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죽이던 日 검찰, 아베 측근 향해 칼 빼드는 이유
  • 유재순 JP뉴스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03 17:00
  • 호수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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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권력과 검찰의 전쟁사…아베의 ‘측근 검사총장 만들기’에 검찰 내부 반감

1976년 7월27일, 당시 일본 총리였던 다나카 가쿠에이가 도쿄지검 특수부에 의해 전격 체포됐다. 미국의 록히드 항공사 비행기 수주를 놓고 뇌물을 수수한 혐의에 따른 체포였다. 현직 총리 입건 소식은 일본열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일본 금권정치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다나카 가쿠에이의 몰락은 세계적인 뉴스가 됐다. 그 후 다나카 총리는 1983년에 징역 4년, 추징금 5억 엔 판결로 최종 유죄를 받았지만 이 사건은 일본 검찰, 특히 특수부의 매서운 칼날을 일본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현직 총리를 체포했다는 사실 하나로 전 국민적 신뢰를 얻은 것이다.

그 후 큰 정치 문제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일본 검찰은 어김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이 같은 일본 검찰의 위상은 지난 10여 년간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이 시기는 다름 아닌 아베 신조 현 총리의 제2기 집권기간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정치와 관련된 대형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영부영 넘어간 것이다.

일본 검찰이 최근 아베 총리의 측근들을 향한 권력수사에 나서고 있어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일본 검찰청사 ⓒ연합뉴스
일본 검찰이 최근 아베 총리의 측근들을 향한 권력수사에 나서고 있어 정치권이 주목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일본 검찰청사 ⓒ연합뉴스

“아베 지지율 바닥 기니까 이제 나서는 건가?”

6월18일 일본 언론은 일제히 가와이 가쓰유키 중의원과 그의 부인 가와이 안리 참의원의 체포를 놓고 검찰의 칼날이 되살아났다고 흥분하고 있다(82쪽 기사 참조). 연일 검찰의 일거수일투족을 취재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현직 의원 부부, 특히 아베 총리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가쓰유키 중의원을 체포했다는 이유에서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제 와서 왜?” “아베 총리에 대한 국민적 지지율이 바닥을 기니까 나서는 것인가?”라며 검찰에 대해 냉랭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실제로 일본 검찰은 최근 들어 부쩍 아베 정권 인사들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아키모토 쓰카사 중의원은 아베 정부가 도쿄올림픽을 맞이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사업과 관련해 가와이 부부가 체포되기 전인 지난해 12월에 먼저 구속됐다. 기업 측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였다. 아키모토 의원은 자민당 소속으로 국토교통성 차관도 지낸 아베 측근이다. 문제는 아키모토 의원 외에 검찰 추적을 받고 있는 의원이 5명 더 있으며, 이 중 방위청 장관을 지낸 이와야 다케시 중의원, 미야자키 마사히사 법무정무관(차관급) 등  4명이 자민당 소속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일본 검찰이 동시다발적으로 자민당 소속 정치인의 금품관련 사건을 파고들자 지지통신은 ‘총리관저와 법무성, 검찰 당국이 암투를 벌이는 것일까?’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동안 아베 총리는 공공연하게 구로카와 히로무 전 도쿄고검장을 검사총장(검찰총장)으로 앉히기 위해 검찰청법을 개정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올해 1월, 그의 정년도 한 번 연장해 줬다. 일본 언론의 지적대로 분명히 헌법을 무시한 아베 총리의 월권이었다. 하지만 일본 언론은 지적만 했을 뿐, 아베 총리의 위헌적인 월권에 대해서는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로부터 권언유착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하지만 복병은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지난 5월 중순, 구로카와 도쿄고검장이 내기 마작을 하다 발각된 것이다. 아사히신문·산케이신문 기자 등과 서로의 집을 돌아가면서 내기 마작을 벌인 것이었다.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구로카와 고검장은 사표를, 기자들은 각 신문사에서 징계를 받았다. 사실 이때 구로카와 고검장의 도박 행위가 발각되지 않고 아베 총리의 구상대로 검찰법 개정을 통해 총장이 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면, 6월18일에 있었던 가와이 부부 의원 전격 체포는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굳이 무리하게 법 개정을 하면서까지 구로카와 고검장을 검사총장에 앉히려 했던 아베 총리의 진짜 속내는, 다름 아닌 모리토모 학원 의혹과 가케 학원 의혹 등 자신에 대한 온갖 의혹 사건과 혐의, 그리고 자민당 내 의원들의 금품수수 의혹 사건을 덮으려는 것이란 추측이 무성하다.

따라서 이번 가와이 의원 부부 체포는 일본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칼을 댄 것이 아니라 지지율 하락으로 서서히 고사되고 있는 아베 정권에 녹슨 칼을 들이민 형국이라는 조롱 섞인 지적도 나온다. 물론 이 같은 배경에는 검찰의 아베 정권에 대한 불만도 녹아 있는 분위기다. 구로카와 도쿄고검장의 정년을 법무성과 검찰청 등 관련 기관과 전혀 의논하지 않은 채 아베가 일방적으로 연장해 주자 검찰 분위기는 분노로 들끓었다고 한다.

 

‘아베의 정적’ 이시바에 눈길 돌리는 자민당

그렇다고 지금의 검찰에 대한 일본 국민의 기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시기적으로  늦긴 했으나 아베 정권을 향해 검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은 곧 아베 총리에게도 운신의 폭이 그만큼 좁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선 가와이 의원 부부가 현금봉투를 지자체 의원들에게 뿌릴 때, 아베 총리가 주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만약 이 같은 주장이 검찰 조사에서 사실로 확인되면 아베 총리도 검찰의 칼날을 피해 갈 수 없다. 언제 불시에 아베 총리를 포함해 2인자인 니카이 간사장에 대해서까지 자민당 선거자금의 흐름을 조사할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아베 총리와 니카이 간사장을 지지하는 자민당 계파는 그동안 경원시해 왔던 ‘정적’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청 장관을 차기 총리 후보군 1순위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적어도 이시바라면 이 같은 위기로부터 자민당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그를 차기 총리로 미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20일과 21일 이틀에 걸쳐 교도통신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아베 내각 지지율이 36.7%로 나타났다. 가와이 부부에 대한 책임 문제에 대해서도 74%의 국민이 ‘아베의 설명이나 해명이 부족하다’고 보았다. 같은 시기에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자민당에 대한 지지율은 36%에 그쳤다. 이뿐만 아니라 69%의 국민이 ‘아베 총리의 4선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한편, 관광 명소로 유명한 교토와 규슈, 홋카이도 등 각 지역에서는 아베 정부에 대한 분노를 연일 터트리고 있다. 지난해 7월1일, 일본 정부에 의한 반도체 부품 소재 규제로 극도로 악화된 한·일 관계 때문에 한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겨 생계형 상점들이 폐점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은 여전히 국민들의 안위는 도외시한 채 ‘전쟁준비법’이라고 일컫는 헌법 개정에 올인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럴수록 그의 레임덕 에는 더 빠르게 가속도가 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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