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비 분담금 협상, 예능처럼 해라
  • 권신일 에델만코리아부사장 겸 갈등관리연구소 대표 (jongseop1@naver.com)
  • 승인 2019.11.12 10:00
  • 호수 156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트럼프, 강해 보이면서도 한계…개인 성향까지 감안해 해법 찾아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방위비 분담금 6배 인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 협상팀뿐 아니라 국민들도 크게 놀랐다. 올해 방위비 분담금은 1조389억원이었다. 이조차 평균 3~4%씩 올려오던 것을 8% 이상 올린 파격이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기존 5년마다 하던 협상을 해마다 해야 하기에 더욱 걱정이 커지지 않을 수 없다. 제임스 드하트 한·미 방위비(주한미군 주둔비) 분담금 협상 수석대표가 방한하는 등 미국 측의 전방위 압박도 가시화하고 있다. 정부의 고민도 깊어가고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미국의 요구는 ‘미국 우선’을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을 협상의 관점에서 보면 종종 있는 일이다.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도 상상 이상의 관세율을 부과해 중국 정부를 당혹하게 한 후 자신의 페이스대로 끌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버티기 및 세계무역기구 제소 전략과 대선이 눈앞에 다가오자 서둘러 봉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리아에서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가 지지 세력의 반발이 크게 일어나자 스스로 철회한 적도 있다.

미 육군의 해외 기지 중 최대 규모로 알려진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 ⓒ 연합뉴스
미 육군의 해외 기지 중 최대 규모로 알려진 경기도 평택시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 ⓒ 연합뉴스

베스트셀러 《거래의 기술》에서 배우자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력은 강해 보이면서도 종종 한계를 드러낸다. 또한 기업가이자 예능 리얼 프로그램 진행자 출신인 개인 성향까지 감안해 침착하게 해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트럼프의 베스트셀러인 《거래의 기술》에서 주장하고 있는 ‘크게 생각하라’ ‘신념을 위해 저항하라’ ‘언론을 이용하라’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어라’ 같은 원칙들은 《미운우리새끼》 같은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방식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첫째 ‘크게 생각하라’이다. 방위비 분담금 6배는 일단 크게 저질러 놓고 인심 쓰듯 깎아주는 트럼프식 협상 전략이다. SBS 인기 예능 《미운우리새끼)》에서 아이들에게 지면서도 강한 척하는 허당 매력으로 인기를 끌었던 국민가수 김건모가 보여줬던 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미국 우선’ 원칙을 고려해 이익의 크기를 키울 수 있다. 예컨대 우리 국방부는 6조원 비용보다 더 큰 수십조원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포함한 다양한 국방사업을 거의 해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입찰한다. 우주기술개발 사업권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입찰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모아 협상 레버리지로 삼는다면 미국 정부에 영향력이 큰 군수업체와 공식 로비 창구인 ‘K-street(CSIS, 부르킹스연구소, 허드슨연구소 등 미국의 영향력 있는 싱크탱크들이 모여 있는 거리 이름. 때로는 로비력을 의미하기도 함)’의 관심도 얻어낼 수 있다. 당장 한국에 사무소가 있는 보잉, LM, GE 등이 먼저 움직일 것이다. 한국어로 우리 입장을 전달하는 창구로 이들을 쓸 수 있다.

또한 미국으로부터 주둔비 인상 압력을 크게 받고 있는 독일, 일본과도 연대해 미국의 상대국을 1:1이 아니라 1:3으로 만드는 방안도 우리의 협상력을 키울 수 있다. 이미 두 나라는 우리의 분담률 기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우리가 잘못하면 우리는 두 나라의 원망과 호구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이런 압력 방안들을 키우되 한편으로는 합의된 결과가 ‘미국 우선’ 이익을 지키는 솔루션의 주인공이 트럼프라는 모습을 연출해 주어야 한다.

