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날리는 청와대 특별감찰관실의 현재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0.06.29 08:00
  • 호수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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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靑 특감실 기능, 공수처와 겹쳐” 폐지 움직임
통합 “역할 서로 달라 유지해야” 주장…與의 ‘내로남불’ 비판도

대통령 측근을 감찰하는 청와대 특별감찰관실(특감)에 ‘감찰’ 기능이 사라진 지 4년에 이르고 있다. 서울시 종로구 청진동에 위치한 특감실 직원은 그사이 30여 명에서 단 4명으로 줄어들었다. 2014년 출범 당시 임명된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이 2016년 9월 사퇴한 후 줄곧 수장 없이 표류 중이다. 현재 행정안전부·조달청 등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 3명과 무기계약직 직원 1명이 일상 행정업무만 수행하고 있다. 직원 수보다 회의실 수가 더 많은 사무실 임대료는 한 달에 5000만원이 넘는다.

직원들도 별 도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저 ‘위’에서 어떤 결정이든 빨리 내려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6월22일 특감 사무실에서 시사저널과 만난 직원은 “감찰관이 공석이니 감찰업무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문을 닫을 수도 없다. 국회에서 폐지 법안을 통과시켜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그 전까진 어떻게든 조직을 유지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우리도 특감의 운명을 전혀 모르는 상황이다. 혹 소식이 있으면 전해 달라”고 말했다.

서울종로구청진동에위치한청와대특별감찰관실엔현재4명의직원이출근해행정업무만을수행하고있다. ⓒ시사저널포토
서울종로구청진동에위치한청와대특별감찰관실엔현재4명의직원이출근해행정업무만을수행하고있다. ⓒ시사저널포토

野 “청와대, 측근 비리 척결 의지 없는 탓”

특감은 대통령의 4촌 이내 친·인척 등 측근의 비위를 ‘상시적으로’ 감찰하고자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여야 합의로 설치된 기구다. 특감법은 당시 박범계·전해철 민주당 의원의 주도로 발의됐다. 이후 민주당은 2015년 ‘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지면서 특감의 감찰 범위와 권한을 확대하는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정부·여당은 본격적으로 특감실 폐지를 논의할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여당이 7월 내 발족을 목표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역할 및 기능이 중복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공수처 입법 논의가 진행되면서 특감의 정상화에 대한 정부·여당의 태도는 점차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말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 등 야당에서 특감 후보를 추천하며 모처럼 논의가 이뤄지는 듯했으나, 민주당에서 후보 추천을 미루며 결국 무산된 바 있다.

특감에 대한 문 대통령의 입장 역시 해를 거듭하며 눈에 띄게 변했다. 집권 초, 국회 안팎에서 특감의 실효성 문제가 제기되자 문 대통령은 “특감이 법률상 기구로 적정하게 운영될 의무가 있다”며 국회에 특감 후보 추천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8년 6월, 조국 민정수석을 임명하며 “(민정수석실에서)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에 대해 열심히 감시해 달라”고 당부한 후 한동안 특감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5월28일 여야 원내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에서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조속한 특감 임명을 요구하자, “공수처와 특감 기능이 중복될 우려가 있다. 두 기능을 동시에 둘지, 특감을 없앨지 양당이 협의해 달라”고 밝히며 특감 복원 의지가 확연히 꺾인 모습을 보였다.

실제 특감실 예산만 봐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가파르게 줄어들다가 올해에는 11억4200만원으로, 2015년(22억2100만원)의 반 토막 수준이 됐다. 특감실 직원은 “이 예산은 크게 인건비와 운영비로 나뉘는데, 인건비는 사실상 파견 공무원을 제외하고 무기계약직 직원 한 명분만 나가고 있으며, 운영비는 애초에 사무실 임대료만 편성됐다”고 말했다. 사실상 감찰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편성된 예산은 전무한 것이다.

ⓒ시사저널박은숙

“특감, 비위 행위 예방 기능 있어”

여당은 공수처 출범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특감의 폐지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주장한다. 과거 특감법 발의를 주도했던 박범계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물론 이석수 초대 특감 당시 박근혜 국정농단의 단초를 잡아내는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특감은 수사 기능 없이 조사 기능만 있기 때문에 기존의 민정 산하 공직기강 역할에서 약간 강화된 정도에 불과했다”며 “특감 제도는 애초에 감찰 대상과 기능도 협소했다. 그 역할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공수처가 설치를 위한 구체적 절차에 들어간 상황이기 때문에 폐지가 타당하다”고 말했다. 법사위 소속인 같은 당 김종민 의원 역시 “공수처 제도가 도입된 이상 현재로서 공수처와 별도의 기능을 할 거라고 기대하긴 힘들다. 중복되는 역할을 하는 조직은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이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공수처와 관계없이 대통령과 측근을 감찰하는 특감 조직은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차적인 이유는 공수처에 대한 불신이다. 공수처장 등 인사를 사실상 정부가 좌우할 수 있어 정치적 독립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최근 여권에서 “공수처 수사 대상 1호는 윤석열 검찰총장”이라는 등 공수처를 검찰 압박용으로 활용하려는 듯한 발언이 나오는 것도 야당을 자극했다.

조해진 통합당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대통령 의중에 있는 사람으로 공수처를 구성해, 대통령이 사정의 칼을 휘두르는 데 도구로 쓰일 우려가 있다. 현행법으로는 대통령과 주변을 감찰하는 기능이 어려운, 정치적 중립을 잃은 기관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상황에서 특감까지 폐지될 경우 대통령과 측근에 대한 감찰 기능이 크게 약화될 거란 얘기다.

또 하나, 야당은 애초에 공수처와 특감의 역할과 기능이 그리 겹치지 않는다고 맞선다. 특감은 감찰 대상자의 비위 행위를 사전에 파악·조사하는 기구이기 때문에 비위 행위를 예방할 수 있는 반면, 공수처는 말 그대로 수사 기구이기 때문에 범죄행위가 명확할 경우에만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조해진 의원은 “특감 권한은 동향 파악만 가능하게 돼 있지만, 그 존재만으로 대통령과 측근 감시나 이들에게 접근하는 온갖 브로커들을 차단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대통령 또한 이 조직을 유지함으로써 ‘나와 내 주변은 떳떳하다’는 이미지를 한층 강조할 수 있는데 4년 가까이 특감을 방치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야당의 한 중진 의원 역시 “특감 정상화에 대한 정부·여당의 소극적 태도가 조국 전 수석 사태와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감찰 무마,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 등에 대한 사전 감찰 기능을 무력하게 만들었다”며 “겉으로는 권력형 비리 척결을 강조하면서 결국 내부 감시자가 있는 게 싫어 계속 미뤄왔던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특감 폐지 여부는 자연히 공수처 출범 진척에 따라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여당은 지난해 통과시킨 공수처법에 따라 오는 7월 전후 본격 출범을 계획하고 있지만, 아무리 거대 여당일지라도 그 여정은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야당은 공수처 자체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며, 공수처장 후보를 비토할 권리 또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수처 출범이 지지부진해지면 자연히 이와 연쇄적으로 논의가 이뤄질 특감 폐지 여부 또한 차일피일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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