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가, 20대 정치 유망주의 스캔들로 들썩들썩
  • 이수민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09 15:00
  • 호수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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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토르 기민당 의원, 미국 스타트업 ‘로비활동’ 의혹…정경유착 논란 불 지펴

독일 정치권이 연일 시끄럽다. 정계의 ‘떠오르는 샛별’로 촉망받던 한 젊은 정치인의 스캔들 때문이다. 주인공은 1992년생 필립 암토르(Philipp Amthor). 그는 독일 북부에 위치한 소도시 위커뮌데(Ueckermunde)에서 태어났다. 2008년부터 기독민주당에서 활동하며 정치권에 발을 들인 그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그라이프스발트(Greifswald) 법대를 다니며 1차 국가고시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수재로 꼽혔다. 암토르는 2017년 독일 연방의회인 분데스탁 의원에 당선되는 쾌거를 이루며 단번에 기민당의 ‘미래’가 됐다. 젊은 나이와 청렴하고 겸손한 이미지로 대중의 두터운 지지도 받았다. 그런 그가 최근 치명적인 로비 스캔들에 휩쓸리며 각종 정치활동을 중단해 독일 사회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발단은 지난 3월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한 기사였다. 당시 보도에선 미국 스타트업 ‘어거스터스 인텔리전스(이하 어거스터스)’를 소개하며 암토르와의 관계가 ‘불투명’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뉴욕 세계무역센터 77층에 위치한 어거스터스는 인공지능 소트프웨어를 개발하는 곳이다. 이 회사는 지난 1월부터 회사 최고영업책임자였던 마르고 파셀리, 생산을 총괄했던 애드 크럼프와 소송 중이다. 그들이 경쟁사인 콴텀 인텔리전스(이하 콴텀)를 창립해 기존 고객들과 어거스터스의 정보를 빼돌렸다는 혐의다. 파셀리와 크럼프는 “콴텀은 어거스터스와 무관하며 고객을 빼돌리는 등 기업 윤리에 위배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업체 ‘어거스터스 인텔리전스’와의 유착 의혹을 받고 있는 독일 기독민주당 소속 필립 암토르 의원 ⓒAP 연합
미국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업체 ‘어거스터스 인텔리전스’와의 유착 의혹을 받고 있는 독일 기독민주당 소속 필립 암토르 의원 ⓒAP 연합

회사 로비 후 주식옵션 획득한 암토르

슈피겔은 어거스터스에 대한 이들의 주장을 하나씩 열거했다. 어거스터스에서 주장하는 대로 2019년 매출 10억 달러를 올렸다는 것은 거짓이며, 실제 300만 달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또한 어거스터스는 스스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적이 없으며, 오픈 소스인 코드들을 합쳐 데모 버전을 내놓았을 뿐이라는 주장도 보도했다. 나아가 어거스터스가 정치권 고위층과의 친분을 통해 자신들의 불법적인 일을 덮는 데만 급급하다는 비난도 덧붙였다. 어거스터스 측은 이러한 혐의를 모두 부인했지만, 숱한 의혹들을 지우진 못하고 있다.

그런데 암토르는 미국의 이 기업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 우선 암토르는 어거스터스의 감사위원회에 속해 있다. 이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독일 정치인은 부수입만 제대로 신고하면 이러한 활동이 금지되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토르는 어거스터스와 관련한 보수를 신고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기업으로부터 유일하게 받는 것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회사의 지분을 받을 수 있는 권리뿐이다.

