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에 또 하나의 숙제 남기고 떠난 고유민
  • 기영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07 16:00
  • 호수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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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 한 것 알려지면서 악성 댓글 ‘뭇매’…‘스포츠 댓글 금지’ 움직임

유난히 미녀 선수가 많은 배구계에서도 특히 ‘3대 미녀 선수’로 불렸던 고유민씨가 지난 8월1일 자택(경기도 광주 오포시)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스포츠계에 또 한 번의 충격을 안겼다. 고씨는 프로배구단 현대건설에서 2013년부터 2019~20시즌까지 7년 동안 백업 레프트 겸 리베로로 활약했다. 그러나 올해 3월초 돌연 팀을 떠났고, 이후 한국배구연맹(KOVO)은 고씨의 임의탈퇴를 공시했다.

고씨 사망 이후 그가 남긴 일기장과 팀 동료 선수들의 증언 그리고 배구계 얘기들을 종합해 보면, 성형수술을 한 것이 팬들에게 알려져 네티즌들은 그가 경기 도중 조금만 실수를 해도 거의 성희롱에 가까운 댓글을 달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팀 내에서도 자신의 주 포지션인 레프트에서 백업으로 밀려난 데다, 팀 사정상 한때 리베로 역할까지 해야 하는 등 팀 내 위상과 포지션에 대한 고민이 심했다고 한다.

ⓒ일러스트 정찬동
ⓒ일러스트 정찬동

남현희와 박정아도 과거 악성 댓글에 시달려

배구계는 9년 전에도 이용택 선수를 잃은 바 있다. 2007년 삼성화재에 입단한 그는 군팀인 상무에서 두 번이나 어깨수술을 받을 정도로 부상이 심해 선수생활 지속 여부가 불투명했고, 이를 비관한 나머지 휴가를 나와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스포츠맨들은 무명선수부터 스타플레이어들까지 팀 내 포지션(주전) 다툼, 다른 팀과의 경쟁 그리고 국가대표 발탁 여부와 성적 등 많은 고민에 휩싸여 있다. 다만 강한 멘털로 극복해 나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멘털이 무너질 경우 일반인보다 더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더구나 여자 선수들은 성적(性的) 문제와 함께 외모에 대한 평가에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남자 선수들보다 훨씬 더 복잡한 심리적 갈등을 겪어야 한다.

국내 스포츠에서 성형 파문을 최초로 일으킨 선수는 여자 펜싱의 전설 남현희씨였다. 남씨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여자펜싱 플뢰레 개인전에서 은메달을 획득했고, 2019년 은퇴할 때까지 국제대회에서만 99개의 메달을 따내며 펜싱 강국을 이끈 주인공이다. 지난 3월24일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는 남씨의 라이프 스토리를 집중 조명한 바 있다. 26년 동안의 선수생활을 끝내고, 평범한 주부로 돌아온 남씨는 선수 시절 성형수술 파문 때의 아픔에 대해 심경을 밝혔다.

남씨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출전을 앞두고 쌍꺼풀 수술을 한 것 때문에 대한펜싱협회로부터 2년간 선수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에 대해 남씨는 “내가 펜싱계 전체를 망신 주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들어 운동을 그만두고 싶었고, 죽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그 또한 한때 극단적 선택의 상황까지 몰렸던 것이다. 당시 펜싱협회는 남씨에 대한 징계가 너무 과하다고 판단해 징계기간을 2년에서 6개월로 감해 주었다. 아픔을 딛고 남씨는 2006년 12월 도하아시안게임 펜싱 여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여자배구는 세계적 스타인 김연경이 절정의 기량을 발휘하던 때여서, 한국 여자배구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동메달에 이어 꼭 40년 만에 메달을 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다. 그러나 한국은 네덜란드의 돌풍에 휘말려 8강전에서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의외의 복병 네덜란드에 패하자, 당시 네티즌들이 그 경기에서 유난히 실수가 많았던 박정아를 분풀이 대상으로 삼아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 박정아가 경기 중 상대편의 서브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는 실수를 몇 차례 범하면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당시 네티즌들은 “박정아 등 한국 선수들의 실책이 패배를 자초했다”며 경기가 끝난 직후 박정아의 인스타그램에 각종 비판 댓글을 올렸다. 박정아는 비판 댓글이 끊이지 않자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비공개로 전환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축구의 전설 펠레가 “축구(구기종목)는 스타가 아니라 팀이 하는 것이다”고 한 말을 굳이 되새기지 않더라도, 구기종목은 팀이 하나가 돼 경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 선수 때문에 이기고 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구기종목의 속성을 잘 모르는 데서 오는 편견의 오류다.

실제 박정아는 정통파 공격수로 한국 배구 여건상 소속팀에선 수비훈련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대표 팀에서는 수비도 해 줘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세터 출신의 김연경과 가끔 비교되기도 했다. 리우올림픽 이후 박정아는 공격을 더욱 예리하게 가다듬고, 수비도 보강해 국내 최고의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박정아는 올 시즌을 앞두고 도로공사와 연봉 5억8000만원(옵션 1억5000만원 포함)씩 3년간 최대 17억4000만원의 팀 내 최고 대우를 받고 계약했다.

2016년 2월1일 여자프로배구 인삼공사와 현대건설의 경기에서 현대건설 고유민이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2016년 2월1일 여자프로배구 인삼공사와 현대건설의 경기에서 현대건설 고유민이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심리치료사 동원해 선수들 멘털 관리하기도

스포츠에서 멘털은 피지컬과 함께 매우 중요하다. 스포츠맨들은 경기를 하는 도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훈련을 하거나 휴식을 취할 때도 마찬가지로 강한 멘털이 요구된다. 앞서 소개한 남현희·박정아 선수의 경우, 어려움을 극복하고 우뚝 서기까지 강한 멘털이 필요했다. 메이저리그나 유럽 축구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유명 스타플레이어들은 개인 심리치료사까지 둘 정도다. 국내 스포츠계도 일부 프로팀에서는 정신과 의사나 스포츠 심리치료사를 팀 내에 두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왜 고유민씨가 별다른 부상이 없었음에도 선수로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인 ‘임의탈퇴’에 이르게 되었는지, 누군가 그의 심리상태를 알려고 하고, 또한 그에 따른 조치를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선수들의 강한 의지와 함께 앞으로는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도 형법 기타 법률의 제한을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상에서는 스포츠맨과 연예인들이 특히 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어 그들에게 대중의 명예훼손과 모욕행위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네티즌 입장에서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지 모르지만, 그 행위로 인한 당사자의 고통은 엄청난 탓에 자칫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겸 대한탁구협회장은 8월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씨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스포츠 뉴스 댓글 금지법 발의’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들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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