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 액션 매력이 맞붙는다 《다만 악》 vs 《오케이 마담》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08 16:00
  • 호수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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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극장가 흥행 바통 이어받은 두 영화

각 투자배급사의 여름 텐트폴(주력) 영화들이 개봉하면서 극장가에 모처럼 활기가 돈다. 지난 7월15일 개봉한 《반도》가 350만 관객을 동원하며 순항 중이고, 같은 달 29일 개봉한 《강철비2: 정상회담》 역시 개봉 5일째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7월 극장가는 누적 관객 512만 명을 기록,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지난 2월 관객 수 대비 70%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지난해 동시기 2190만 명을 기록했던 것에 비해 턱없이 작은 수치지만, 좌석 띄어앉기 등 극장 방역 상황을 고려할 때 기대 이상의 반등이다. 8월에도 두 편이 남아 있다. 액션이라는 공통분모를 두고 전혀 다른 스타일을 선보이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와 《오케이 마담》이 흥행 바통을 이어받는다. 각각 하드보일드, 가족 코미디를 표방하는 두 영화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만큼이나 타깃 관객층도 다르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피도 눈물도 없는 지옥의 액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개봉을 하루 앞둔 8월4일 예매율 43.3%를 기록했다. 하드보일드 액션이 사전 예매 1위를 차지한 것은 2010년 8월 개봉한 《아저씨》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괄목할 만한 수치다. 2014년 개봉한 스릴러 《오피스》를 연출하고, 《추격자》(2008)와 《황해》(2010)의 각색을 담당했던 홍원찬 감독의 신작이다.

서사는 단순하다. 두 남자가 서로를 집요하게 쫓고 쫓기는 추적을 벌이는 내용이다. 청부살인자로 살아온 인남(황정민)이 자신과 관계된 납치 사건을 추적하기 위해 태국으로 향하면서 본격적인 영화의 문이 열린다. 자신의 형이 인남에게 암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레이(이정재) 역시 복수의 칼을 갈며 인남을 쫓아 태국으로 향한다. 2013년 초 개봉해 신드롬에 가까운 관객 반응을 낳은 누아르 《신세계》 이후 다시 만난 황정민, 이정재의 캐스팅 조합이 액션 팬들의 기대감을 일단 끌어올린다. 한때 이 영화는 《신세계》의 후속편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에 휩싸이기도 했으나, 두 영화는 전혀 별개다.

이야기의 곁가지를 필요 이상으로 벌리지 않은 것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미덕이다. 펄떡이는 복수심과 죄책감만이 인물들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인남과 레이에게는 각자의 구원이 필요하다. 인남은 자신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지켜야 하고, 레이는 ‘인간 백정’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집요한 복수를 통해 목표의 완성을 이뤄야 한다. 추격이라는 뼈대 안에서 서스펜스를 만드는 건 레이다. 그는 복수라는 명분 하나만 지녔다. 예측이 도무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무시무시한 인물이다. 작품의 변별점이자, 지극히 영화적인 캐릭터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이들의 피비린내 나는 추격전. 이것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렇게까지 무자비한 추격을 이어가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레이는 “이제 그 이유도 잊어버렸다”고 답한다. 서사는 간결하게, 액션의 스타일은 처절하고 강렬하게 직선으로 달려 나간다. 하드보일드 액션의 한계로 지목되곤 하는 희생당하는 여성 캐릭터와 구출을 기다리는 어린아이라는 구도에서 벗어난 작품은 아니다.

다만 각 캐릭터들의 등장과 퇴장에 명확한 서사와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단순히 소비되는 캐릭터로 활용됐다고 보긴 어렵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까지 그 정체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 있었던 인남의 조력자 유이(박정민)의 캐릭터도 작품의 히든카드이자 색다른 시도로 기능한다.

새로움은 과감한 스타일에서 나온다. 홍원찬 감독의 영화이기도, 배우들의 영화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홍경표 촬영감독의 영화이기도 하다. 타격감에 집중한 고속 촬영이 잡아낸 생생한 현장감, 극악무도한 폭력 안에서도 뜨거운 감정이 이글거리는 인물들의 눈빛을 집요하게 쫓는 카메라는 매 쇼트 감탄을 부른다. 그 결과 극장을 나오면서 가장 강렬하게 남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인물들의 눈이다. 일본과 태국을 오가며 담아낸 이국적 풍광 역시 기존 한국영화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액션의 동선을 가능하게 했다.

