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부동산 누르면 결국 서울만 뛴다”
  • 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gil@sisajournal-e.com)
  • 승인 2020.07.01 14:00
  • 호수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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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번째 부동산 대책으로 집값 양극화 우려도 커져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규제에 의해 평준화된 모습이다. 6·17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수도권 대부분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저금리와 맞물린 시중의 유동자금이 규제를 피해 수도권 비규제 지역으로 흘러가 집값을 자극했다고 판단했다. 규제의 빈틈을 파고드는 ‘풍선효과’를 원천 봉쇄해 집값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정부의 정책을 놓고 전문가들은 기대보다 우려가 더 크다고 진단했다. 이번 규제로 길을 잃은 유동자금이 서울로 회귀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동일한 규제 선상에 있다면 입지가 좋고 상품성이 높은 지역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울과 수도권·지방의 집값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 강남구 양재대로에 위치한 구룡마을 전경 ⓒ시사저널 임준선
서울 강남구 양재대로에 위치한 구룡마을 전경 ⓒ시사저널 임준선

수도권 전역, 규제 지역으로 묶여

지난 6월17일 문재인 정부의 21번째 부동산 대책이 발표됐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최근 주택가격 상승세가 뚜렷한 수도권 전역과 대전·충북 대부분 지역을 조정대상지역과 투기과열지구로 묶는 초강수를 뒀다. 인천 전 지역(강화·옹진 제외), 경기 전 지역(김포·파주·연천 등 접경지 제외)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했고, 이 중 인천 연수구·남동구·서구, 경기 과천·성남분당 및 수정·광명·하남·수원·안양·안산단원·구리·군포·의왕·용인수지·기흥·화성(동탄2) 등은 투기과열지구에 포함시켰다.

지방에선 대전, 청주 지역과 오창·오송읍이 조정대상지역으로, 대전 동구·중구·서구·유성구 등 대전 4개 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됐다. 이들 지역에서는 6월19일부터 대출 제한과 분양권 전매제한 등 규제가 적용된다. 정부는 이번 규제로 과열 양상이 일부 진정되고 매수 심리도 단기적으로 소강상태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이 단기적으로 진정 효과만 낼 뿐 장기적으로는 서울과 그 외 지역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수도권 부동산 시장을 억누른 풍선효과로 서울 주택시장에 수요가 집중될 가능성이 있어서다. 그동안 대출 규제를 피해 서울과 접근성이 좋거나 교통이 좋은 수도권 도시로 빠졌지만, 수도권 대부분이 규제 지역이면 굳이 이동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시중에 대기하고 있는 풍부한 유동자금도 불안요인으로 꼽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자금의 현금화 가능성을 의미하는 M1/M2 비율은 33.15%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시중 유동자금은 1500조원으로 추정된다. 은행 대출 없이도 부동산에 투자할 자금 여력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KB부자리포트를 보면 지난해 부자 숫자가 32만3000명으로, 이들은 부동산 자산을 제외하고 현찰로 10억원 이상 있는 사람”이라며 “서울은 고강도 규제 속에서도 3년 내내 올랐는데, 투자 수요가 아니라 이러한 자산가들이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규제에 큰 차이가 없다면 막대한 유동자금이 상대적으로 상품성이 좋은 서울 주택시장에 몰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경제성장 시기에는 집값이 전국적으로 오르지만, 유동성만 풍부한 시기에는 상품성이 있는 곳에만 사람이 몰리는 선별적 양극화가 벌어지게 된다”며 “수도권 규제가 평준화된 상황에서 유동자금은 결국 입지가 좋은 서울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수도권 일부 지역과 지방은 약보합세, 서울은 지속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기존 주택을 정리하고 상품성이 좋은 서울 아파트, 이른바 ‘똘똘한 한 채’에 집중하는 양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 소장은 “비규제 지역이 점점 줄어드는 만큼 투자 수요층은 다주택 전략 대신 똘똘한 한 채 전략으로 갈 확률이 높다”며 “오랫동안 투자했을 때 자산 가치가 있고, 인플레이션 위험을 헤지할 수 있는 곳으로 수요가 몰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인 주택 거래 규제에 지방만 타격

법인 주택 거래 규제도 양극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6·17 대책을 통해 내년 6월부터 법인이 보유한 주택에 대해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할 때 최고세율인 3~4%를 적용하기로 했다. 법인이 소유한 주택 처분 시 기본 법인세율에 더해 추가로 적용하는 법인세율도 현행 10%에서 20%까지 올렸다. 과세를 대폭 강화해 법인의 투기를 누르고 집값 자극도 막겠다는 취지다. 시장에선 이번 규제로 법인발(發) 급매물이 대거 나올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다만 서울에선 그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주택 거래 중 법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방에 비해 비교적 높지 않아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체 아파트 매매에서 법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충북 청주의 경우 2017년 0.9%에서 올해 1월부터 5월까지는 12.5%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인천은 0.6%에서 8.2%, 경기는 0.7%에서 6.4%로 크게 늘었다. 반면에 서울은 비중이 2.2%에 불과하다.

결국 법인 거래 비중이 높은 지방만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소장은 “이번에 법인 비중이 많았던 지역들은 규제로 인해 법인발 물건이 많이 나오면서 집값 하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양극화 등으로 신음하고 있는 지방 부동산 시장은 충격이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규제 강화로 인한 전세난도 서울 집값을 더욱 끌어올릴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비규제 지역을 포함한 전 지역에서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하도록 했다. 또 8년 장기 주택임대사업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감면 혜택을 조정대상지역에서 없애고 주택 양도 시 추가 세율을 적용받도록 하는 등 임대사업자 유인책을 대거 거둬들였다. 심 교수는 “장기 전세 물량의 주요 공급원 역할을 했던 주택임대사업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며 “부동산 시장은 전세가격이 상승하면 매매가격이 상승하는 패턴을 보이는데, 공급 부족으로 전셋값이 오르면 집값도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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