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새롭게 짜인 여름 극장 흥행판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7.30 11:00
  • 호수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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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관객 지갑 여는 건 결국 콘텐츠

코로나19 팬데믹이 영화시장에 안긴 충격은 엄청나다. 영화 촬영 중단이 속출했고, 각종 영화제의 오프라인 개최가 무산됐으며, 극장가는 얼어붙었다. 극장이 입은 타격은 특히 심각하다. 영화진흥위원회가 7월21일 공개한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상반기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3241만 명이다. 전년 대비 무려 70.3%(7690만 명)나 감소했다. 곡소리가 날 만하다. 극장가가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반사이익을 보면서 ‘극장은 이제 사양산업’이란 소리까지 나왔다. 과연 극장은 어디로 갈까.

영화 《반도》 ⓒNEW

NEW, 《반도》는 《부산행》을 싣고

이 와중에 찾아온 《반도》는 여러 의미에서 단비다. 지난 7월15일 개봉한 영화는 개봉 첫 주말(17~19일) 103만8327명을 동원했다. 주말 관객이 100만 명을 넘은 건 2월 셋째 주말 이후 약 5개월 만이다. 좀비 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부산행》의 속편이라는 기대감이 흥행에 호재로 작용했다. 수치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코로나19 시대라도 보고 싶은 작품 앞에서는 관객들이 지갑을 연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그동안 극장가가 침제된 데는 ‘관객의 이목을 끄는 콘텐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던바, 《반도》의 흥행으로 대기 중인 차기작들이 희망의 불씨를 조금이나마 키웠다.

총제작비 190억원이 투입된 《반도》의 손익분기점은 570만 명가량이다. 그러나 배급사 NEW는 《반도》의 손익분기점이 250만 명이라고 발표했다. 해외 선판매 수익과 VOD 예상수입을 더해 제시한 새로운 ‘셈법’이다. 이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묘하게 갈린다. 한국영화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높아졌고 부가판권 시장이 커진 만큼 이를 반영하는 게 옳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아직 발생하지 않은 예상수익까지 더해 제시하는 건 자신감을 세우기 위한 ‘꼼수’라는 의견도 있다. 어쨌든 전례의 힘은 강하다. 《반도》의 이러한 새로운 손익분기점 계산법을 따를 영화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떤 영화든 ‘흥행에 성공했다’는 타이틀은 중요한 법이니 말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CJ

CJ엔터테인먼트, 《영웅》→《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계획대로라면 《반도》와 올여름 시장에서 경쟁할 영화는 CJ엔터테인먼트의 《영웅》(감독 윤제균)과 메리크리스마스의 《승리호》(감독 조성희)였다. 롯데컬처웍스의 《모가디슈》(감독 류승완)도 여름 시장 출격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이 전례 없는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판이 완전히 새로 짜였다.

CJ는 지난 3월26일 안중근 의사의 서거일에 맞춰 뮤지컬 영화 《영웅》의 여름 개봉을 확정하고 포스터와 예고편을 공개했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담은 영화니만큼 8·15 광복절을 겨냥해 일찍 홍보·마케팅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당초 7월 예정이었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개봉을 8월로 옮기고, 《영웅》을 하반기로 연기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여름 공략에 대해 CJ가 발표한 공식적인 이유는 “여름방학, 영화에 대한 기대감, 시장 상황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한 판단”이라지만, 가족 단위 관객몰이를 노리는 《영웅》을 코로나19 한복판에서 공개하는 게 부담이었을 것이란 의견이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향한 관객의 기대감이 상당한 건 사실이다. 영화는 마지막 청부살인 미션 때문에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남(황정민)과 그를 쫓는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이정재)의 추격과 사투를 그린다. 이 영화 최고의 기대 요소는 《신세계》에서 호흡을 맞췄던 황정민-이정재의 재회다. 베일에 철저히 가려져 있지만, 박정민이 연기한 캐릭터의 매력이 엄청나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어쨌든 여름 시즌에 하드보일드 추격 액션영화를 만나는 건 오랜만의 일이다.

