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동시에 큰 숙제 남긴 류현진과 김광현
  • 송재우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06 14:00
  • 호수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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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개막전 선발-마무리 동시 출격한 두 투수의 극복 과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0 메이저리그 시즌이 지난 7월24일(현지시간) 우여곡절 끝에 개막했다. 원래 계획보다 4개월이나 늦게 시즌을 열면서 팀당 60경기만 치르는 축소된 규모로 열린다. 2019 시즌의 경우 팀당 162경기였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코리안 메이저리거는 모두 4명이다. 야수로는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와 최지만(탬파베이 레이스)이 있고, 투수로는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과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올 시즌 처음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김광현과 팀을 옮겨 에이스 역할에 나서는 류현진에게 눈길이 쏠리고 있다. 두 투수는 반갑게도 개막전 경기에 선발과 마무리로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두 투수는 올 시즌 활약이 기대되는 희망과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들을 동시에 보여주는 불안한 모습도 노출시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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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자로 잰 듯한 커맨드 능력 회복 요구돼

먼저 류현진은 7년을 함께했던 LA 다저스와 이별을 고하고 4년간 8000만 달러의 계약으로 토론토에서 미국 내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지난해 29경기에 등판해 14승5패 평균자책점 2.32라는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고, 그 보상으로 올스타전 내셔널리그 선발투수의 영예와 함께 리그 최고의 투수에게 주어지는 사이영상 투표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평균자책점은 전체 1위, 9이닝당 볼넷 허용 역시 1.2개로 1위였다. 현재 류현진의 팀 내 위상은 LA 때와는 다르다. 그는 토론토의 에이스다. 에이스답게 그는 팀 개막전의 선발투수로 나섰다. 이날 류현진은 4회까지 1실점으로 호투했지만, 승리투수 요건을 눈앞에 둔 5회 2사 후 급격히 흔들리며 2점을 추가 실점한 채 교체돼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류현진은 31일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두번째 선발경기에서도 제구력 난조를 보이며 4.1이닝동안 5실점하고 강판당해 불안한 모습을 이어갔다. 하지만 경험이 많은 류현진은 세 번째 경기만에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8월6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5이닝 무실점 역투를 펼치며 토론토 이적후 첫 승리를 거뒀다. 역시 자로 잰 듯한 류현진의 제구 능력이 살아난 투구 내용이었다. 

류현진이 지난해와 같은 성공가도를 이어 가기 위해 필요한 절대 조건은 두 가지로 함축될 수 있다. 바로 커맨드(자신이 던지고자 하는 곳에 공을 던질 수 있는 능력)와 체력이다. 굳이 컨트롤이란 표현보다 커맨드란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단순히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능력을 판단하는 컨트롤보다 볼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던질 수 있는 커맨드란 단어가 그에게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예전 어깨 부상 이후 막 복귀했을 때 커맨드의 예리함이 무뎌진 느낌이 있었지만, 부상 후유증이 사라진 2018년부터는 부상 전보다 오히려 더 날카로워진 커맨드를 과시했고 이는 바로 호성적으로 이어졌다.

작년에 9이닝당 볼넷 허용 1.2개, 삼진/볼넷 비율 6.79 대 1로 리그 최고 수준이었다.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보다 4km가량 떨어지는 스피드에도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한 데는 최정상급 커맨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번 개막전 아쉬움에는 흔들리는 커맨드가 문제였다. 강판될 때까지 무려 볼넷 3개와 몸 맞은 공 1개를 내주는 그답지 못한 피칭을 한 이유가 컸다. 결국 류현진의 성공 절대 조건 첫 순위는 면도날 제구력이다.

그리고 제구력에 반드시 필요한 체력 유지가 요구된다. 지난해에는 메이저리그 데뷔 후 두 번째로 많은 29경기에 등판했다. 소화한 이닝 역시 182.2이닝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 게다가 올스타전 선발투수라는 영광도 누렸지만, 반면 귀한 휴식 시간을 놓쳤다. 결국 이런 체력적 부담은 8월 평균자책점 7.48의 부진으로 이어졌지만 마지막 9월엔 2.13으로 반등하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했다. 올해 본인의 의도와는 관계가 없지만 시즌 개막이 4개월이나 늦어진 것은 이런 의미에서 류현진의 지친 어깨와 체력 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지난해 기록 중 하나가 등판 패턴이다. 29번의 등판 중 4일 휴식 5일째 등판은 단 7번에 불과했다. 반면에 5일 휴식 6일째 등판은 그 두배인 14번에 달한다. 나머지 8번은 6일 이상 휴식을 취하고 등판한 것이다. 올 시즌 토론토도 최대한 류현진이 5일 정도 휴식을 취하고 등판하는 것을 기본으로 할 전망이다. 하지만 만약 토론토가 예상외로 선전해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생기면 시즌 후반 에이스에게 쏠리는 부담을 피할 수 없다. 올 시즌 10번에서 12번 정도 등판이 예상되는 류현진이 올 시즌 막판까지 체력을 잘 유지해야 하는 이유다.

