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2008년 주식·부동산 쇼크 교훈에서 배워라
  •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9 14:00
  • 호수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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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동성 과잉 시대의 투자법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자산 규모가 2020년 7월 7조 달러에 이르렀다. 최근 세계 주요 중앙은행은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통화 공급 확대 정책을 펼치고 있다. 당장 연준은 2020년 7월초 자산 규모를 7조 달러까지 늘렸는데,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3%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연준의 자산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이유는 정책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내렸지만 경기 여건이 개선되지 않자 채권시장에 나가 직접 채권을 매입하는 이른바 ‘양적완화’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양적완화 과정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미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이하 국채) 가격이 100원에 거래되고 있을 때 연준이 101원에 ‘사자’ 주문을 내는 식으로 매수하는 것이다. 시장 시세보다 더 좋은 가격에 국채를 구입하는 이유는 ‘규모’ 때문이다. 몇천억원 단위가 아니라 수조원 단위로 매입하기에 다른 이보다 가격을 잘 쳐주지 않으면 거래가 원활하지 않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연준은 국채를 대거 보유하게 되며, 반대로 연준에 국채를 판 사람들에게는 현금이 유입된다.

사무실과 주거용 빌딩이 밀집한 일본 도쿄 전경 ⓒ연합뉴스
사무실과 주거용 빌딩이 밀집한 일본 도쿄 전경 ⓒ연합뉴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남긴 것

연준이 국채를 좋은 가격에 적극적으로 매입하니, 정부가 새로 발행하는 국채의 가격은 올라가고 반대로 금리는 내려간다. 예를 들어 한 달 전에는 100원에 1원의 이자를 주는 채권(1년 만기)을 발행했는데, 연준이 국채를 열심히 사주는 덕분에 이번에 새로 발행하는 채권이 동일한 이자를 주는데도 101원에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면 이자율은 0.99%로 내려갈 것이다. 물론 채권의 만기나 물가연동채권(TIPS·소비자물가의 상승분만큼 만기 때 받을 원금의 가치도 인상해 주는 채권) 여부에 따라 정확한 이자율은 바뀌겠지만, 연준이 채권을 좋은 가격에 사주면 금리가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연준 등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는 경제 전반의 금리를 떨어뜨리고, 금융기관에 어마어마한 현금을 주입하는 결과를 나타낸다.

금융기관의 보유 현금이 넘쳐 흐르고 국채 금리가 떨어질 때, 자산시장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의문을 푸는 데 2000년 이후 일본의 경험은 많은 도움을 준다. 일본은 2001~06년 세계 최초로 양적완화를 단행한 데 이어 2013년부터 2차 양적완화를 추진 중인 ‘과잉 유동성 시대’의 원조 격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그림’은 일본은행의 자산 추이를 보여주는데, 1차 양적완화는 약 40조 엔 정도였던 반면 2차 양적완화는 무려 650조 엔으로 규모 차이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두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 시기에서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강력한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흔히 ‘잃어버린 30년’이라는 표현으로 일본을 묘사하지만, 이는 전국 단위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묘사한 것일 뿐 도쿄를 비롯한 핵심 지역의 부동산 시장은 2000년대 중반 이미 상승세로 돌아선 바 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유동성의 흐름이 단계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일 것이다. 양적완화를 통해 돈을 풀면 이 돈은 제일 먼저 금융기관에 들어간다. 금융기관은 이를 공격적으로 운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워낙 오랜 기간 동안 불황으로 고통받았으니, 매우 신중하게 운용하고 또 대출해 주려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부동산 시장도 도쿄를 비롯한 핵심 지역 위주로 회복이 진행됐던 것이다.

주식도 마찬가지였다. 양적완화로 일본의 금리가 내려가고, 앞으로 엔화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되며 도요타나 소니, 캐논 등 수출 관련 기업으로 매수세가 집중됐다. 반면에 은행이나 전력·가스, 그리고 운송 등 이른바 내수 사업은 고전을 면하지 못했는데, 거의 유일한 예외는 건설업종 주식의 부활이었다. 이런 기현상이 벌어진 이유는 결국 ‘공급 부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나긴 침체에서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며 신축 주택을 중심으로 가격이 상승하는 가운데, 경쟁력을 보유한 건설업체의 주가가 강세를 보였던 것이다. 

핵심 자산에 집중하는 전략 필요

이런 일본의 사례를 한국 경제에 적용해 보면 다음의 두 가지 포인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2008년을 전후해 일본의 부동산 및 주식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6년 말 일본 정책 당국은 디플레이션 압력, 즉 지속적인 물가 하락의 위험이 완화되자 1차 양적완화를 중단했는데, 이게 치명적인 실책으로 작용했다. 곧이어 발생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수출이 급격히 감소한 데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전력 부족 사태까지 겹쳐 경제는 다시 심각한 디플레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즉, 정부가 디플레를 막기 위한 노력을 중단하고 또 적기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아무리 양적완화로 경제가 회복되었더라도 다시 무너질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항상 연준 등 선진국 중앙은행의 유동성 정책에 변화 징후가 보일 때는 투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교훈은 핵심 자산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디플레 압력이 높아지는 등 경기가 여전히 어려운 가운데 유동성의 힘으로 자산가격이 상승하는 시기에는 시세를 주도하는 자산의 독주가 이어지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에 일본 지방 부동산이나 내수 주식은 제대로 된 반등 한 번 경험하지 못할 정도의 소외가 집중되는 모습을 보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일본과 달리, 한국 경제는 수출 비중이 워낙 높기에 글로벌 여건이 개선되며 수출이 급증하는 경우에는 ‘주도주 집중’ 현상이 완화될 여지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2010년대 초반의 차·화·정 장세(자동차와 화학, 정유회사 주식이 시세를 주도하던 시기)가 될 텐데, 이때 수도권에 비해 남동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바 있다. 따라서 한국 수출이 정보통신·자동차 중심에서 벗어나, 다른 산업으로 확산되는지 여부도 꼼꼼하게 체크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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