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파의 귀환…이청용 이은 기성용, 다음은 구자철?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6 15:00
  • 호수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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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의 귀환, ‘기성용 효과’에 기대감 부푼 K리그
기성용, 구자철 SNS에 “빨리 K리그로 돌아오라” 댓글

결국 기성용이 FC서울 유니폼을 입었다. 지난 2월에 유럽 생활을 정리하고 K리그 복귀를 추진했지만 우선협상 대상인 친정팀 서울과 협상이 결렬되는 등 갈등을 겪은 지 5개월 만이다. 우여곡절 끝에 11년 만에 K리그로 돌아온 기성용을 둘러싼 분위기는 기대감이 압도적이다. 유망주들이 막 스타가 되려는 시점이면 해외로 나가 특급 스타가 부족한 최근 K리그 분위기를 환기시킬 대형 선수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기성용 자신도 ‘제2의 전성기’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나타냈다. 7월21일 계약하고 하루 뒤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입단 기자회견을 가진 기성용은 “K리그에 다시 서려고 그동안 많이 노력했는데, 드디어 오게 돼 행복하다”고 말한 뒤 “팬들에게 좋은 축구, 만족할 수 있는 플레이를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2019년 1월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한 뒤 선수로서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고백한 그는 “K리그로 돌아오며 팬들의 기대가 큰 만큼, 거기 미치지 못하면 비판도 받게 된다. 새로운 동기부여가 생긴 만큼 제2의 전성기를 확신하다”고 기성용다운 당당함을 보였다.

11년 만에 K리그에 복귀한 기성용이 7월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 입단 기자회견에서 유니폼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1년 만에 K리그에 복귀한 기성용이 7월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 입단 기자회견에서 유니폼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올 거였으면서… 5개월 허비한 기성용과 서울

올해 초에도 K리그 복귀를 타진했던 기성용은 우선협상 대상인 서울에 가장 먼저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자신을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 서울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크게 실망해 전북 입단으로 선회했으나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2009년 유럽 진출 당시 서울과 맺은 우선 복귀 의무 미행 시 발생하는 위약금 문제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결국 기성용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RCD마요르카와 단기 계약을 맺으며 다시 유럽으로 향해야 했다. 당시 출국 인터뷰에서 기성용은 강한 어조로 불만을 표시하고 K리그 복귀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영영 이뤄지지 않을 것 같던 기성용의 K리그 복귀는 5개월 뒤 전격적으로 성사됐다. 연봉은 올해 초 두 차례에 걸쳐 조정된 금액과 비슷한 팀 내 국내 선수 최고 수준(7억원 추정)이지만, 차이는 계약 기간이었다. 강명원 단장이 직접 나서 협상을 주도했고, 3년6개월이라는 30대 선수에게는 파격적인 장기 계약으로 기성용의 마음을 다시 잡으려고 노력했다. 서울이 자신을 진정으로 원하는 태도를 보이자 지난 2월 선수가 입은 상처도 어느 정도 지워졌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인해 스페인에서 고립돼 있는동안 기성용은 한국에 남겨둔 아내(배우 한혜진)와 딸에 대한 애틋함이 커졌다. 발목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 스페인 의료 시스템 마비로 치료가 지지부진해지며 K리그 복귀를 재고하게 된 기성용은 귀국 후 자가격리를 마친 7월9일 이후 서울과 다시 접촉했다. 두 차례의 만남과 조정 끝에 양자는 입단에 협의했다.

기성용은 입단식과 함께 진행된 기자회견에선 5개월 전의 앙금을 털어낸 모습이었다. 그는 “다들 아시겠지만 지난겨울엔 구단에 섭섭한 부분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의견 차이가 컸다. 그때 감정이 상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과정에서 아쉬운 게 있지만,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솔직한 얘기를 했다. 이어서는 “팬들도 많이 답답하셨을 텐데, 경기장에서 책임감을 갖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새로운 각오를 덧붙였다.

