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디서, 어떻게, 어디까지 도발할까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2 10:00
  • 호수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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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9인이 예상하는 추가 도발 시나리오
개성공단 시설 철거 예상...신형 전략무기 선보일 가능성도

“최고지도자의 강경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개성공단을 완전히 없앨 것”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

“북한군이 주민으로 위장하고 비무장지대를 돌아다니면 우리 군으로선 대응이 고민될 수밖에 없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2014년 10월처럼 대북 전단 풍선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할 가능성 커”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

“통신선이 끊어진 상황에서 북한의 대비태세를 우리 군이 공격 징후로 판단해 대응하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우려되는 충돌 시나리오” (부승찬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

“미 대선을 앞두고 ICBM보다는 낮은 수준의 전략무기인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으로 도발할 수도”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

“10월경 차기 미 행정부를 향해 무력시위에 나설 가능성 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10월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일에 세계가 놀랄 수준의 전략무기 선보일 것”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희망의 상징이 사라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북 관계가 또다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한반도 시계(時計)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으로 되돌아갔다. 북한은 6월16일 한반도 평화의 상징인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했다. 통일부는 이날 공식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오후 2시49분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청사를 폭파했다”고 밝혔다.

북한 매체들을 통해서도 이러한 사실은 확인됐다. ‘평화의 상징’과 같은 건물을 폭파함으로써 북한은 ‘당분간 남한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노동신문은 “향후 조치는 상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경우에 따라 남북 관계가 2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6월17일 인천 강화군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의 모습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6월17일 인천 강화군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의 모습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6월17일 인천 강화군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의 모습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6월17일 인천 강화군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의 모습이다. 해안초소에 위장막을 씌워놓은 포가 보인다. ⓒ시사저널 임준선
6월17일 인천 강화군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의 모습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6월17일 인천 강화군 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의 모습이다. 주민들은 집단으로 모내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하노이 노딜로 자존심 상한 김정은, 남한 탓이라고 생각”

공교롭게도 연락사무소 폭파는 6·15선언 20주년 기념일 바로 다음 날 이뤄졌다. 6월15일 문재인 대통령은 영상 축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의 약속을 뒤로 돌릴 수는 없다”며 대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를 듣고도 북한이 폭파를 강행한 것에 대해 청와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이튿날 문 대통령을 ‘남조선 당국자’라고 지칭한 뒤 기념 영상 축사에 대해 “맹물 먹고 속이 얹힌 소리 같은 철면피하고 뻔뻔스러운 내용만 구구하게 늘어놓았다”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정부·여당의 대북 기류도 달라지고 있다. 여권에서 활동하는 한 북한 연구자는 “북한이 비밀리에 제안한 대북특사까지 공개한 것은 ‘남한 망신 주기’로밖에 볼 수 없는 상식에 어긋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국정원의 카운터파트인 통전부(통일전선부)가 대남 성명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비밀리에 작동해 온 국정원-통전부 라인도 끊겼다는 뜻”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일련의 북한 조치는 치밀하게 계산된 모습이다. 표면적으론 대북 전단(삐라) 살포를 문제 삼고 있지만, 평양 지도부의 노림수는 따로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손기웅 한국평화협력연구원장(전 통일연구원장)은 “심각한 경제난의 책임을 외부세력(남한·미국) 탓으로 돌리면서 문재인 정부에 최소한 대북 관광 재개라도 얻어내려는 속셈”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리더십’에 상처가 난 것도 대남노선이 강경으로 돌아선 이유로 보인다. 부승찬 연세대 통일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은 위원장이라는 최고지도자는 절대 실수하지 않는 ‘무(無)오류성’ 그 자체다. 주체사상이 그렇게 강조한다. 그런 최고지도자가 수천 km를 기차 타고 베트남 하노이까지 갔는데 아무것도 얻어온 게 없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며, 그 책임이 남한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6월16일 오후 2시50분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오른쪽 사신은 폭파되기 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조선중앙통신 연합
북한이 6월16일 오후 2시50분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오른쪽 사신은 폭파되기 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조선중앙통신 연합

‘백두혈통’ 김여정의 말 그대로 실행돼

북한의 강공책은 6월4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에서 비롯됐다. 김 제1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으로 이른바 ‘백두혈통’이다. 그렇기에 외무성이나 통전부 간부가 담화를 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김 제1부부장의 대남 도발은 이미 예고됐다.

