두 그룹의 사이가 멀어졌다. 본입찰을 며칠 앞두고 삼섬SDS가 경쟁사인 포스코 컨소시엄에 합류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언론에는 이건희 회장 등 오너 일가를 비판하는 내용이 연일 보도됐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CJ에 맡겼던 물류 물량을 거둬가면서 뒷말이 나왔다.

주요 그룹 총수들이 1월15일 문재인 대통령 초대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에 참석한 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주요 그룹 총수들이 1월15일 문재인 대통령 초대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에 참석한 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CJ그룹은 당시 언론 홍보를 주도했던 부사장을 경질했고, 갈등 사태는 수습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어 불거진 이재현 회장의 미행설과 2세들의 재산 다툼으로 두 그룹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됐다.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상대방을 비난했다. CJ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은 당시 삼성이 CJ그룹을 삼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고 설명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생가가 위치한 장충동에서도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졌다. 이재현 회장 자택과 CJ경영연구소 주변 부지를 인수하기 위해 삼성과 CJ, 신세계그룹 간에 전쟁이 벌어졌다. 이재현 회장의 경우 자택이 삼성 계열사 빌딩이나 주택에 둘러싸여 심적 부담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견제 차원에서 주변 부지 매입과 CJ경영연구소 건립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삼성은 CJ그룹의 확장을 막기 위해 인근 다세대주택을 매입했다. 담장 사이로 마주 보고 있는 두 건물에는 여러 대의 CCTV가 설치됐다. 이 과정에서 삼성 직원들이 이재현 회장을 미행한 혐의로 경찰에 고소당하기도 했다.

롯데그룹은 유독 형제간 분쟁이 잦았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2015년부터 후계자 자리를 놓고 혈전을 벌였다. 지난 6월 일본 도쿄의 롯데홀딩스 본사에서 주주총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신 전 부회장의 이사 선임안은 부결되고, 신 회장은 이사에 재선임되면서 5년간의 ‘골육분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을 바라보는 세인들의 시각은 좋지 못하다. 롯데의 골육분쟁 사례가 이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동생인 신춘호 농심 회장은 1965년 농심의 전신인 롯데공업을 세우며 라면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맏형인 신격호 명예회장은 동생 신춘호 회장의 라면 사업을 반대했고, 신춘호 회장은 1978년 농심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그렇지 않아도 두 그룹의 관계가 소원한 상황이었다. 롯데그룹은 2009년 롯데마트 PB(자체 브랜드) 상품인 ‘이맛이 라면’을 판매해 농심의 신경을 건드렸다. 2010년에는 롯데 브랜드를 단 ‘롯데라면’까지 출시했다. 당시 재계에서는 롯데의 삼양라면 인수설이 돌아 농심이 바짝 긴장하기도 했다.

지난 2009년 롯데가 두산으로부터 ‘처음처럼’을 인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처음처럼’과 막내 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 경영하는 ‘대선주조’가 부산 주류시장을 잡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롯데가 처음처럼을 홍보하기 위해 부산 사직구장에 있는 대선주조 광고를 모두 뺐을 정도였다. 하지만 팬들의 반발로 이 시도는 물거품이 됐다.

이 밖에도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부친인 정경진 종로학원(현 서울PMC) 설립자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을 두고 여동생 은미씨와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서울PMC 대주주의 갑질 경영 의혹 글을 올릴 정도였다.

전문가들은 향후 3세나 4세 체제로 넘어갈수록 이 같은 분쟁 사례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재벌 후계자들이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기존에 있는 것 가지고 쉽게 비즈니스를 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재벌 후계자나 형제 기업 간 다툼은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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