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불륜스캔들’ 후폭풍, 김제시의회 ‘막장 쇼’ 이어져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7.2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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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드라마 2편 돌입…의원직 전원 사퇴론 뒤에 숨겨진 ‘이전투구’
의장단 vs 비의장단 ‘전원 의원직 사퇴’ 놓고 기자회견 ‘공방’
“책임 통감, 즉각 총사퇴하자” vs “시정 마비, 무책임한 처사”

7월 28일 오전, 전북 김제시청 4층 브리핑룸은 붐볐다. 오전 9시30분부터 11시30분까지 두 시간 동안 40여분의 시차를 두고 세 개의 기자회견이 열렸기 때문이다. 김제시의회 주류와 비주류는 이날 시간대를 달리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날선 공방을 벌였다. 회견은 최근 후반기 김제시의회 의장을 두고 경합했던 인물인 민주당 측의 김복남 의원과 무소속 온주현 의장이 주도했다. 싸움의 소재는 ‘전원 의원직 사퇴론’이었다. 

 

의원직 사퇴 놓고 한날 ‘3개’의 기자회견

표면적으로만 보면 당장 의원 전원이 불륜스캔들 등 일련의 사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명분론과 의원직 즉각 사퇴에 따른 행정 마비 등 대안이 부재하다는 현실론이 첨예하게 맞붙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 이면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암투가 근본 원인으로 의심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의회의 내부 분란이 후반기 원 구성을 둘러싸고 민주당 소속 김 의원과 무소속 온 의장의 지도부가 벌인 충돌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김제시의회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김제시의회 전경 ⓒ시사저널 정성환

‘민주당 텃밭’인 전북에서 김제시의회 정치 지형만큼은 무소속 출신 의장단이 주류, 민주당 의원들이 비주류로 분류된다. 현재 김제시의원 수는 12명이다. 의장단을 점유한 주류와 비주류 간 각각 6명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지난 17일 치러진 ‘의장싸움’에서는 온주현 의원의 당선으로 무소속 의원들이 포진한 주류가 승리했다. 그 내막에 주류 측의 향응 접대와 담합 등 떳떳하지 못한 ‘거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온주현호(號)’가 의장단을 싹쓸이 하면서 여당인 민주당의 패배로 끝났다. 

이런 가운데 양쪽의 갈등은 김제의 대외 이미지와 신뢰도 추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앞서 김제시의회는 현실판 ‘부부의 세계’라는 평을 받는 막장 드라마를 선보여 전국적으로 망신당했다. 불륜 공개도 모자라 의회 본회의장에서 대놓고 충돌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욕보였던 김제시의원들. 그럼에도 지금은 진정한 반성없이 의원직 총사퇴라는 또 한 편의 ‘막장 쇼’를 무대 위에 올렸다는 냉소적 시각이 여전하다. 

 

‘총사퇴론’ vs ‘사퇴 불가론’ 충돌  

김제시의회 민주당 소속 의원들 기자회견 ⓒ시사저널 정성환
김제시의회 민주당 소속 의원들 기자회견 ⓒ시사저널 정성환

민주당 소속 김복남 김제시의원 등 6명은 이날 9시30분 기자회견을 열고 “현 사태를 책임지고 시의원 전원의 사퇴를 숙고하라”고 의장단에게 촉구했다. 이들은 “수개월 동안 남녀의원들의 불륜 사건으로 전국적인 망신을 자초했다”며 “김제시의회 때문에 김제 시민들이 전국적인 조롱의 대상이 됐다”고 전원 사퇴 요구의 이유를 설명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앞서 주장의 논지에서 벗어나 다소 생뚱(?)맞게 총구의 방향을 의장단 선거과정의 담합에 돌리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온주현 의장에게 “윤리특위에서 제명 의결된 불륜 의원과 사전에 밀실 회합해 투표에 참여하게 한 이유와 공개 거수투표로 만장일치 제명에 동의한 이유를 밝히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들은 “의장단 선거가 끝난 지난 17일 전주 혁신도시의 한 음식점에서 민주당의 김영자·정형철 의원과 불륜 문제로 제명당할 처지에 있는 의원, 그리고 무소속 의원들이 모여 야합해 만찬을 즐긴 이유도 밝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뒤이어 11시부터 기자회견을 연 무소속 온주현 의장 등 4명의 의장단은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총사퇴 요구’에 “의원직 사퇴는 없다”고 못 박았다. 대신 온 의장을 비롯한 주류 의원들은 시민에게 신뢰받는 김제시의회 구현을 위한 ‘제8대 김제시의회 하반기 의회 운영계획’을 밝혔다. 민주당 의원들의 사퇴 요구에 선을 긋고 오직 의회 정상화에만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의장단은 김 의원 등의 사퇴 요구 시기와 목적에 의문을 품는 모습을 보였다. 온 의장은 “불륜 사건이 터졌을 때 사퇴를 했어야 한다”며 “원구성이 끝나고 총사퇴 요구를 하는 것은 좀...”이라며 민주당 의원들의 숨겨진 ‘목적’을 의심했다.

