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왜 '야권 잠룡'으로 뜨나 [배종찬의 민심풍향계]
  •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9 14:00
  • 호수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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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당 ‘차기 잠룡군’ 지리멸렬…보수진영, ‘반문 정서’ 결집 가능성 큰 윤 총장에 주목

난데없이 방송인 백종원씨가 정치면에 등장했다. 그것도 가장 핫한 ‘대선 잠룡’으로.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6월19일 당내 초선 의원들과 가진 오찬 자리에서 통합당 차기 대선후보로 누구를 염두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에 “백종원씨 어떠냐”고 답한 게 정치권에 큰 화제가 됐다. 물론 웃으며 한 농담성 얘기였지만, 그만큼 당내 취약한 대선후보군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금 각종 여론조사에 등장하는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부동의 1~2위를 달리는 이낙연 의원, 이재명 경기지사 등 여권 후보들은 넘쳐나는 반면, 야권 후보들은 한 자릿수 지지율을 면치 못하고 있다. 물론 백씨는 “(대선후보는) 꿈도 꿔본 적 없다”는 말로 일축했다.

21대 국회에서 거대 여당에 끌려가고 있는 통합당 내에서는 자조 섞인 한숨이 그치지 않는다. 이대로 가다가는 2022년 3월 대선도 패배가 불가피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그것이다. 마땅히 떠오르는 후보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장관 간 갈등이 불거져 나왔다. 여당 일부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윤 총장의 사퇴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통합당은 윤 총장 엄호에 나섰다. 그러면서 윤 총장의 잠룡 등장 가능성이 다시 정치권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현직 검찰총장이 야권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이 어색함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과연 윤 총장에겐 ‘차기 잠룡’ 가능성이 있는 걸까.

윤 총장은 2013년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퇴 논란이 있었던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여론조사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부장검사였다. 국회에 나와 증언하던 중 황교안 당시 법무장관의 부당한 수사지휘에 항변하다 좌천되는 운명에 처했다. 당연히 박근혜 정권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인물로 찍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22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참석한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6월22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참석한 제6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문 정서’ 수혜 가장 많이 누릴 인물로 인식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의혹이 드러나고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다. 지난해 7월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검찰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곧이어 조국 전 민정수석이 법무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상황은 또 180도 달라졌다. 조 전 장관 주변의 갖가지 의혹이 부각되면서 검찰과 조국 대결 구도가 만들어졌다. 조 전 장관이 사퇴하고 난 뒤에는 추미애 장관과의 대결 구도가 다시 만들어졌다. 윤 총장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새 현 정부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들로부터 차기 대선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우선 윤석열 총장이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기반은 ‘반문(反文) 정서’에 있다. 총선 이후 북한 이슈, 경제 이슈, 공공 이슈(검찰 개혁)가 대통령 국정수행의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면서 ‘반문 정서’는 다시 등장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지난 4월 총선을 전후해 60%대까지 치솟았던 대통령 지지율은 6월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가 발생한 이후 타격을 입었다. 긍정 평가는 50%대 초반으로 내려왔고, 부정 평가는 30%대에 머무르다가 40%대로 올라섰다(그림①). 차기 대선에서 보수진영 후보가 가질 가장 큰 기반은 ‘반문 정서’다. 보수층 유권자들이 보기에 현 정부에서 여권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윤 총장이 ‘반문 정서’ 수혜를 가장 많이 누릴 인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윤 총장이 잠룡인지 아닌지를 감별하는 더 중요한 두 번째 기준은 ‘대권 능력’이다. 무엇보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역대 선거에서 검찰 출신 인사가 대통령이 된 적은 없다. 비정치인 출신, 즉 국회의원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후보자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무릇 대선후보라면 핵심 지지층을 견인할 ‘대권 의지’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조건이 좋아도 자신의 생각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반문 정서’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지역·세대·이념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6월9~11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다음번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다고 생각하는가’를 물어보았다. 전체적으로 이낙연 의원이 28%로 가장 높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1%에 그쳤다. 보수정당인 통합당 지지층에게 물어봐도 윤 총장은 4%에 불과했다(그림②). 출마 여부조차 알 수 없는 시점이지만 아직 ‘대권 능력’은 충분치 않아 보인다.

尹 지지층, 60세 이상·대구경북·보수층

그렇다면 대권 능력도 충분해 보이지 않는데 윤 총장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잠재 환경’ 때문이다. 보수세력 쪽에서 거론되는 인물은 많지만 당선 가능성에 대한 공감은 크지 않은 편이다. 결국 다음 대선은 여권 유력 후보와의 대결이라기보다 ‘친문’ 대 ‘반문’ 대결 구도가 되기 십상이다. 그런 면에서 올 후반기와 내년까지 검찰 이슈는 계속 주목받게 된다. 누군가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이 보수 유권자를 속속들이 결집할 가능성이 대폭 커진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이 그래서 윤 총장을 강제로 내치지 못한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대표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내에 ‘윤석열 함구령’을 내릴 정도다.

윤 총장이 ‘반문’ 유권자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조 전 장관 관련 수사 갈등이 깊어질 경우 지지층 결집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알앤써치가 데일리안의 의뢰를 받아 코로나19 국면으로 들어가기 직전인 1월13~14일 실시한 조사(자세한 개요는 그래프에 표시)에서 ‘윤석열 총장에 대한 평가’를 물어보았다. 전체 평가도 양호한 편이지만 60세 이상, 대구·경북, 보수층에서 60%를 넘나드는 수준이었다(그림③).

윤 총장이 어떤 운명을 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념으로 갈라진 현재 정치판이 윤 총장을 조명하고 있다. 아직은 대권 의지도 드러내지 않았고, 지역 기반도 없다. 문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 수장이 가설이긴 하지만 가장 강력한 차기 대선주자가 된다고 하니 역설적이다. 검찰을 향한 정치 난투극이 계속되는 한 윤석열 총장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당분간 ‘잠룡’ 타이틀을 떼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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