《강철비2》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롯데컬처웍스, 《모가디슈》→《강철비2》

롯데컬처웍스의 올여름 텐트폴 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로 꼽혀왔다. 1990년대 소말리아 내전으로 인해 고립돼 버린 남북 대사관 공관원들의 목숨을 건 탈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다. 류승완 감독이 이끄는 외유내강과 《신과함께》를 만든 덱스터 스튜디오 공동제작, 김윤석과 조인성의 만남, 모로코 로케이션, 총제작비 240억원 등 기대 요소로 큰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후반 작업 등의 이유로 개봉이 하반기로 미뤄지면서, 《강철비》의 속편 《강철비2: 정상회담》이 여름 시장을 담당하게 됐다.

《강철비2》로서는 코로나19가 여러모로 야속할 법하다. 당초 4월초 개봉 예정이었다가 바이러스 확산으로 추석으로 연기됐다가 《모가디슈》 개봉 연기로 갑작스럽게 여름 시장에 뛰어들게 됐으니 말이다. 이러한 아쉬움을 풀어줄 열쇠는 이제 관객들 몫으로 돌아갔다. 《강철비2》는 남·북·미 정상회담 도중 북한의 쿠데타로 3명의 정상이 북한 핵잠수함에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1편에서 북한군을 연기했던 정우성이 이번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신분을 갈아탔다. 2009년 《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 대통령을 연기한 장동건을 넘어서는 짜릿한 대통령 캐스팅이다. 북한 국가원수를 연기한 유연석의 변신도 관전 포인트다. 곽도원도 1편에 이어 이 영화에 힘을 싣는다.

 

《승리호》 빠지고, 《국제수사》 《오케이 마담》 합류

곽도원은 《국제수사》를 통해서도 관객을 만난다. 쇼박스가 배급하는 《국제수사》는 당초 4월 개봉을 목표로 주연배우들이 JTBC 예능 《아는 형님》에 출연하는 등 본격 홍보에 돌입했으나, 역시 코로나19 영향으로 개봉을 연기한 바 있다. 이번 여름 배급 시장에서 한 템포 쉬어가려 했던 쇼박스는 고심 끝에 《국제수사》를 8월에 내놓기로 했다. 영화는 난생처음 떠난 해외여행에서 글로벌 범죄에 휘말린 촌구석 형사의 현지 수사극을 그린다. 필리핀에서 영화 촬영의 80%가 진행됐으며 김대명과 김희원이 곽도원과 호흡을 맞췄다.

메가박스(주)플러스엠은 엄정화, 박성웅, 배정남이 뭉친 《오케이 마담》을 8월에 출격시킨다. 생애 첫 해외여행에서 난데없이 비행기 납치 사건에 휘말린 부부가 숨겨왔던 내공으로 구출 작전을 펼치는 액션 코미디다. 한국영화 최초의 비행기 하이재킹 영화로 《신세계》 《무뢰한》 《아수라》 등을 만든 사나이픽처스가 공동 제작사로 나서 무게감을 더했다. 제작비 규모에서는 경쟁작들에 비해 경량급이지만, 흥행은 모르는 법이다. 언제나 복병은 있었다.

유정훈 대표가 10년간 몸담았던 쇼박스를 나와 차린 신생 투자배급사 메리크리스마스의 여름 대전 참전은 《승리호》의 개봉 연기와 함께 미뤄졌다. 한국 최초 우주SF영화라는 점만으로도 일찍이 화제를 몰고 다닌 240억원 예산의 대작이다. 《늑대소년》의 조성희 감독과 송중기가 7년 만에 다시 의기투합했고 김태리, 진선규, 유해진이 합류해 기대감을 키웠다. 《승리호》의 흥행 결과에 따라 메리크리스마스의 집안 살림이 크게 달라지는 만큼,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사활을 걸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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