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악재에 빛바랜 KT ‘구현모號’의 홀로서기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0.07.01 10:30
  • 호수 160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2년 만의 내부 승진으로 기대 모았지만
뚜껑 여니 바람 잘 날 없는 KT

KT는 지난 2002년 민영화에 성공했다. 이후 이석채 전 회장과 황창규 전 회장 등 외부 인사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잡음이 일었다. 밀실 인사부터 낙하산 논란까지 CEO 선임 때마다 진통을 겪어야 했다. 이들이 퇴임하는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다. 민영화 이후 KT CEO를 역임한 인사들 대다수가 비리 의혹에 연루되면서 중도 하차했다.

임기를 무사히 마친 인사는 황창규 전 회장이 유일했다. 그나마 황 전 회장도 지난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KT가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이른바 ‘상품권 깡’을 통해 11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19대와 20대 국회의원 99명의 후원계좌에 쪼개기 입금하고, 골프 비용 등 접대비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1월 황 전 회장을 포함한 전·현직 임원 7명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검찰 수사에 CEO 자질 논란까지

그만큼 KT CEO 자리는 ‘외풍’을 많이 탔다. KT 내부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사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정권 교체기마다 임기가 남은 회장에게 물러나라고 압박하는 일종의 ‘시그널’을 보낸다”며 “황 전 회장의 경우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흑역사를 종식하기 위해 완강히 버티다가 사정기관의 타깃이 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황 전 회장이 경찰 조사를 받을 즈음,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이 돌연 회장직 사임 의사를 밝혔다. 임기를 2년여 정도 남겨둔 시점이어서 사퇴 배경이 주목을 받았다. 표면적인 사임 이유는 건강 문제였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정권 외압 의혹이 적지 않게 제기됐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각종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서 검찰의 추가 수사 가능성이 제기되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3월30일 KT의 새 수장으로 낙점된 구현모 사장이 회사 안팎에서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구 사장은 KT 사원에서 대표이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회사 내부에서는 CEO 교체기마다 반복되던 악순환을 구 사장이 끊을 수 있다는 기대가 컸다. 지난 30년 동안 KT에서 주요 부서를 거친 만큼 회사 내부 사정에도 밝았다. 취임 초기만 해도 ‘구현모호’에 대한 우려보다 기대가 높았던 게 사실이다.

사업적으로도 일정 부분 성과를 냈다. 조선과 의료, 로봇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실험적이지만 5G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혁신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6월16일 현대로보틱스와 전략적 제휴를 위한 사업 협력 계약과 500억원 규모의 투자계약을 맺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 제휴는 구 사장이 KT 대표에 취임한 후 첫 번째 전략적 투자로, KT는 현대로보틱스의 지분 10%를 확보하게 됐다.

조선과 의료, 로봇 분야서 실험적 혁신 사업 진행

아울러 KT는 삼성서울병원과의 스마트혁신 병원 협력 사업도 진행 중이다. 구 사장은 “AI와 5G 시대에 KT가 대한민국에 기여하는 방법은 우리가 갖고 있는 통신망과 ICT 기술, AI 기술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삶과 타 산업의 혁신을 도와주는 것”이라며 “AI 원팀을 통해 대한민국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AI 1등 국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구 사장이 공식 취임하고 3개월여가 지난 현재의 시각은 조금 달라졌다. 코로나19 대유행과 검찰의 압수수색, 젊은 직원들과의 불화 등으로 실망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전임 회장과 함께 구 사장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점이 우선 발목을 잡고 있다. KT 주총 당시 일부 직원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이 대표가 될 수 없도록 정관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구 사장은 “취임하기도 전에 그만두라는 얘기를 듣는 대표는 제가 처음일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결국 KT 이사회가 중재자로 나섰다. 이사회는 유죄 판결이 나면 CEO에서 물러난다는 조건으로 구 사장의 임명을 강행했다. 검찰과 법원 판단에 따라 구 사장이 언제든 물러날 수 있는 리스크를 안고 첫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구 사장 역시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공식 취임 직후 기업영업 부문과 대관 등 대외 업무부서의 법인카드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구 사장의 지시를 어기고 주말에 법인카드를 사용한 일부 임원이 징계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관련 부서의 직원들은 물론이고 임원들도 현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사실상 일을 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는 하소연까지 들려오고 있다.

검찰 관계자들이 2019년 1월14일 서울 광화문 KT사옥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관계자들이 2019년 1월14일 서울 광화문 KT사옥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KT 측 “검찰 압수수색은 구 사장과 무관”

물론 KT 측은 “관련 규정에 따른 조치였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SEC)의 현장 조사를 앞두고 구 사장이 몸을 사리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KT는 현재 뉴욕증권거래소에도 상장돼 있다. 시가총액은 3조원 규모다. KT는 2017년 미르·K스포츠 재단에 후원금을 낸 경위를 두고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도 연루됐다. 투명하지 못한 자금 집행 의혹이 잇달아 불거지자 SEC는 KT 측에 실태조사를 통보했다. 올해 초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실태조사는 미뤄졌지만, 언제든 재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 조사에 대비해 대외 부서 등의 법인카드 사용을 막았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KT는 구 사장 취임 이후 준법경영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희관 전 법무연수원장과 안상돈 전 서울북부지검장을 각각 컴플라이언스위원회 위원장과 법무실장으로 영입했다. 김희관 전 법무연수원장은 대전고등검찰 검사장, 광주연수원장 등을 끝으로 독립해 변호사로 활동 중이었다. 안상돈 전 검사장은 1988년 제30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대검찰청 형사부장, 서울북부지검 검사장 등을 지냈다.

경찰 인사도 최근 잇달아 영입했다. 대부분 경찰대 출신으로 A경감은 그룹경영실 컴플라이언스 TF장으로, B경감과 C경위는 법무실 산하 형사법무팀원으로 각각 업무를 본격화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조치가 글로벌 수준의 준법경영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구 사장의 의지를 SEC 측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발’ 악재가 최근 또다시 불거졌다. 6월17일 검찰이 통신 3사의 입찰 담합 행위에 가담한 혐의로 KT 광화문 사옥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인 것이다. 지난해 4월 공정위가 KT를 고발한 것이 이유였다. 당시 공정위는 담합 행위가 적발된 12건 가운데 KT가 9건의 계약을 따낸 점을 들어 KT가 담합을 주도한 것으로 판단했다.

문제는 구 사장이 당시 황창규 회장의 비서실장 겸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었다는 점이다. 담합 혐의에 관련된 실무자로 구 사장이 또다시 검찰 수사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6월30일은 구 사장이 공식 취임한 지 정확히 3개월 되는 날이다. 잔칫날을 10여 일 앞두고 검찰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는 점에서 우려가 더하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만큼 KT 측은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회사 관계자는 “검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겠다”면서도 “이번 검찰 수사가 구 사장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공식적 입장을 밝혔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