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조선의 눈물, 그리고 정부·경남道의 무관심
  • 부산경남취재본부 이상욱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19.11.10 14:00
  • 호수 1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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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사라진 통영…인구 2년 새 4300명 줄어

10월31일 경남 통영시 광도면 성동조선. 192만㎡에 달하는 이곳은 조선소 특유의 시끄러운 작업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성동조선은 2017년 11월 마지막 선박 인도 이후 조선소 전체 가동이 중단됐다. 수주한 물량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이미 인근 협력업체들은 2016년 11월부터 줄줄이 문을 닫은 상황이다.

평소라면 작업에 정신없는 목요일 오후지만, 이날은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가는 차량은 없고, 주차장은 텅 비었다. 경비원 한 명이 정문을 지키며 외부 출입을 차단하고 있었다. 축구장 수십 개 넓이의 야드(작업장)는 텅 비었고, 골리앗크레인 6기는 멈춰 있었다. 야드를 누볐던 장비들은 녹이 슬었고, 조선소 주변은 마치 유령도시처럼 변했다.

이날 조선소 인근 마트에서 만난 김아무개씨(48)는 최근 사직서를 냈다. 11월13일 4차 매각에 실패해 청산 절차(파산)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다. 내년 말 무급휴직을 마치고 일터로 돌아가기 힘들다고 봤다. 하지만 김씨는 통영에서 당장 일을 구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김씨는 “생계난을 더 버티지 못하고 스스로 그만두었다”며 “대형 조선소가 있는 거제에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성동조선은 2010년 협력업체를 포함해 직원 수가 9000명에 달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수가 700여 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나마 이 중 야드 유지·관리에 필수적인 100여 명을 제외한 600여 명은 2017년부터 무급휴직 중이다. 성동조선이 어려워지면서 지역 경제는 조선 경기 침체 여파를 고스란히 맞고 있다. 통영시 등에 따르면 성동조선 협력업체 85개사가 모두 무너졌고, 협력업체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실업자가 됐다. 올해 상반기 통영의 실업률은 5.9%였다. 작년 같은 기간보다 0.3%포인트 내렸지만, 이는 전국 77개 시 지역 평균 실업률(3.8%)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지난달 기준 통영 인구는 13만1810명인데 2년(13만6146명) 전보다 4300여 명 줄었다. 성동조선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통영을 떠나고 있다.

경남 통영 성동조선 2야드. 성동조선은 2017년 11월 마지막 선박 인도 이후 조선소 전체 가동이 중단됐다 ©시사저널 이상욱 기자
경남 통영 성동조선 2야드. 성동조선은 2017년 11월 마지막 선박 인도 이후 조선소 전체 가동이 중단됐다 ©시사저널 이상욱 기자

구조조정, 금융이 주도…조선업 생태계 유지는 뒷전

성동조선이 낭떠러지로 내몰리고 있는데 이곳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수출입은행(수은)은 “매수자가 나타나 매각 절차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고 있다. 성동조선은 지난해 3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후 법원 주도로 3차례 매각이 시도됐으나 모두 실패했고, 이번에 4번째 매각이 시도되고 있다. 올해 연말까지 매각이 성사되지 않으면 청산 절차에 들어간다.

특히 수은은 10월24일 성동조선의 3개 야드 중 1야드만 떼서 매각하는 방안을 법원에 제시했다. 4차 매각에 앞서 분할 매각해 대금을 수은 등 채권 보유기관에 배당하려는 시도다. 조선업계는 수은이 성동조선의 청산 가치를 계속 기업 가치보다 높게 평가하면서 여신 회수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본다. 그러다 보니 조선업 생태계 유지는 우선순위에서 밀려 뒷전인 셈이다. 노동계는 금융 주도의 구조조정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아이러니하게도 2000년대 초반 세계 중형 조선업계를 이끌었던 성동조선의 경영 위기도 키코(KIKO·Knock-In, Knock-Out) 사태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성동조선은 은행이 판매한 키코에 반강제로 가입했다. 은행으로부터 수주계약에 앞서 선수금환급보증(RG·Refund Guarantee)을 받기 위해서였다. 당시 현대중공업 등 빅3 조선업체와 달리 환헤지나 파생상품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지 않았던 성동조선의 취약점을 은행들이 파고든 것이다. 성동조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환율이 급등하면서 엄청난 피해를 당했는데,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동안 입은 키코 피해액이  1조9428억원(키코피해공동대책위원회의 ‘중소중견조선사 키코 피해 손실액’ 기준)에 이른다.