 

김광현, 팀 사정에 따른 불펜 보직에도 적응해야

김광현은 당초 예상과는 다르게 개막을 며칠 앞두고 마무리 투수로 낙점되는, 신인으로선 다소 부담스러운 보직으로 출발했다. 그 역시 7월25일(한국시간) 개막전 세이브 상황에 등판하며 데뷔전에서 천신만고 끝에 첫 세이브를 거두긴 했지만, 2실점이나 하는 등 신고식을 톡톡히 치렀다. 기존의 마무리 투수 조단 힉스가 올 시즌 옵트 아웃을 택했고, 마무리 후보로 거론되던 앤드루 밀러의 구위 저하, 조바니 가에고의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늦은 합류로 준비가 잘된 김광현이 마무리 투수로 낙점된 것이다.

김광현은 소속팀인 세인트루이스의 팀 내 사정에 따른 보직 변경에 대한 빠른 적응이 급선무다. KBO리그에서 13년간 뛰면서 298경기 중 불펜 등판은 단 22경기에 그쳤고 정규 시즌 세이브는 아예 ‘제로’다. 한국시리즈에서 2번의 세이브가 고작이다. 정기적 등판과 준비가 가능한 선발투수와 거의 매일 불펜에서 대기하는 마무리의 간격은 천지 차이다. 마이크 쉴트 세인트루이스 감독은 오랜 선발 경험에도 빠르게 몸이 풀리는 김광현이 마무리 투수 중책을 잘 소화할 것으로 기대했고, 선발전에 마무리를 맡겼다.

하지만 이틀 혹은 사흘 연투를 밥 먹듯 해야 하는 불펜 투수는 사정이 다르다. 게다가 팀 상황상 며칠씩 등판을 못 하는 경우도 있어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다는 어려움도 있다. 주로 9회 한 이닝을 맡기지만, 등판 대다수가 3점차 이내의 팀 승리를 굳혀야 한다는 부담감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첫 세이브 이후 인터뷰에서 밝혔듯 낯선 보직에 대한 긴장감으로 고전했다고 말했다. 

빠른 볼과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하지만 국내 시절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커브·체인지업 등 구종의 다양화를 꾀했던 김광현이다. 하지만 짧은 이닝을 던지는 불펜 투수는 자신의 최고 구종에만 집중하게 된다. 실제로 첫 세이브를 거둔 25일 경기에서 19개의 공을 던졌는데 커브와 체인지업은 각각 1개에 그쳤다.

빠른 공과 슬라이더 이외의 구종에도 나름 자신감이 있는 김광현은 어떤 투구 패턴을 취할지 결정해야 한다. 일단 자신이 어떤 볼배합을 하든 확신을 가지고 최고의 포수로 일컬어지는 파트너 야디에르 몰리나와 코칭스태프 등과 협의를 거쳐 자신만의 패턴을 만들어야 한다. 한마디로 자신만의 생존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보지 않았던 길이기에 투구 패턴 확립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다행히 쉴트 감독은 8월6일 김광현을 다시 선발투수로 보직 변경한다고 밝혔다. 선발진이었던 마르티네스가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당초 마무리로 낙점됐던 김광현이 다시 선발투수로 나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작일 뿐이다. 김광현은 더 이상 SK 와이번스 시절의 에이스 투수가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팀내 사정에 따라 보직이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다. 팀 내에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선발이든, 불펜이든 어떤 임무가 주어져도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생소한 보직인 불펜에 대한 빠른 적응력이 필요하다.

전인미답의 시즌이 막을 올렸다. 그래서 이를 준비하는 과정과 실제 시즌을 어떻게 마주할지 답을 줄 사람은 없다. 결국 답은 자신이 빠르게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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