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군수와 익산국토관리청장의 ‘수상한 만남’
  • 호남취재본부 정성환·조현중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7.0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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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비전용 제재 앞두고 한정식 식당서 오찬 회동 논란
일각에선 ‘칼자루 쥔’ 기관장과의 부적절한 만남 지적

전남 진도군수와 익산지방국토관리청장의 만남을 놓고 때 아닌 논란이 일고 있다. 이동진 진도군수는 7월2일 오전 11시30분쯤 군청 간부들을 대동하고 전북 익산시에 있는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을 방문해 박성진 청장을 만났다. 국토교통부 산하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은 광주·전남북지역 SOC사업 등의 업무를 총괄하는 관리감독기관이다. 따라서 현안 사업 협의를 위해 일선 자치단체장이 익산관리청장을 만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양 기관 수장의 조우를 두고 ‘수상한 만남’이라는 뒷말을 낳는 이유가 뭘까.

익산지방국토관리청 ⓒ시사저널 조현중
익산지방국토관리청 전경 ⓒ시사저널 조현중

선배 李가 朴을 만난 배경 논란…제재 완화 부탁했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2017년 당시 진도군은 3차 도서종합개발사업비 40억여원 중 27여억원을 끌어다 조도면 가사도 주민 교통 편익을 위해 150톤 규모의 여객선(차도선)을 건조했다. 국토부가 급수선을 지으라고 국비를 내줬지만 임의로 사업계획을 변경해 여객선을 건조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훗날 이 사안은 진도군의 이의제기 등에도 불구하고 행자부-감사원-국토부-익산청-법제처에서 잇따라 국고보조금 불법 사용으로 판단됐다. (관련기사 시사저널 2018년 9월13일자 '[단독] 국가 예산 제멋대로…진도군 배 돌려막기 논란', 10월 2일자 '차도선 늪 빠진 진도군, 배 돌려막기 후폭풍에 진퇴양난' 보도 참조)

이에 따라 칼자루를 쥔 국토부(익산관리청)가 국가보조금 교부결정 취소를 하면 진도군은 급수선 예산 27억원을 반납하고, 최소 81억원의 제재부가금을 내야한다. 이는 재정자립도 13.8%에 자체수입이 250억원 정도인 진도군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경우의 수다. 반면에 국고보조금 반환 결정을 받으면 보조금 27억원과 이자만 돌려주면 된다. 현재 국토부는 감사원의 처분을 토대로 교부결정 취소를 할지, 아니면 보조금 반환 결정을 할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진도군으로선 보조금 반환 결정을 받아내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감수할 정도로 전방위적으로 사력을 다 할 수 밖에 없다. 지역 관가에서도 국토교통부의 제재부가금 규모나 시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 군수가 익산행에 나섰다. 그의 익산 행차가 도마 위에 오른 배경이다. 만남의 대상과 시점, 장소의 적절성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 우선 급수선 국비전용과 관련해 익산관리청의 제재부과가 임박한 시점에서 처분청의 핵심 인물을 만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 군수가 당장 자신에게 닥칠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학 후배인 박 청장에게 청탁을 하거나 정보를 얻기 위해 나선 것 아니냐는 험담이 나오고 있다. 

만난 장소도 문제로 지적됐다. 통상 전남지사 등 광역단체장이나 일선 기초단체장 등이 중앙부처 장관을 면담하는 경우 가급적 식사 시간을 피해 해당 집무실에서 1~2명의 관계공무원과 함께 현안을 설명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날 ‘만남’은 이색적이었다. 이 군수와 박 청장은 청사 안에서 불과 10여분간 면담을 한 뒤 곧장 4km 떨어진 익산 시내 한정식 식당으로 이동해 양 기관의 직원 10명과 함께 오찬을 했다.

이를 두고 공직자 윤리 지침까지 어겨가며 진도군의 현안 업무를 익산관리청 회의실이 아닌 한정식 식당에서 굳이 다뤄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따가운 지적이 나온다. ‘공무원 청렴유지 규정’은 불가피하게 식사를 하게 될 때는 각자가 비용을 부담해 구내식당에서 하도록 하고 있다. 이날 군수를 따라 온 진도군 간부는 5명이었다. 수행한 인원 수도 유별났지만 이들 중에는 ‘차도선 사단’으로 불리는 관광개발국장과 진도항만개발과장 등이 포함돼 눈길을 사로 잡았다.

더욱이 지난 5월 익산지방국토관리청장으로 취임한 박 청장이 공교롭게도 20여년 차이가 나지만 이 군수와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라는 점은 논란을 더 키웠다. 이런 관계 때문에 항간에서는 이 군수가 학맥으로 박 청장을 만나 제재 완화를 로비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돌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경우에 따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위반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이동진 진도군수와 직원들이 전북 익산시의 한 한정식 식당에 들어가고 있다 ⓒ독자 제보
7월 2일 정오께 이동진 전남 진도군수와 직원들이 전북 익산시의 한 한정식 식당에 들어가고 있다 ⓒ독자 제보

진도군·익산관리청 ‘펄쩍’…“사실무근, 현안사업 추진 활동” 

이에 대해 익산관리청과 진도군은 일제히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었다. 익산관리청은 진도군이 현안사업의 신속한 추진을 요청하기 위해 찾아온 것뿐이라고 반박했다. 박성진 청장은 6일 오후 퇴근시간에 청사를 빠져나가기 직전 1층 현관에서 시사저널 취재진과 만나 “이 군수 일행과는 주로 국도 18호선 선형개량사업과 스마트공원 등 진도군 현안사업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차도선 국비전용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 청장은 그러면서 “우리 익산청이 (차도선 국비전용 제재금 부과에 대해) 진도군을 도와 줄 여지는 없다”며 “제재 여부와 경중은 국토부 차원에서 원칙대로 진행될 것이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감사원-국토부(익산청)-법제처의 결론을 어기고 익산관리청이 진도군에 특혜를 줄 힘과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박 청장을 배웅하던 익산관리청 한 관계자는 “일선 지자체에서 현안 업무 협의차 우리 청을 방문하겠다고 하면 현실적으로 이를 거절할 수가 없다”면서 “이날은 특별히 기관장끼리 만남이라서 점심식사 자리로 이어졌다”고 부연했다. 

진도군도 통상적인 현안사업 추진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진도군의 한 관계자는 “전남권 일선 지자체들은 SOC사업 발주처인 익산관리청을 자주 방문한다. 그런데도 한쪽의 편향된 시각으로 봐서 여러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며 “이날 이 군수 일행은 국도 18호선 선향개량사업 등 지역 SOC사업을 포괄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찾아 갔다”고 선을 그었다. 

두 기관 모두 자리 마련에 정무적 의도가 없었다고 말하지만 상당수 지역 주민들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심지어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분위기다. 한 주민은 “이 군수가 다분히 조만간 닥칠 제재에 대한 행정적 대응 차원에서 박 청장을 만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대다수 군민들이 어떤 억하심정을 품고 진도군이 막대한 페널티를 받고 재정 파탄나기를 바라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며 “다만, 무소불위 단체장 전횡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수사기관에 고발해 직권남용 등을 따져 볼 필요는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동진(75) 군수는 민선 5기인 2010년부터 10년째 진도군정을 맡고 있는 3선 단체장이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한국토지공사와 한국토지신탁 사장, 전남개발공사 사장을 지내는 등 공직사회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하지만 지역정가에선 마지막 임기 반환점을 돈 이 군수가 차도선 문제로 45년 공직생활 끝물에 수세에 몰릴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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