6월4일 담화에서 김 제1부부장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와 함께 △금강산 관광 폐지 △개성공단 완전 철거 △남북군사합의서 파기를 언급했다. 9일 뒤인 6월13일 ‘대적행동의 행사권을 총참모부에 넘겨주려 한다’는 제목의 추가 담화에서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3일 뒤 북한은 이를 강행했다. 부 전문연구원은 “백두혈통인 ‘김여정의 말’은 법 이상의 위상이 있기에 북한은 담화문을 통해 발표한 사항을 반드시 추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6월17일 우리의 합동참모본부 격인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발표문을 통해 “북남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DMZ)에서 철수하였던 민경초소(GP)들을 다시 진출·전개하여 전선 경계 근무를 철통같이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고한 대로 9·19 군사합의를 파기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DMZ를 실질적인 비무장지대로 만든 것은 문재인 정부가 국제사회를 상대로 한반도 평화를 홍보할 때 가장 강조한 부분이다. 총참모부 발표가 나온 이후 북한은 비무장지대에 무장인력을 전격 투입했다. 비상시 남북한을 연결해 주는 핫라인이 사실상 끊어진 상태여서 양측 간 무력충돌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또 이날 총참모부는 “서남해상 전선을 비롯한 전 전선에 배치된 포병부대들의 전투직일근무를 증강하고 전반적 전선에서 전선경계근무 급수를 1호 전투근무체계로 격상시키며 접경지역 부근에서 정상적인 각종 군사훈련을 재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해안포 사격과 군사훈련을 통한 도발행위 또한 충분히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6·15 2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그동안 남북한 합의 폐기는 북한이 먼저 해 온 것이었는데, 이번만큼은 우리가 상호 비방하지 않기로 한 합의를 깬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 북한의 대남 도발 수위는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민 가장한 북한군 DMZ 활동 늘어날 수도”

또 총참모부 대변인은 6월17일 담화에서 “우리 공화국 주권이 행사되는 금강산 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에 이 지역 방어 임무를 수행할 연대급 부대들과 필요한 화력구분대들을 전개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병력 재배치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개성공단이 들어서면서 개성에 주둔했던 군부대는 시 외곽으로 철수했다. 개성에 병력을 재투입한다는 것은 긴장대치 수위를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이전 상태로 올리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북한 지도부는 군부 강경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성에서 병력을 빼냈다. 개성과 금강산 일대에 북한군이 배치될 경우 휴전선을 둘러싸고 한반도 긴장은 한층 높아진다.

김 제1부부장의 공언대로 개성공단 완전 철거가 어떤 수준일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 사정이 나아져 나중 해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도 개성공단 전체를 부술 필요는 없다. 개성공단 완전 철거는 북한으로서도 경제적 효과가 전혀 없는 조치”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제1부부장 말을 북한 군부가 곧바로 실행하는 것을 감안할 때 완전 철거가 조만간 시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지금 북한은 경제적 실익을 따질 때가 아니다. 최고지도자의 강경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도 개성공단을 완전히 없앨 것”이라고 내다봤다. 9월19일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서 서해북방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으로 만들기로 한 것을 전면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우리 측 어선에 대한 어로활동 위협과 무력시위 등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금강산 관광구역에 위치한 우리 측 시설에 대한 철거 지시가 내려질 가능성도 커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23일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도록 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6월5일 통전부는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쪽에서 (대북 전단 제재) 법안이 채택돼 실행될 때까지 우리도 접경지역에서 남측이 골머리가 아파할 일판을 벌여도 할 말이 없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주목받는 단어는 ‘남측이 골머리가 아파할 일판’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통전부가 ‘전(全) 전선에서 대남 삐라(전단) 살포에 유리한 지역(구역)들을 개방하고 우리 인민들의 삐라 살포 투쟁을 군사적으로 철저히 보장하며 빈틈없는 안전대책을 세울 것’이라고 했는데, 만약 북한군이 주민으로 위장하고 비무장지대를 돌아다니면 우리 군으로선 골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북한의 도발은 개성·금강산 지역 폐쇄(1단계), NLL 등 해상 도발(2단계), 핵실험 재개 및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 개발(3단계)로 진행돼 왔다. 이 중 1, 2단계는 철저히 대남 협상용인 반면, 3단계는 미국 등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한다. 관심은 이번 북한의 조치가 3단계로까지 확대될 수 있느냐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북미국장은 6월11일 조선중앙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반도 긴장 고조를 우려한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미국은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으려거든 입을 다물고 제 집안 정돈부터 잘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은 수차례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이어왔지만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데드라인을 넘지 않았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손기웅 원장은 “전략무기 개발은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의 등을 돌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명분이 없다”며 가능성을 낮게 봤다. 손 원장은 다만 “남쪽에서 삐라(대북 전단)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한 이상 2014년 10월처럼 대북 전단 풍선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할 가능성은 크다”고 예상했다. 부승찬 전문연구원도 “통신선이 끊어진 상황에서 북한의 대비태세를 우리 군이 공격 징후로 판단해 대응하는 것이 현재로선 가장 우려되는 무력충돌 시나리오”라면서도 “과거 연평해전 때는 북한 군부가 여러 차례 경고한 후 공격했기 때문에 지금 당장 그때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긴 힘들다”고 내다봤다.

 

10월 노동당 창건일 즈음해 대규모 무력시위 예상

반대로 북한의 무력도발이 지금보다 한층 더 거세질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많다.

한반도평화교섭본부 장을 지낸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미 대선을 앞두고 대미 협상력을 높이는 차원에서 ICBM보다는 낮은 수준의 전략무기인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으로 도발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도 “북한이 남한과의 긴장관계를 2017년 수준까지 끌고 갈 것이며, 10월경 미 대선을 앞두고 차기 미 행정부를 향해 무력시위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10월10일 북한 내 최대 행사인 당 창건 75주년 기념일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소장은 “75주년으로 의미 있는 해인 데다 내부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세계가 놀랄 수준의 전략무기를 선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올해 1월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끝까지 추구한다면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할 것’이라고 밝혀 전략무기 공개를 예고했기에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북한은 미국 대선이 치러지는 해에 도발을 강화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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