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발렌시아만 벗어나면 펄펄 날 수 있을까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12 14:00
  • 호수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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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한 출장 못 해 U-20 이후 상승세 꺾여
스페인 언론 “재계약 제안 거부하고 팀 떠날 것”

한국시간으로 7월8일 새벽 열린 2019~20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35라운드.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데 메스타야에서 열린 경기에서 발렌시아의 이강인은 레알 바야돌리드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트렸다. 후반 18분 카를로스 솔레르를 대신해 투입된 이강인은 그라운드를 밟자마자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왼쪽 측면에서 정확한 크로스로 공격진의 헤딩슛을 이끌어내며 예열을 마친 그는 후반 43분 득점에 성공했다. 페널티 지역 오른쪽 부근에서 볼을 잡은 이강인은 중앙으로 치고 들어가 수비수 2명을 뚫는 강력한 왼발슛을 날렸다. 바야돌리드 골대 오른쪽 구석을 가른 골은 30라운드 이후 발렌시아가 모처럼 승리를 챙기는 결승골이 됐다.

득점한 후 환호하는 이강인의 표정과 동작에서는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느껴졌다. 발렌시아 동료들도 달려가 팀의 특급 유망주를 번쩍 들어올렸다. 지난해 9월25일 헤타페를 상대로 프리메라리가 데뷔골을 터트린 이후 9개월 12일 만의 득점포였다. 팀에도 천금 같은 골이었다. 발렌시아는 지난 6월30일 성적 부진을 이유로 알베르트 셀라데스 감독을 경질했다. 순위가 10위권까지 떨어지며 최소 목표인 유로파리그 출전권 획득도 어려워진 시점이었다. 보로 곤살레스 감독대행 체제로 전환하고 3경기 만에 거둔 승리인데, 이강인이 첫 승을 선사했다.

발렌시아 구단과 스페인 현지 언론은 이강인의 멋진 득점이 만든 극적인 승리를 주목했다. 구단 공식 홈페이지는 ‘발렌시아 유스 출신인 이강인이 중요한 승리를 이끌었다. 이번 승리로 유로파리그 티켓 획득 경쟁을 이어가게 됐다”고 전했다. 문도데포르티보, 풋볼에스파냐는 “교체 투입된 이강인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골로 발렌시아가 유럽대항전 희망을 재점화했다”고 보도했다. 8위로 뛰어오른 발렌시아는 유로파리그 출전권이 주어지는 6위에 승점 3점 차로 근접했다.

팀을 부진에서 구해 낸 결승골 한 방에 들뜬 분위기지만, 이강인 자신의 고민은 깊다. 작년 6월 폴란드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끈 이강인은 대회 최우수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볼을 거머쥐며 크게 주목받았다. 유망주를 넘어 성인 무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계의 선수로 가치가 급상승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14경기 출전에 그쳤다. 선발 출전은 단 두 차례뿐이다. U-20 월드컵에서 만든 상승세가 금방 꺾이고 말았다.

6월18일 발렌시아의 이강인이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호세 마리아 산체스 심판으로부터 레드카드를 받고 있다. ⓒREUTERS
6월18일 발렌시아의 이강인이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호세 마리아 산체스 심판으로부터 레드카드를 받고 있다. ⓒREUTERS

임대 이적 협상 접고 잔류했지만 지속적인 출전에 실패

사실 이강인은 U-20 월드컵이 끝난 뒤 스페인 내, 혹은 다른 국가의 클럽으로의 임대 이적을 적극 타진했다. 발렌시아의 스쿼드와 전술적 특성을 감안할 때 꾸준한 출전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발렌시아가 최종적으로 허락하지 않았다. 피터 림 구단주,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당시 감독, 마테우 알레마니 단장을 포함한 고위 관계자들이 모여 이강인의 거취를 논의한 끝에 나온 결론은 ‘구단이 육성한 선수 활용’이었다. 이강인은 최근 수년간 발렌시아 유스 시스템이 배출한 최고의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다. 거기다 싱가포르 출신의 재벌인 피터 림 구단주는 아시아 출신 스타인 이강인을 팀의 간판으로 키우길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한 출전 시간을 보장하겠다며 이강인을 달래 잔류시켰지만, 애당초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다. 마르셀리노 감독과 알레마니 단장은 개막 후 한 달도 안 돼 구단과의 갈등으로 동시에 물러났다. 셀라데스 감독은 어린 선수들을 더 활용해야 한다는 구단의 미션을 받고 새로 부임했지만, 성적이라는 현실 속에서 아웅다웅하다가 최근 경질됐다. 팀이 혼돈에 빠진 가운데 이강인도 경기 중 두 차례나 퇴장을 당하며 경기력이 흔들렸다.