영화 《오케이 마담》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오케이 마담》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귀여운 매력, 아기자기한 코미디

8월12일 개봉하는 《오케이 마담》의 무기는 코미디다. 영화는 비행기 납치, 즉 ‘하이재킹(Hijacking)’ 상황에서 벌어지는 액션과 아기자기한 유머 사이에서 유려한 줄타기를 해낸다. 북한을 탈출한 공작원 ‘목련화’와 리철승(이상윤)의 과거 사연에서 출발한 영화는, 몇 년 뒤 경품 당첨으로 하와이 여행을 떠나게 된 소시민 부부 미영(엄정화)과 석환(박성웅)의 모습으로 이어진다. 꽈배기 장사로 억척스럽게 살아온 미영 가족이 난생처음 해외여행에 들뜬 사이, 그들이 탑승한 비행기는 목련화를 추격하는 리철승의 작전 수행 덕에 테러의 현장으로 변모한다. 동시에 미영과 석환 부부가 서로에게 숨기고 있었던 진실과 의외의 내공이 드러난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니만큼 액션도, 캐릭터도 아이디어로 똘똘 뭉쳐 있다. 인물들의 정체를 쉽게 파악할 수 없도록 의심의 복선을 깔고 이후 반전을 거듭하는 구조가 의외의 매력 포인트. 화려한 스타일을 추구하기보다 ‘기내 테러’라는 상황에 맞게 설계된 현실적 액션을 모자람 없이 선사한다. 능청스러운 코미디의 히로인부터 액션 히어로의 면모까지 오가는 엄정화의 분투 역시 영화의 호감도를 빠르게 끌어올린다. 어떤 상황 앞에서도 힘차게 ‘오케이’를 외치는 미영 가족의 긍정이 힘든 시국에 묘한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보다 더 빛나는 건 캐릭터 코미디로서의 매력이다. 눈치 제로의 사랑꾼 남편 석환, 의욕만 넘쳐 실수 연발이지만 끝까지 제 몫을 다하는 초보 승무원 현민(배정남), 미스터리한 승객(이선빈), 위기 상황에서도 직업 정신이 빛나는 사무장(김혜은), 깜짝 카메오(김남길)까지 적재적소에서 캐릭터의 매력을 뽐내고 또 어우러진다. 미영과 석환 부부의 천연덕스러운 딸 나리(정수빈)는 예상치 못한 웃음 복병. 원정 출산을 계획하며 하와이로 향하는 부잣집 고부, 비밀열애 중인 영화감독과 배우, 안하무인인 국회의원까지 탑승한 비행기 내부에서 벌어지는 소동은 볼수록 귀여운 맛이 있다. 기분 좋은 웃음, 착한 코미디. 가족 코미디를 표방하는 《오케이 마담》의 지향점이다.

 

변신의 귀재, 엄정화의 코미디 타율

《오케이 마담》은 여름 텐트폴 영화 중 유일하게 여성 캐릭터가 전면에 나선 작품이다. 엄정화의 힘이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해운대》(2009)를 비롯 누적 관객 ‘3000만 배우’인 그는 유독 코미디 장르에서 타율이 높은 배우다. 능청스러움과 사랑스러운 매력을 오가는 그의 유연함은 대체불가다. 2000년대 초반 로맨틱 코미디 《싱글즈》(2003)와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으로 ‘흥행 퀸’의 자리를 유지했던 비결이다. 필모그래피에서 스릴러와 휴먼 드라마를 오가는 사이, 왕년의 ‘신촌 마돈나’ 정화 역으로 돌아온 《댄싱 퀸》(2012)으로 녹슬지 않은 코미디 감각을 증명하기도 했다. 급작스러운 사고 이후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 변호사 연우를 연기한 《미쓰 와이프》(2015) 또한 배우 엄정화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가족 코미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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