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압승 민심은 지켜질까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19 15:00
  • 호수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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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 이후 쓰나미처럼 들이닥친 국정 험로…진정한 시험대 오른 정부·여당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둠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도 안정을 이어나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런데 총선이 끝나자마자 여권에 악재들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 소속인 오거돈 부산시장은 성추행 사실이 알려져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만약 선거일 전에 이 사실이 알려졌다면 민주당 의석수가 10~20석 정도는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이어서 윤미향 의원과 정의기억연대를 둘러싼 논란이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계기로 일파만파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역시 선거 기간에 이런 일이 터졌더라면 민주당이 총선에서 입은 타격이 제법 컸을 것이다. 

이런 사건들을 지나 더 심각해진 것은 우려할 만한 대형 국정 현안들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우선 K방역의 성공을 자랑하며 여당의 총선 압승 견인차 역할을 했던 코로나19 대응은 샴페인을 성급하게 터뜨렸다는 지적을 받는 분위기로 반전되었다. 지난 5월 ‘사회적 거리 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한 이후 우려했던 집단감염이 학원·콜센터·교회·어학원·실내 체육시설 등을 거치면서 확산일로에 있어 방역 당국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감염의 확산을 차단하지 못하고 이대로 가면 수도권에 걷잡을 수 없는 대유행이 닥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대두되고 있다.

자칫하면 그동안의 방역 성과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는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낙관적인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던 질병관리본부의 우려에도 경제 살리기를 위해 조급하게 생활방역으로 전환했던 정부는 수도권 대유행에 대한 위기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경제 재개를 서두르다가 코로나 제2차 대유행 우려 속에서 오히려 경제위기 장기화가 이어질 위험이 높아졌다. 

12·16 부동산 대책과 코로나19 사태 이후 한동안 진정세를 보이던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아졌다. 넘치는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어 비규제 지역에서의 집값 재상승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특히 9억원 이하 주택의 가격 상승이라는 풍선 효과를 전국적으로 낳았다. 정부가 강남 집값 잡기에 총력전을 펴는 사이, 이번에는 비강남 지역의 집값이 상승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20차례에 걸친 부동산 대책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고강도 규제책을 계속 내놓고 있지만, 시장의 불안심리를 진정시키는 데 역부족을 드러내고 있다. 

6월15일 상임위원장 선출에 합의하지 않은 통합당 의원들의 피켓 시위 사이로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6월15일 상임위원장 선출에 합의하지 않은 통합당 의원들의 피켓 시위 사이로 민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코로나 확산, 들썩이는 부동산, 북한 문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이렇게 시장에서 무기력한 결과를 낳게 된 것은, 시장의 요구를 감안한 신뢰할 만한 공급대책 없이 찍어 누르기 일변도의 정치적 부동산 정책이 낳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시장에 대한 세심한 이해 위에서 경제논리에 따라 세워졌어야 할 부동산 정책이, 전쟁같이 거친 누더기 정책 일변도로 나간 결과가 ‘백약이 무효’를 낳고 있는 것이다. 잇따른 규제로 피해를 보는 것은 부자들이 아니라, 대출을 받을 수도 없어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해진 젊은 세대들이 되고 있다.

최근 조성된 남북 관계의 파국은 문재인 정부의 집권 이후 손꼽았던 성과가 남북 간의 평화 정착이었다는 점에서 뼈아픈 일이다. “남북 관계 결별을 선언할 때가 왔다”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통첩은 지난 3년간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성과가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북한은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행동을 통해 남북 관계 단절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내놓았다. 북·미 관계가 답보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음은 우리 손 밖에 있는 문제라 도리 없는 일이겠지만,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했던 전단 살포 금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이런 상황에 이른 것은 답답한 노릇이다. 물론 대북 전단 하나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 문제만큼은 미국의 입장과도 무관한 우리 정부의 의지에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들의 법안 발의에서도 일부 논란거리가 생겨나고 있다. 양향자 의원이 대표발의한 ‘역사왜곡처벌법’은 역사 해석의 문제를 법으로 강제한다는 지적과 함께 아직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은 사건들까지 포함되어 불필요한 이념 논쟁을 낳게 되고, 시급한 ‘5·18민주화운동 왜곡처벌법’ 처리까지 지연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임차인이 희망할 경우 임대 기간이 사실상 무한정 연장된다는 점에서, 국민의 주된 주거 기반인 전세시장이 어떻게 흔들릴지 조심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주거 안정성 강화라는 취지 자체에 반대할 사람은 없겠지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때의 ‘좋은 취지’가 일자리 상실과 자영업자들의 경영난 같은 ‘나쁜 결과’를 낳았던 것과 닮은꼴이 될 위험이 커 보인다. 이제 여당은 야당이 반대해도 법안들을 통과시킬 숫자를 가진 만큼, 법안 하나하나에 대한 꼼꼼한 책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야당의 발목 잡기’ 탓하기도 어려운 악재들 

총선 압승으로 한숨 돌리는가 했더니 난제의 쓰나미가 들이닥치고 있는 형국이 되었다. 제대로 대처하고 관리하지 못한다면 국가적 위기로 발전할 대형 사안들이다. 이들 악재에서 공통적인 것은 야당의 발목 잡기에 의해 생겨난 일들이 아니라 정부와 여당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사안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니 누구 탓을 할 수도 없고 오롯이 집권세력 스스로가 책임을 의식해야 할 일들이다.

어쩌면 여권은 4·15 총선 때 운이 무척 좋았는지도 모른다. 코로나 방역에서의 성공적 대응으로 그 전까지 여론의 비판을 받던 다른 악재들은 다 덮여버렸다. 때마침 미래통합당은 후보들의 막말 릴레이와 공천 난맥으로 자멸의 길을 갔다. 워낙 야당이 형편없어 그렇지, 이전까지의 국정을 돌아볼 때 여당이 180석을 차지한 선거 결과는 과분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제 힘이 세지고 책임이 커진 만큼 비판받을 일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나라가 어려워지면 국민들은 힘없는 야당보다는, 압도적인 힘을 갖고 국정을 주도하는 집권세력에게 책임을 묻게 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실력으로 평가받는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나라가 잘되어도, 못되어도 집권세력 때문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당장 시험대에 오른 현안들은 한결같이 해결이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들이다. 이념과 가치의 정당성만 갖고 우월함을 주장하며 지지를 당부해도 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숭고한 이념은 있지만 그것을 실현할 디테일이 없다’는 지적을 뼈아프게 받아들일 일이다. 작금의 위기 상황들을 세밀하게 관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정책능력을 보여줘 ‘일 잘하는 정권’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총선에서 여당에 압승을 안겨준 민심이, 역시 잘했다는 말을 하게 될지, 아니면 후회막심이라는 말을 꺼내게 될지, 2022년 대선으로 가는 길의 중대한 변수가 될 것이다. 

[편집자 주]

법안 발의 논란에 대해 양향자 의원 측은 “‘역사왜곡처벌법’은 법적으로 역사적 평가가 마무리되고, 사회적·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역사적 사건만을 다루고 있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기 위해 ‘오로지 학술적 연구, 예술 활동, 보도 또는 이와 유사한 목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관하여 한 것인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라는 예외조항을 넣어두었다”고 밝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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