그런데 첫 보도가 나온 후 3개월이 지난 6월, 슈피겔에서는 암토르가 어거스터스를 위한 로비활동을 했다는 기사를 내놓았다. 그들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암토르는 2018년 가을 연방 경제부 장관인 페터 알트마이어에게 편지를 보냈다. 어거스터스를 “잘 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기업 회장과의 만남도 주선하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어거스터스를 통해 독일 인공지능 개발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거라는 점까지 언급했다. 그 무렵 어거스터스는 독일 고위 정치권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투자자 유치에 성공한다. 그리고 암토르는 2019년 5월 어거스터스의 자문위원회가 아닌 이사회에 들어가면서 약 2817주의 주식옵션을 획득한다. 어거스터스의 주가가 오르면 암토르는 이 옵션으로 고수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문제가 제기됐다. 정치인은 부수입을 신고해야 하지만, 이러한 ‘옵션’의 경우에는 실질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지 않고 일종의 ‘권리’만 인정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암토르의 주장이다. 하지만 독일 시민들은 이 사실이 밝혀지자마자 분개했다. 정치인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수익을 얻으려 했다는 점뿐 아니라 암토르가 어거스터스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는 사실에 대한 괘씸죄도 크게 작용했다.

이에 대해 기민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후임으로 차기 총리 후보에 오른 기민당 소속 프리드리히 메르츠 역시 암토르 스캔들을 비판하며 기존에 친분이 두터웠던 그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시민들은 평소 암토르 못지않게 재계와 깊숙이 관계를 가졌던 메르츠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나섰다. 변호사 출신인 메르츠는 각종 은행과 대기업의 감사위원회에 소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2016년부터 지난 3월까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독일지사 감사위원장이자 로비스트로도 활동했다. 해당 기간 그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고 차기 총리 후보에까지 오르는 등 정치활동 또한 활발히 했다.

 

“마녀사냥 안 돼” vs “청문회 빨리 열어야”

분노한 여론을 등에 업고 연방의회는 6월19일 암토르 스캔들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었다. 해당 사안에 대해 자유발언을 하는 이 자리에서 기민당을 포함해 사민당·좌파당·녹색당 등은 모두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 발언했다. 이때 나왔던 주요 쟁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우선 암토르의 행실에 문제가 있었는가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다. 암토르가 속한 기민당에선 그의 행실을 도덕적으로는 비판할 수 있지만 실제 위법행위를 저질렀는지 함부로 판단해 마녀사냥을 해선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현재 로비스트로서의 활동보다 그가 어거스터스의 초청으로 호화출장을 다녔다는 등 자극적인 부분에 언론과 여론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상황을 경계한 것이다. 그러나 국민 정서에 반하는 제 식구 감싸기라는 지적이 우세했다.

두 번째는 가장 의견이 분분한 ‘로비 명부 도입’ 문제였다. 반기업적 성향의 좌파당·녹색당 등 소수정당은 “왜 아직도 독일에 로비 명부가 존재하지 않는가”라고 지적했고, 비교적 친기업적으로 분류되는 기민당과 자민당은 “정치와 경제가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며 ‘좋은 로비’도 있다고 반박했다. 정치인이 누구와 만났다고 해서 그게 곧 의사 결정에 영향을 줄 거라는 의혹은 위험하며, 로비 명부는 그러한 의혹을 증폭시켜 결국 손해가 더 클 것이라는 주장이다. 논쟁이 뜨거워지면서 이들은 상대 정당 소속 정치인 중 현재 얼마나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는지 서로 줄줄 읽어 나가는 등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날 마지막 쟁점은 암토르에 대한 청문회 시기 조율이었다. 일단 암토르 본인이 왜 이 자리에 나와 직접 해명하지 않고 뒤로 숨는지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또한 현재 독일 연방의회가 7~8월 두 달간 열리지 않는 탓에 청문회도 빨라야 9월에나 가능하다는 데 대한 우려도 나왔다. 그사이 스캔들이 잠잠해지면 여러 논의와 비판 또한 사라질 것 아니냐는 것이다. 독일 사회에선 이번 암토르 스캔들을 계기로, 그간 암묵적으로 만연했던 정치인의 로비활동 등 정경유착이 더욱 수면 위로 떠오르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된 논의가 꾸준히 이어져 궁극적인 사회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다들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반짝하고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해프닝’으로 끝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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