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불륜시의원’ 현장 김제시의회 앞 “미스 고, 미스 고~”
  • 호남본부 정성환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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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민심 현장’ 김제 가보니…어떻게 막장 끝판왕 됐나
정치판 ‘부부의 세계’ 결말…남녀 의원 제명으로 막 내려
민심 현주소 “니들 땜에 챙피해 못 살겠다, 의회 해산하라”

“미스 고, 미스 고 나는 너를 사랑했었다. 시인처럼 사랑하고 시인처럼 스쳐간 너. 계곡처럼 깊이 패인 그리움만 남긴 너. 미스 고, 미스 고 나는 나는 사랑의 삐에로~”

1980~1990년대 초반에 히트한 대중가요 ‘미스 고’ 가사 일부다. 당시 중년들의 18번이자 다수 국민에게 사랑받아 즐겨 불리던 곡이다.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고씨 성의 여자를 알고 지낸 남자가 무정하게 떠나 버린 연인에 대한 애절한 상심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김제시의회 표지석 ⓒ시사저널 정성환
김제시의회 표지석 ⓒ시사저널 정성환

불륜에서 원수된 남녀 시의원 풍자한 ‘미스 고’

장맛비가 하염없이 내리던 23일 오전. 이날은 정치판 ‘부부의 세계’의 주인공으로 떠들썩했던 김제시 두 의원 중 나머지 한명이 제명된 지 만 하루가 지난날이다. ‘불륜 민심’의 진원지 김제시의회를 찾았다. 시의회는 김제시청과 한 울타리에 있다. 시청 정문 입구에 들어서자 앞마당에선 김제지역 한 시민단체가 1톤 트럭에 설치한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미스 고’ ‘도로 남’ 노래가 반복해서 울려 퍼졌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시청사 안에서 직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광장에 울러 퍼진 애절하게 노래가 던지는 메시지를 알아 챈 일부 여직원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고 청사를 빠져나갔다. 어떤 직원은 느닷없는 트로트 노래에 어리둥절하는 동료의 옆구리를 찌르며 ‘그거여!”하며 팔소매를 잡아끌었다. 많은 직원들은 정색을 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미스 고’의 마지막 소절이 끝난 대목에서 ‘감사합니다!’가 흘러나오자 여기저기서 ‘키드키득’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 노래와 최근 여론의 뭇매를 맞은 김제시의회발(發) 불륜스캔들과 연관해서 즉석 해설도 나왔다. 노랫말 속의 시인처럼 사랑하고 떠나버린 ‘미스 고’는 시의회 고아무개(51) 의원이고, 못다 이룬 사랑에 상심한 이는 유아무개(53) 의원이라는 것이다. 한 민원인은 “뼈 때리는 선곡이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날 노래 집회는 시민단체가 작심하고 준비한 퍼포먼스로 시청 내방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시민단체는 이날부터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점심시간에 두 달간 노래를 튼다는 계획이다. 김제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하는 차원에서다. 

노래는 원곡 가수 이태호 대신 김제에서 농사지으며 시민운동을 하는 최종일(61)씨가 불렀다. 가사 일부도 개사해 자신의 집에 있는 노래방 기기로 녹음했다. 최씨가 이 노래를 선곡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최근 시의회에서 일어난 불륜스캔들에 대한 항의를 전달하는 방법이 노래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평소 자신이 즐겨 부르던 이 노래의 가사 내용이 마음에 쏙 들었다고 귀뜸했다. 180도 뒤틀면 딱 꼬집고 싶었던 시의회 행태가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는 것이다. 때마침 불륜설의 상대 여성 의원의 성씨가 고씨인 점도 노래 속 주인공과 딱 들어맞았다. 

 

불륜 고백 기자회견…도대체 무슨 일이?

지난 7월 1일 열린 전북 김제시의회 본회의에서 유 아무개 의원(좌측 원)이 불륜 스캔들 상대방인 고 아무개 의원(오른쪽 원)에게 다가가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독자 제공
지난 7월 1일 열린 전북 김제시의회 본회의에서 유 아무개 의원(좌측 원)이 불륜 스캔들 상대방인 고 아무개 의원(오른쪽 원)에게 다가가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독자 제공

현실은 역설적으로 노랫말과 괴리가 있다. 두 의원 사이에 지난 몇달 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두 의원의 불륜설은 지난해 말부터 나왔다. ‘시의회에서 주관한 해외연수를 다녀온 직후부터 불륜이 시작됐다’ 등의 소문이 무성했다. 하지만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쉬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불륜스캔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달 12일이었다. 유 의원이 이른바 ‘불륜 고백’ 기자회견을 하면서다. 유 의원은 이날 김제시청 기자실에서 “항간에 떠돌던 소문은 사실”이라며 “책임을 지기 위해 사퇴한다”며 불륜을 인정했다. 그는 “고 의원 측에서 나를 내연관계가 아닌 일방적인 스토커로 몰고 있어 억울해서 사실을 밝힌다”며 “고 의원으로부터 전화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당신을 사랑하겠다’라는 등의 구애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지난 1일에 언성을 높이며 다시 충돌했다. 장소는 김제시의회 의장단 선출을 위해 열린 본회의장이었다. 이날 유 의원은 고 의원에게 다가가 “내가 스토커야. 이야기해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고 의원은 “그럼 제가 꽃뱀입니까?”라고 받아쳤다. 이에 유 의원은 “꽃뱀 아니었어? 너 나한테 끝까지 전화해서 ‘의원하게 해주세요’(했지) 할 말 있으면 해. 너는 내가 전국적으로 매장시킬 거야. 너 나하고 간통 안 했냐?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느냐”고 몰아세웠다. 

