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점점 더 뾰족해진다 [김현수의 메트로폴리스2030]
  • 김현수 단국대 교수(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8 12:00
  • 호수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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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놀면서, 거주하는 도심첨단산업단지 현실화할 듯

서울에서 가장 비싼 땅은 명동의 화장품숍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가장 싼 땅은 도봉산 중턱의 임야라고 한다. 제일 비싼 땅은 제일 싼 땅값의 10만 배쯤 비싸다. 양 필지 간의 거리는 13km 남짓하다. 수평축을 거리로, 수직축을 땅값으로 그래프를 그려보면 중심지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땅값이 가파르게 하락하는 ‘우하향’ 모양이다. 도시는 평평하지 않다.

철도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도시는 더 뾰족해진다. KTX(한국고속철도)는 최고 시속 300km,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는 180km로 땅 아래를 달린다. 철도의 속도는 지난 100년간 10배 빨라졌는데, 지금도 빨라지고 있다. 고속철도와 광역급행철도, 도시철도와 버스가 만나는 곳에 사람과 경제활동이 모인다. 철도, 지하철, 버스, 승용차가 편리하게 연계(linkage)되고 환승(transfer)되도록 만들어주면 일자리와 서비스가 집중한다. 이런 곳은 밀도를 높게 하고 복합 용도로 개발해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공급을 늘려줘야 한다. 서울-용산역, 삼성역, 청량리역 등이 이런 곳에 해당한다.

송도에 위치한 첨단산업단지 ⓒ시사저널 최준필
송도에 위치한 첨단산업단지 ⓒ시사저널 최준필

주택과 일하는 자리 분리되지 않아

부산역, 서대구역, 대전역, 광주역 같은 광역시의 고속철도 환승역도 마찬가지다. 공공재정을 투여해 대규모 공공재가 건설된 곳이고 이런 곳에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모일 만한 곳에 일자리든, 주택이든, 공공시설이든 공급해야 한다. 런던의 킹스크로스역 중심으로 영국에서 제일 반짝이는 기업들과 창업가, 예술가들이 모인다. 이런 곳을 고밀, 복합개발하면 이동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이동거리가 짧아지며 대중교통 이용이 촉진되고 에너지를 적게 쓸 수 있으니, 그린뉴딜의 효과적인 방편이 된다.

사람과 일자리가 빽빽하게 몰리는 곳을 상업지역으로 결정해야 한다. 특히 고속철도와 광역철도가 만나는 초역세권은 지금과 달리, 더 높은 용적률을 허용해야 한다. 고속철도, 광역철도, 도시철도, 버스환승, 공항터미널이 연계되는 역세권은 처리 용량이 가장 큰 초역세권이 될 것이다. 즉, 보다 고속의 철도가, 보다 다양한 교통수단이 매끄럽게 연계되는 역세권일수록 교통의 처리 용량이 큰 곳이므로 높은 용적률을 허용해야 한다. 즉 네트워크 수준이 높을수록 높은 용적률을 허용해야 한다. 50년 전 강남토지구획정리사업 시절에는 간선도로 폭을 중심으로 상업지역과 허용용적률을 부여했다. 개발의 수용 용량을 자동차 교통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산업단지가 도시로 도심으로 들어온다. 항만의 산업단지, 외곽의 공업지역에서 공급되던 제조업의 일자리가 줄어드는데 첨단화하고 소프트화된 일자리, 연구소, 스타트업과 벤처회사들, 정보통신기업들은 대도시로 도심으로 몰려든다. 성장하는 기업들이 대도시의 중심지로 집중한다. 대학 캠퍼스만 한 판교테크노밸리의 매출이 90조원에 육박한다고 하지 않나. 이런 기업들이 도심에 입지한다고 해서 주변 환경과 충돌하지 않는다. 영국의 공중위생법, 뉴욕의 표준도시계획 수권법에서 시작된 전통 도시계획, 용도지역지구제는 상충되는 용도 간의 분리를 전제로 한다. 즉 공장과 같은 위해시설로부터 주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시작된 산업도시 시대의 계획수법이다. 그런데 이제 점점 더 생산장소가 주거에 위해하지 않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되고 있다. 주택과 일하는 자리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주택과 일자리가 혼합되고 있으며 도시의 일자리에는 재미와 쾌적함까지 요구되고 있다. 도심을 CBD(Central Business District·중심상업업무지구)라고 했는데 이제 CRD(Central Recreational District·도심첨단산업단지)라고 부른다. 재미와 쾌적함을 찾는 혁신인력, 경제활동의 새로운 주체인 창조계급들은 일하면서, 놀면서, 거주하는 그런 장소를 찾아서 모인다. 뉴욕의 폐철도를 활용한 하이라인 중심으로 상권이 살아나고 기업들이 모인다.

 

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도시계획

대도시의 형태는 더 뾰족해지고 도시 기능은 복합화된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초환승역세권 중심으로 뾰족해지고 주거와 일자리, 주택과 산업이 섞이게 된다. GTX 3개 노선이 연결되는 시점이 되면 초환승역세권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될수록 CRD의 진면목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속도 경쟁, 모빌리티 혁명이 뾰족한 도시 형태를 만들어간다. 용도의 복합화는 기술혁명의 결과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도시의 형태와 기능을 바꾸어온 것은 도시발달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수십만 년간 수렵·채집 경제활동에 의존하던 씨족, 부족 단위의 이동생활을 해오던 인류가 1만 년 전 농업혁명으로 정착하면서 5만 명 규모의 도시를 만들어냈다. 6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모헨조다로’다. 수도교(상하수도를 받치기 위해 만든 다리)와 광역도로망을 건설해 도시의 위생 문제와 식량 문제를 해결한 로마제국은 2000년 전 100만 명이 사는 도시 로마를, 그리고 20세기 기술혁명과 광역철도망은 1000만 명이 사는 대도시를 만들어냈다. 기술 발달과 도시 인구집중은 현재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4차 산업혁명과 모빌리티 경쟁은 5G통신과 고속철도로 3000만 명이 사는 메트로폴리스를 키워가고 있다.

도시를 계획하고 관리하는 제도는 여전히 평평한 도시, 용도 간의 분리를 전제하고 있다. 제도가 시장과 기술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도시는 네트워크 수준에 따라 더 뾰족해지고 몇 개의 극점 중심으로 모인다. 도시 안에서도 그렇고 도시 간에도 그러하다. 도시 간, 지역 간의 양극화가 심해진다. 고속철도와 광역철도의 초환승역세권을 중심으로 혁신 인력과 고급 일자리가 모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과거 산업도시 형성기에 만들어진 도시계획 제도들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초연결사회의 네트워크 균형, 콤팩트한 형태와 복합기능 시대에 걸맞은 도시계획 체계가 필요하다. 환승역의 네트워크 수준을 고려한 상업지역의 세분화와 밀도 체계, 복합 기능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한 용도지역제, 행정구역을 넘어서는 광역도시계획 체계, 빅데이터 중심의 계획 지표 등 변화하는 경제활동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계획 체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새로운 창업가, 혁신가를 만들어내는 데 달려 있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가 일하고 놀고 쉬는 그런 도시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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