김제시의회 의장단 기자회견 ⓒ시사저널 정성환
김제시의회 의장단 기자회견 ⓒ시사저널 정성환

‘가언(IF)’ 문법이 판친 기자회견 

이날 기자회견은 ‘만약 ~한다면’(If)이라는 가언 문법이 판을 쳤다. 우선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전원 사퇴의 강수를 두면서도 ‘의장단이 거부하면 사퇴하지 않겠다’는 단서를 붙였다. 김 의원 등은 “의장단이 사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공을 의장단에게 넘겼다. 반면에 무소속 신임 김제시의회 의장단은 실기했다며 지금 사퇴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이 같은 의장단의 입장이 번복되지 않는 한 민주당 의원들은 의원직을 재신임 받은 셈이 됐다. 이를 두고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원래 신임은 임명권자로부터 받는다. 이 논리에 의하면 민주당 의원들은 의장단을 임명권자로 본 모양이다”고 비꼬았다.

특히 이들 의원은 ‘주류 의원들이 사퇴를 안 해도 사퇴를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그들의 답을 하면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밝혀 시민들을 의식한 여론몰이를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원 구성을 원하는 대로 하지 못했기에 전원사퇴를 요구하냐”는 질문에 김 의원은 “원구성의 문제는 총사퇴 요구와는 별개”라고 답했다. 

이들의 회견을 종합해 일부에서 “사퇴 쇼”라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원 구성이 뜻대로 되지 않자 아예 판을 엎으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대놓고 총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진정 책임을 통감해서 의원직 사퇴를 결심했다면, ‘조건’을 달지 말고 책임감에 따라 각자 사퇴하면 된다는 아픈 지적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의장단 또한 많은 이유를 들어 사퇴 불가론을 피력했다. 온 의장은 “책임을 통감하고 전원 사퇴하고 싶다”면서도 “의원이 전원 사퇴하면 4월 보궐선거까지 모든 행정이 마비된다”고 사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 “감정적으로는 사퇴할 수 있으나 사퇴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했다. 보궐선거 실시 등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만만찮다는 점도 사퇴 불가 이유로 첨언했다. 

또한 앞선 기자회견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하지만 이번 의원들 간 불륜설로 인한 대내외적인 망신은 워낙 사안이 심각한 것이어서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그대로 지나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데는 의문이 남는다는 여론이 많다. 

온 의장은 이날 ‘진심으로 사과 말씀’ ‘책임통감’ 등의 말을 입에 올렸지만 한낱 수사(修辭)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는 약 30분 간의 회견 중 대부분의 시간은 의원들 간 불륜스캔들과 의장선거 담합의 책임을 회피하고 거리 두기에 할애했다. 온 의장은 “제가 부적절한 관계의 또 다른 당사자라는 소문은 악의적이고 근거 없는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며, “더 이상 혼란 속에 빠트리는 악의적 소문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시민·사회단체가 제시한 답안지 “양심껏 각자 사퇴하라”

김제지역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시사저널 정성환
김제지역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시사저널 정성환

양 계파 모두 진정성이 의심받으면서 호소력을 얻지 못했다. 충분히 목적과 조건 없이 정언(~하라)에 의거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양 측 모두 동기의 순수성이 의심스러운 궁색한 가언을 들먹이는 부조리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장단과 비의장단이 함량 미달의 답안지를 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김제 시민사회단체가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이런저런 토 달지 말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알면 각자 양심껏 ‘사퇴하라’는 것이 답안의 뼈대다. 사퇴하지 않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으로 판단하겠다며 ‘의원 판별식’까지 내놨다. 

이날 10시 30분부터 두 번째로 기자회견에 나선 김제농민회 등 김제지역 9개 시민·사회단체는 “책임을 느끼는 의원이 있다면 김제 시민께 진심으로 사죄하고 스스로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사퇴 요구에도 자리를 지키는 의원들이 있다면 불명예의 꼬리를 붙여 정치적 사망선고를 내림은 물론 농민단체와 연관된 행사 때에도 배제하는 등의 준엄한 심판을 내리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들 단체는 김제시의회가 이러한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각종 행사장에서 축사 거부와 외면 등 단체 행동을 예고했다. 

한 김제시민의 말이다. “김제시의회가 비겁하다. 주류이건, 비주류이건 마찬가지다. 논리도 없다. 도덕도 없다. 오로지 의장단을 지키고, 탈환하려고 하는 불순한 ‘목적’만 난무한다. 이것이 김제 정치판의 현주소다. 이제 이 쇼를 멈춰야 한다. 이번 도박이 통한다면, 향후 보다 더한 자극적 술수들이 난무할지도 모른다. 먹고 살기 바쁜 시민 개개인들이 더 이상 불필요하게 당혹해 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만일 연출자와 주역이 쇼를 멈출 생각이 없다면 무대 막이 내려지듯 관객이 멈추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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