고 의원은 “유 의원 때문에 자신의 남편이 다쳤다”며 “법적으로 고발하세요. 고발하면 되잖아요”라고 되받았다. 두 사람 사이 고성이 오가며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이날 임시의장을 맡은 김복남 의원은 의장단 선거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 폐회를 선포했다. 

 

“내가 꽃뱀?” vs “그럼 아니냐”…불륜의 결말

불륜 고백 기자회견 당시 유 의원은 민주당 탈당과 동시에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한동안 사퇴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민주당을 탈당했으니, (민주당과 나를) 연계시키지 마라”며 “오늘 당장 사퇴하는 게 아니고, 7월3일 정도에 사퇴하는 걸로 하겠다”고 했다. 사퇴를 미루는 이유에 대해선 “김제시의회 의장선거 때문”이라고만 답했다. 지역에선 “당장 사퇴해도 모자랄 판에 의장 선거에서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찍기 위해 직을 유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그러면서 지난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시의원들의 불륜으로 막장 드라마가 되어버린 김제시의회를 구해주세요”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김제시민의 일원으로 해당 의원이 더 이상 의회활동을 할 수 없게 신속한 제명을 촉구하고, 김제시의회 역시 불륜사실을 알면서도 지금껏 늦장 대응을 한 책임을 지고 김제 시민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해당 사건을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불륜설로 물의를 빚은 두 의원은 결국 의원직을 잃었다. 김제시의회는 22일 제241회 임시회 본회의를 열고 유 의원과 불륜 관계를 맺은 고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의결했다. 이날 김제시의회 전체 의원 13명 중 고 의원을 제외한 12명이 참석해 만장일치로 제명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지난 16일 유 의원에 대한 제명안이 의결됐다. 지난 1991년 지방의회가 부활한 이후 전북에서 지방의원이 제명된 사례는 고 의원과 유 의원이 유일하다. 

 

성난 민심, 김제시의회 해산 요구 움직임 

김제시의회 현관 출입구 ⓒ시사저널 정성환
김제시의회 현관 출입구 ⓒ시사저널 정성환

최씨가 이날 확성기를 통해 두 번째로 부른 노래는 ‘도로 남’이다.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돈이라는 글자에 받침 하나 바꾸면 돌이 되어버린 인생사.” ‘배신(背信)’이 횡행한 지역 정치판을 풍자하기 위해 이 곡을 선정했다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지난 17일 치러진 김제시의회 후반기 의장단 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달 고 의원에 대해 윤리특별위원회를 열고 당원 제명을 의결했다. 하지만 비례대표였던 고 의원은 당원직만 박탈되고 의원직은 그대로 유지됐다. 주변의 사퇴 요구에도 버티던 그는 지난 17일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의장단 선거까지 치렀다. 이날 의장선거는 당초 예상을 깨고 무소속 의원들과 민주당 소속 일부 의원들의 공조로 6:6으로 팽팽하게 맞선 상황이었다. 

하지만 문제의 고 의원이 제명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온주현 의장 편에 가세하면서 온 의원이 제적의원 13명 중 7표를 얻어 김복남 의원을 1표차로 따돌리고 연임에 성공했다는 게 의회 안팎의 대체적인 평이다. 일각에선 사실상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고 의원과 온 의장 측이 ‘징계 부결’이라는 카드를 놓고 모종의 거래가 오고 간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일었다. 그러나 고 의원은 닷새 뒤 열린 임시회에서 제명 의결됐다. 이 같은 고 의원의 처지를 빗대 ‘도로 남’이 됐다며 ‘화장실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르다’는 정치판을 풍자했다는 해석이다. 

한 50대 시민의 말이다. “지방행정을 견제·감시하라고 뽑아준 시의원들이 국민 혈세로 떠난 해외연수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각종 문제로 3∼4개월이나 의회를 비웠다. 윤리적 책임과 도리를 저버린 의원들이 어쩜 이렇게 뻔뻔할 수 있는지 할 말을 잃게 한다.”
 
이날 김제 시내 곳곳에는 “니들 땜에 챙피해서 못 살겠다! 시의회 해산하라” 등의 현수막이 내걸려 김제시의회에 대한 민심의 현주소가 엿보였다. 김제시의회 해산 요구 움직임도 감지된다. 김제시농민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오는 27일 김제시의원 전원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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