둘째 ‘신념을 위해 저항하라’는 트럼프의 원칙도 우리에게는 큰 우군이 될 수 있다. 예능에서 성공하는 이는 시청자의 즐거움을 위해 자신을 던질 각오가 된 사람이다. 우리가 안보 분야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이 중국과의 전쟁을 외교와 안보 현안 1순위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허드슨연구소에서 펜스 부통령이 발표한 중국 독트린과 1년 뒤인 지난 10월25일 우드로 윌슨센터에서의 발표문의 공통점은 중국을 가장 큰 위협으로 여기고 모든 자원을 동원해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안보만큼은 우리가 중국의 온갖 압박과 경제 손실에도 미국과 함께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분명히 전달되어야 한다. 그 메시지는 한국인이 아니라 주한미군사령관이나 미국 정부 내 트럼프에게 영향력이 큰 네오콘 출신 등을 통해 전달될 경우 더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우리 정부의 포지션이 지난 정부 때부터 친중과 친미를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사드 도입 등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점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언론 활용하고 주인공은 트럼프 되도록 

셋째, ‘언론을 이용하라’는 트럼프의 조언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다. 예능에서도 본방 전후로 다양한 앵글을 통해 언론에 홍보하며 관심과 시청을 유도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의 24시간 듣는다는 폭스 방송 특히 뉴스를 통해 동맹으로서 한국 정부의 특별한 역할이 전달되도록 한다면 영향력 있는 레버리지가 될 것이다.

넷째, 재미있는 게임으로 만들라는 조언은 트럼프에게 특히 중요하다. 예능에서는 재미가 없으면 바로 퇴출이다. 트럼프는 ‘You’re fired’ 유행어처럼 트위터로 고위 인사 파면을 발표하는 등 정책에서도 예능적인 면을 중시한다. 북한과의 1, 2차 협상에서도 안 한다고 했다가 하고, 할 듯하다 파기하는 반전 드라마를 여지없이 보여줬다. 우리가 6조원은 무조건 안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대뜸 받는다고 선언할 수도 있다. 대신 협상 시한을 해마다에서 10년마다 하자고 역제안할 수도 있다. 6조원을 주는 대신 중앙아시아 국가처럼 기지 사용료를 요구할 수도 있다. 물론 안보 수요가 더 절실한 우리로선 가능할까 스스로 의심도 들겠지만 비즈니스 마인드가 큰 트럼프에게 ‘사용요금’ 논리는 ‘안보혈맹’ 같은 논리보다 훨씬 더 설득적이다.

끝으로 현실적으로 우리는 안보뿐만 아니라 경제와도 직결된 주한미군 철수라는 상황을 피해야 하는 만큼 대응 수단이 제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수십 년간 협상을 학문 수준으로 연구해 오고, 전 세계와 다양한 협상의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온 미국과의 협상은 마치 야구나 농구의 원조 국가와 시합하는 것과 같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만큼 우리 팀의 자원을 최대한 끌어모은 드림팀으로 구성해야 한다. 오히려 우리보다 국력이 큰 미국도 외교 국익에는 초당적인 협력이 흔하다. 미국 내 영향력자들과 보수 성향 한·미 우호관계 리더들과도 머리를 맞대 지혜를 모으고 미국 네트워크를 활용해야 한다. ‘주한미군 철수’ 카드는 미국에서도 대선을 앞두고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다. 중국의 인내하며 버티기 전략과 WTO 등 제3자의 도움 얻기, 시리아 철군 철회 과정에서 드러난 공화당 내부의 안보 이견을 참고하되 대선을 앞둔 트럼프에게는 스스로의 협상 원칙이라고 띄워주며 극적인 해법으로 연출해 주어야 한다. ‘팀코리아’가 협상에서 미국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파이로 크게 키운다면,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9회말 역전으로 미국 야구팀을 이기고 금메달을 딴 것처럼 기대 이상의 드라마틱한 협상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