성동조선은 연 매출 2조원을 처음 넘긴 2009년까지 3년 연속 두 배 남짓 매출 성장을 거듭했으나, 키코 손실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성동조선은 2010년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과 자율협약 형태의 워크아웃을 결정한 뒤에도 끝내 정상화의 길로 돌아오지 못했다. 강기성 금속노조 성동조선지회장은 “단기 금융 논리에 입각한 정책으로 성동조선의 미래가 암울해지고 있다”면서 “성동조선의 법정관리로 지역 경제가 극심한 침체에 빠져도,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도 정부·지자체·국책은행은 책임 있는 그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고 강변했다.

2018년 3월26일 오후 금속노조 성동조선지회 조합원들이 청와대 인근 분수대 앞에서 중소형 조선소 회생방안 마련을 정부에 요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3월26일 오후 금속노조 성동조선지회 조합원들이 청와대 인근 분수대 앞에서 중소형 조선소 회생방안 마련을 정부에 요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상화 방안 제시 못 하는 정부와 경남도

이는 1년 전 체결된 ‘성동조선해양 상생 협약’과 지난 7월 발족한 ‘경남 조선산업 발전을 위한 민관협의회’를 두고 한 말이다. 협약서에는 경남도가 노동자 생계지원 대책과 회사 경영 정상화를 위한 행정지원을 약속했다. 김경수 경남지사가 위원장인 협의회는 성동조선 정상화 방안 논의를 네 차례 진행했다. 하지만 매각에 잇달아 실패하고, 협의회도 정상화 대안을 찾아보자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면서 정상화 전략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강 지회장은 “선뜻 달려드는 인수자가 없으니 수은과 경남도가 RG 발급 등을 약속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결의문 채택은 어렵다고 한다”면서 “정상화 방안이 나온 게 전혀 없다. 마치 면피용 회의 횟수나 쌓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조선업계에선 이미 지난해부터 수주가 끊긴 성동조선에 대해 수천억원을 들여 인수할 투자자를 찾긴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형 조선산업 생태계 유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정부가 신규 수주에 꼭 필요한 RG 발급을 인수 후보들에게 선뜻 약속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는 동안 생계 절벽 위에 몰려 있는 근로자들은 하나둘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고 있다. 근로자들은 지난해 9월1일부터 올해 3월31일까지 ‘무급휴직 수당’을 받았지만, 4월부터는 아무런 수입이 없다. 정부는 지난해 4월 거제를 비롯한 7개 지역과 함께 통영을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했고 올 4월 지정기간(1년)을 한 차례 연장했다. 경남도에 따르면 올해 고용위기 해소를 위해 통영에 국가예산 1680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다는 지적이다.

근로자들은 “위기지역 지정이라고 해 봐야 지원 범위를 조금 넓히고, 실업자나 기업에 지원금 몇 푼 더 늘리는 수준”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근로자 50명은 장기 일자리를 원했지만, 환경정비 등 단기 일자리인 희망근로사업에 지원해야 했다. 숙련된 조선 기술을 유지하기 위한 훈련 프로그램은 전무하고, 창업 필수 자금을 지원받은 근로자는 고작 2명에 불과하다. 오히려 수백 명의 근로자들은 조선소 일자리를 찾아 인근 거제와 고성으로 떠났다. 통영시 관계자는 “최근 조선업이 회복하고 있지만 공장이 모두 떠난 통영은 고용 충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고용지원에 더해 대안 산업을 찾아 일자리를 만들어야만 지역 탈출 러시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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