10대 유망주에게 꾸준한 출전은 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이강인과 동갑내기인 일본의 구보 다케후사가 가장 대표적인 비교 대상이다. 백승호·이승우와 같은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이지만 FIFA의 유소년 이적 규정 위반 문제로 인해 일본에 돌아갔던 그는 만 18세가 된 작년 여름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으며 스페인으로 복귀했다. 구보와 5년 계약을 맺은 레알 마드리드는 선수 개인의 성장을 위해 곧바로 RCD 마요르카로 그를 임대 보냈다.

이 선택은 구보의 성장에 신의 한 수가 됐다. 올 시즌 마요르카에서 구보는 31경기를 뛰었고 그중 20경기를 선발로 나섰다. 3골 4도움을 올렸는데, 특히 후반기 들어서는 출전한 모든 경기를 선발로 뛰며 팀의 에이스 역할까지 맡았다. 총 2016분을 뛴 구보는 472분을 뛴 이강인보다 4배 이상 많은 시간을 실전에서 소화했다.

아직까지 선수로서 더 높은 가치를 평가받는 쪽은 이강인이다. 지난 3월 축구 전문매체 ‘골닷컴’이 전 세계 2001년 1월 이후 출생자를 대상으로 선정한 최고의 10대 유망주 50인에서 이강인은 7위, 구보는 9위에 올랐다. 문제는 이런 추세라면 구보는 실전을 통한 경기력 향상을 꾸준히 이뤄낼 수 있고, 이강인은 정체 상태로 향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최근 이강인도 배수의 진을 쳤다. 다음 시즌은 반드시 발렌시아가 아닌 다른 팀에서 출전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것. 스페인 현지 매체인 수페르데포르테는 지난 7월6일 “이강인은 발렌시아의 재계약 제안을 거부하고, 팀을 떠날 것이다. 그는 정기적으로 출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느낀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매체인 라디오 타론하도 “이강인은 임대 이적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완전 이적을 원한다는 루머도 있지만 현실성은 크지 않다. 시즌 도중 발렌시아와 이강인이 맺은 정식 프로 계약에 의하면 바이아웃 금액만 8000만 유로(약 1000억원)가 넘는다. 이강인을 원하는 구단이 발렌시아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한 10대 선수에게 엄청난 이적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다. 발렌시아로서는 바이아웃으로 자신들이 키운 유망주를 지킬 수 있는 보호장치를 마련했다.

이강인이 구보처럼 지속적인 출전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현실적인 타협안은 이번에도 결국 임대 이적이다. 그의 가치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여름에는 셀타 비고, 레반테, 오사수나(이상 스페인), 니스, 마르세유, 보르도(이상 프랑스), 아약스, PSV 에인트호번(이상 네덜란드), 유벤투스(이탈리아) 등이 관심을 보였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복수의 팀들이 이강인의 임대 영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임대 이적 성사에는 변수와 호재가 상충한다. 우선 발렌시아는 이강인의 임대를 허락하는 조건으로 2022년 6월까지인 기존 계약을 연장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에 이강인 측은 재계약을 맺고 임대를 떠나는 데 다소 미온적이다. 이 대립되는 입장을 풀어가는 게 1차 변수다. 반대로 코로나19 사태로 이적시장의 기한이 늘어났다는 점은 호재다. 일반적으로 8월31일이면 여름 이적시장이 문을 닫지만, 스페인은 코로나19로 인해 시즌이 길어진 점을 고려해 10월5일까지로 연장했다. 유럽의 다른 리그도 비슷한 움직임이다. 뛰고 싶은 이강인으로서는 최대 3개월의 기간 동안 발렌시아를 상대로 임대를 위한 설득과 단호한 어조의 입장을 이어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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