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검찰 지배하는 악순환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03 14:00
  • 호수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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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법무장관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협공, 윤석열 검찰총장의 운명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말폭탄’이 그를 향해 투하되더니, 이번에는 ‘검언(檢言)유착’ 의혹 사건을 둘러싸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항명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먼저 총선기간 동안 잠시 잠잠했던 추 장관의 윤 총장 압박이 본격적으로 재개되었다. “검찰총장이 제 지시를 절반 잘라먹었다.” “장관 지휘를 겸허히 받아들이면 좋게 지나갈 일을 새삼 지휘랍시고 일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 “장관이 이런 총장과 일해 본 적도 없고 재지시해 본 적도 없다.” 추 장관은 ‘한명숙 사건’과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두고 윤 총장이 자신의 지시 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연일 격앙된 표현으로 윤 총장을 비난했다.

검찰총장을 말 안 듣는 아이 취급한 추 장관의 발언에 앞서 법무부는 검언유착 사건과 관련해 한동훈 검사장을 전보 조치하고 법무부가 직접 감찰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법무부가 직접 감찰에 착수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한동훈 검사장은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며 결백을 주장하고 있고, 서울중앙지검의 수사에서도 채널A 기자와의 공모가 입증된 것은 아직 없는 것으로 전해지니, 진실이 무엇인가는 더 지켜봐야 알 것 같다. 그럼에도 추 장관이 ‘검언유착’이라는 결론을 앞서 내놓으며 한 검사장에 대한 감찰을 재지시하고, 두 번째 좌천 조치를 취한 것은 결국 ‘윤석열 최측근’이라는 꼬리표 때문이었을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6월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연구원 주최로 열린 초선 의원 혁신포럼 ‘슬기로운 의원생활’에 참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6월2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주연구원 주최로 열린 초선 의원 혁신포럼 ‘슬기로운 의원생활’에 참석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장외에서 총장 모욕 주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추 장관은 공개적인 강연에서 윤 총장을 조롱하고 하대하는 언어들로 공격함으로써 검찰 안팎에서 그의 리더십을 흔들어 놓았다. 추 장관은 자신의 발언을 향한 비판에 대해 “장관의 언어 품격을 저격한다면 번지수가 틀렸다”면서 본질은 검언유착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진짜 본질은 입증되지 않은 검언유착이 아니라, 살아 있는 권력에 수사의 칼을 들이댔던 윤 총장에 대한 응징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추 장관과 윤 총장이 함께 있던 자리에서 법무부와 검찰이 서로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바로 뒤 추 장관은 윤 총장을 향해 거친 말들을 쏟아내며 비판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민주당에서도 이해찬 대표가 “윤석열이라는 이름은 입에 올리지 말자”고 함구령을 내렸지만, 여전히 ‘윤석열 사퇴’를 압박하는 발언 릴레이는 계속되고 있다.

집권세력이 윤석열을 대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마치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때리는 모습이다. 웃는 표정은 ‘윤석열 찍어내기’에 대한 국민여론을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고, 뒤에서 때리는 것은 더 이상 그냥 놔둘 수 없다는 보복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비난하는 말과 글을 공개적으로 쏟아내는 상황을 반복하느니, 윤 총장이 그렇게도 검찰 개혁을 막고 잘못을 저지르는 인물이라 생각된다면, 추 장관이 건의해 문 대통령이 재량권 논란을 무릅쓰고 해임 결정을 내리고 국민의 평가를 받는 것이 차라리 책임 있는 모습이겠다. 대통령에게 악역을 맡기기가 부담스럽다면, 윤 총장을 법무부 장관 지휘권을 규정한 검찰청법 8조 위반으로 국회에서 탄핵소추할 힘도 여당은 갖고 있다. 검찰총장에게 죄가 있다면 제도와 절차를 통해 장내에서 당당하게 매듭지을 일이지, 장외에서 모욕 주고 조롱하는 것은 정도가 아니다. 

추 장관이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를 비판했지만,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했던 검사들을 모조리 좌천시킨 그의 인사 이상의 제 식구 감싸기를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윤석열 검찰도 누구든 의심받는 의혹이 있으면 당연히 조사받아야 한다. 하지만 장관이 ‘선봉’에 서서 자신의 예단을 내놓고 검찰총장을 하대하는 말폭탄을 터뜨리는 것은 사실대로의 진상규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윤석열의 측근이라고 해서 특별히 보호받아서도 안 되고, 반대로 확인된 것 없이 미리 죄인으로 낙인찍혀서도 안 된다.

추 장관은 검찰 개혁에 대한 자신의 비장한 각오를 말한다. “꺾이지 않겠다.” “희생은 무섭지 않다.” “선봉에 서겠다.” 176석의 거대 여당을 거느린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상대로 ‘선봉’에 서서 적과 싸우듯이 하는 ‘추다르크’가 되는 방식이 과연 적절한 것일까. ‘추’와 ‘윤’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다면 둘이 직접 만나서 끝장을 보든지 아니면 시스템이 정한 절차대로 하면 될 일이지, 이렇게 장관이 장외투쟁을 벌일 일은 아니다.

 

법무장관의 거친 말, 정치성 개입 드러내

추 장관의 윤석열 때리기 말폭탄이 이어진 직후 검언유착 수사를 둘러싼 검찰 내부의 갈등이 터져나왔다. 윤 총장이 전문수사자문단을 소집한 데 대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 일부 대검 간부들이 반발하면서 그의 리더십은 상처를 입게 되었다. 이번 과정에서 윤 총장과 갈등을 빚었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대검 간부들은 추 장관이 윤 총장의 수족들을 좌천시키며 임명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사태는 진즉에 예고되었던 것이었다. 

검언유착 사건의 범죄 성립과 입증 여부에 대한 판단이 서로 다르다. 확인된 사실에 견주어 어느 판단이 옳은 것인지 아직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시스템이 정해 놓은 절차에 따라 처리할 일이다. 검찰청법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은 검찰총장이 지휘하면 일단 그에 따라야 한다. 거기에 문제가 있다면 역시 검찰청법에 따라 법무부 장관이 다시 검찰총장에 대해 지휘권을 행사하면 되는 일이다. 서로 의견이 충돌할 때 최선의 방법은 그럴 때를 대비해 만들어진 시스템에 따라 해결하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이 시스템 밖의 장외에서 검찰총장을 비난하고, 서울중앙지검장이 항명을 하는 방식은 작금의 사태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정치성을 드러내고 있다.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말 안 듣는’ 부하가 되고,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의로운’ 부하로 여길 일은 아니다. 지금의 분위기로는 ‘이 모든 일이 윤석열 때문’인 것으로 몰아갈 것 같다. 하지만 다시 묻게 된다. 정말 이 혼돈의 책임이 윤석열 한 사람에게 있는 것인가.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했던 검사들을 모조리 좌천시키고, 그 검찰총장을 고립무원의 식물 총장으로 만들어버린 사람들은 무죄인가.

윤 총장이 자신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범죄 사실을 덮으려 한다면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법무부 장관은 밖에서 공격하고, 안에서는 총장의 지휘에 항명하고, 윤 총장은 사면초가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앞으로 윤석열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고비를 맞고 있다. 검찰 개혁이라는 숭고한 구호 아래, 정치가 검찰을 지배하는 악순환의 길로 가지 않기를 바란다. 7월2일 시스템에 의해 추 장관이 윤 총장에게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으니, 이제 그 결과에 대한 평가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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