잉글랜드에 이어 스페인이라는 최고의 무대에 도전했지만, 코로나19로 제대로 뛰지 못하고 돌아온 기성용만 지난 5개월을 허비한 건 아니다. 서울 구단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K리그1 12라운드를 마친 시점에 서울은 3승1무8패, 승점 10점으로 리그 11위를 기록 중이다. 서울 아래에는 인천 유나이티드밖에 없다. 최하위 바로 위라는 뜻이다. 기성용 입단이 가시화되던7월18일에도 홈에서 포항에 1대3 역전패를 당했다. 리그 최다 실점(12경기 26실점)으로 수비가 붕괴됐고, 최용수 감독의 팀 장악력도 예전 같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홈 개막전이었던 2라운드에는 응원석에 설치한 응원용 마네킹이 성인용품인 리얼돌로 밝혀져 구단의 명성에 큰 흠집이 났다. 기성용 영입 불발과 이청용의 울산 입단으로 연이어 성난 팬심은 성적 부진과 경기 외적인 망신으로 폭발하며 온·오프라인에서 거대한 성토가 일고 있었다.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의 경기에서 울산 이청용(오른쪽)이 드리블하고 있다. ⓒ연합뉴스
울산 현대와 전북 현대의 경기에서 울산 이청용(오른쪽)이 드리블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 들어오는 K리그, 유럽파 복귀 효과로 노 젓는 분위기

이번 시즌 갖은 악재를 맞고 있는 서울로서는 기성용 영입이 터닝포인트가 되길 기대하는 모습이다. 여전히 유럽 무대에서 매력을 느끼는 기성용의 수준 높은 경기력은 하위권 탈출에 힘이 될 전망이다. 기성용은 “작년 4월 리버풀과의 경기가 마지막 풀타임이었다. 경기를 위한 체력과 감각을 되찾는 데 시간은 조금 필요할 것 같다”며 복귀 시점에 대해선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면서도 “부상은 심하지 않고, 지금은 필드에서 뛰는 훈련을 소화 중이다. 100%가 아니더라도 8월에는 경기장에 설 수 있을 것”이라며 최대한 빨리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K리그 전체 판을 봤을 때도 기성용의 복귀는 상당한 호재다. 일본·중국과 달리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월드스타를 데려오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든 K리그로서는 대표팀 주장이자 손흥민 이전 최고의 유럽파로 활약한 기성용에 대한 기대감이 크고, 이는 흥행의 청신호다. 서울뿐만 아니라 기성용을 적으로 마주할 상대팀 팬들도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중이다.

최근 K리그는 코로나19로 인한 무관중 경기임에도 여러 흥행 지표가 상승세를 보이는 중이다. ‘코로나의 역설’이라는 표현처럼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빠르게 리그를 진행하며 해외 39개국에 중계됐고, 국내 실시간 중계 접속자 수도 전년 대비 80% 가까이 상승했다. 프로축구연맹 차원에서 뉴미디어 플랫폼에 기반한 콘텐츠 생산에 적극 투자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K리그를 소비하는 주 연령대가 10대·20대의 MZ(밀레니엄 세대+Z세대)세대인 것을 파악하고 그들의 콘텐츠 소비 성향에 발맞춘 것이 코로나19라는 변수에도 온라인상의 흥행 물결을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용, 그리고 지난 2월 이미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은 이청용 같은 유럽파의 복귀는 물 들어오자 노 젓는 분위기가 되고 있다. 멀게는 차범근, 가깝게는 박지성·이영표처럼 유럽에서 대성공을 거둔 스타플레이어들은 K리그로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하지만 기성용과 이청용, 그리고 현재 카타르에서 뛰고 있는 구자철 등 유럽파 2세대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유럽 진출 후에도 A대표팀에서 활약하며 자신들의 뿌리인 K리그로 돌아와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자는 다짐을 수시로 해 왔다.

지난 2월 울산에 입단할 당시 이청용은 “최고의 경기력을 선사할 수 있는 나이에 돌아와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기성용 역시 “은퇴 직전에 K리그로 돌아오기보다는 전성기의 기량을 펼칠 수 있을 때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기성용은 서울 입단이 가시화되던 시점에 절친인 구자철의 SNS에 “빨리 K리그로 돌아오라”고 댓글을 남겼다. A대표팀의 차기 월드컵 준비를 돕기 위해 카타르에서 뛰고 있는 구자철도 최근 K리그로 꼭 돌아올 것이라고 다짐했다.

유럽파 복귀 효과는 이미 검증됐다. 울산은 우승 재도전을 위한 전력 보강의 마침표로 이청용을 택했다. 특유의 테크닉과 지능적인 플레이로 울산 축구를 더 빠르고 유연하게 만든 이청용은 팀을 현재 리그 선두로 올려놨다. 흥행 면에서도 이청용의 유니폼은 1차 주문이 매진됐고, 그를 앞세운 콘텐츠는 큰 호응을 불렀다. 기성용과 이청용, 이른바 ‘쌍용’은 이제 한 팀에서 뛰지 못하지만 그만큼 둘의 맞대결은 리그 내 어떤 라이벌전보다 화제를 모으게 됐다. 오는 8월30일 울산문수구장에서 열리는 울산과 서울의 경기는 벌써 ‘쌍용더비’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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