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라인 ‘정무형’ 쇄신…‘2018 평창 어게인’ 가능할까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13 08:00
  • 호수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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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집권 후반기 새 외교안보팀 출범에도 한반도 주변 환경 녹록지 않아

6월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된 이후 파국으로 치닫는 남북관계의 위기 상황 속에 문재인 대통령이 꺼내 든 승부수는 대북·안보 라인의 쇄신 카드다. 청와대 인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초읽기에 들어갔던 대남 군사행동 조치 등을 “보류하겠다”고 결정한 지 열흘 만인 지난 7월3일 나왔다. 서훈 국정원장을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전보하고, 이인영 민주당 의원을 통일부 장관 후보자,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을 국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정의용 전 안보실장과 임종석 전 비서실장은 외교안보특보로 기용했다.

교수 출신 전문가 그룹으로 분류되는 김연철 장관이 물러나고 이인영 의원이 지명된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정무형 포석이란 점이 드러난다. 추진력과 리더십에서 장점을 발휘할 수 있고, 문 대통령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직할 체제를 갖춘 건 막힌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뚫어보겠다는 의지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집권 후반기의 대북·안보 라인은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왼쪽부터)으로 구성됐다. ⓒ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문재인 정부 집권 후반기의 대북·안보 라인은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서훈 청와대 안보실장(왼쪽부터)으로 구성됐다. ⓒ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대선 전 북·미 정상회담 열릴 것 같지 않다”

이목을 가장 집중시킨 건 역시 박지원 전 의원을 국가 정보기관의 수장으로 뽑은 일이다. 한때 문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인사를 긴급 수혈한 건 그만큼 대북 라인 정상화가 절실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물밑작업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김정은 위원장과의 특사외교 등 교감을 도맡아온 정의용-서훈 투톱 라인은 지난해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제 역할을 못 했다. 김 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남매의 ‘불신임’으로 유효기간이 만료된 것이다.

문 대통령을 조롱·비방한 김여정의 ‘말 폭탄’ 대남 담화(6월 17일)와 정의용 대북 특사 파견 비밀 제안을 공개적으로 거부한 건 사실상 이들의 교체를 요구한 것이나 다름없다. 김정은의 ‘보류’ 조치 이면에는 청와대의 대북 달래기 메시지와 함께 향후 남북관계에 대한 청와대-노동당 본부청사 간 물밑 교감이 깔려 있을 공산이 크다.

절묘한 시점에 깜짝 카드로 나온 문 대통령의 박지원 기용은 다목적 포석일 수 있다. 첫째, 북한 핵심 지도부의 격앙된 분위기를 누그러트릴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의 산파역인 데다, 대북 송금으로 곤욕을 치른 인물이란 점에서 북한이 여전히 호감을 가질 수 있다.

둘째, 대북 밀사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문재인 정부의 공세적 대북 정책 추진에 사전 정지작업까지 가능한 인물이란 평이다. 대북 제재와 한·미 공조의 틀에서 벗어난 문재인 정부의 대북 행보에 비판 여론이 일 경우 특유의 정무적 감각과 네트워크로 다독거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셋째는 차기 대선과 관련한 역할까지 고려한 발탁일 수 있다는 점이다. 남북관계의 복원으로 문재인 정부의 득점 포인트를 끌어올리는 건 물론이고, 이를 정권 재창출로 연결시킬 수 있는 국정원장으로서의 매끄러운 일 처리를 고려했을 것이란 얘기다. 호남 지역 맹주로서 박지원 후보자가 가지는 위상도 국정원장으로 낙점받는 데 가산점이 됐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평양과 워싱턴의 서먹서먹한 관계가 좀체 복원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양측의 입장차가 큰 상황이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언제쯤 대화 테이블이 마련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2년을 채 남겨놓지 않은 임기 내에 북한 비핵화와 북·미 관계의 진전, 대북 제재 해제와 남북관계 복원이란 선순환 구도를 실행 단계로 접어들게 해야 하는 문재인 정부 새 대북·안보 라인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우리 정부는 지난 7월7~9일 이뤄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한을 북·미 대화 타진의 계기로 기대했다. 하지만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미국과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3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관심이 쏠렸다. 7월7일 언론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나는 그들(북한)이 만나고 싶어 하고 우리도 분명 그러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정상회담) 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성사까지는 멀고 험한 여정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11월 미 대선에서 재선을 위해 집중해야 하는 트럼프 입장에선 성공 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는 북·미 정상회담에 에너지를 분산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 비건 부장관은 지난 6월말 한 세미나에서 “11월 대선 전까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것 같지 않다”며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한 해를 뜨겁게 달궜던 ‘한반도 평화’의 환희를 되살리려는 듯하다. 불과 1년 전인 2017년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발사로 이어졌던 도발을 멈춘 북한은 평화 공세로 돌아섰다. 김정은 정권의 대남 위협과 무력시위를 견뎌낸 뒤 찾아온 남북 화해 분위기에 국민 여론은 열광했고, 북·미 대화 중재역까지 부각되면서 지지율은 치솟았다. 6월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라는 퇴행적 도발에도 따끔한 대응조치를 내놓지 않는 것도 ‘어게인 2018’을 기대하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남북 간 교류와 대북 투자·지원 실행 나설 듯

북한이 집요하게 요구해 온 대로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뛰어넘는 남북 간 교류와 대북 투자·지원을 실행에 옮기겠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창의적 해법’이란 말로 이를 암시했다. 하지만 2년 전의 한반도 화해 기류를 다시 만들기 위해선 말 그대로 달라진 환경에 맞는 새로운 로드맵과 접근 방식이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2년 전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접근과 북·미 대화 중재가 가능했던 건 대북특사로 다녀온 정의용 당시 안보실장이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고 전하면서다. 하지만 북한의 행동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고, 미국은 한국의 중재자 역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북한도 문재인 정부에 불만을 갖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정부가 북·미 모두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기 전에는 한반도의 봄날을 다시 맞이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대북·안보 라인의 교체로 분명 변화의 가능성은 커졌지만, 무작정 희망을 품기에는 지금 한반도와 주변 정세의 파고가 너무 거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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