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이전 후엔 수도권 규제는 풀어야 할까 [최준영의 경제 바로 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2 10:00
  • 호수 160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수도권 정책에 대한 합의와 논의 지금부터 해야

세종시로의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방향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20대 국회부터 일부 상임위원회와 지원기관을 포함한 국회 분원 형태의 이전 방안이 논의됐는데, 21대 국회에선 아예 본회의장을 포함한 국회 전체의 이전과 청와대 제2집무실 설치를 포함해 좀 더 확대된 범위로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 세종시는 계획할 때부터 이런 목적으로 활용할 구역을 별도로 지정해 놓고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어 많은 시간이 걸리는 입지 선정과 토지 매입 등의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회를 포함한 주요 기관 이전은 그 어느 때보다 가시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회와 청와대를 포함한 주요 기관이 세종시로 이전한다면 2012년부터 진행된 일부 중앙행정기관의 이전 효과보다 훨씬 더 큰 효과가 창출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단순히 직접 이전하는 기관의 종사자 규모로 판단할 수 없는 파급력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무조건 서울과 수도권으로 향하던 흐름 일부가 이젠 세종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변화될 수 있다. 무엇보다 서울이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기던 독점적 정치·행정의 권한이 축소된다는 것은 국민의 공간 인식을 바꿔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 여부에 관심이 쏠려 있다 보니 정작 그 이후 서울과 수도권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행정수도 이전 논의에서 빠진 쟁점

그런데 행정수도 이전 여부에 관심이 쏠려 있다 보니 정작 해당 기관들이 이전한 이후 서울과 수도권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선 제대로 된 논의나 검토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주요 기관의 이전이 서울과 수도권에 40년 넘게 가해졌던 각종 규제나 제약을 해소하는 것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기관 이전 이후에도 계속 제한을 둬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향후 지역 간 갈등의 핵심이 될 수 있다. 

수도권이라는 개념이 처음 구체화된 것은 1963년이다. 당시 국토건설 사업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건설부는 도시의 합리적이고 적정한 성장과 배치를 위해 전국을 몇 개의 도시권으로 나누는 광역도시계획 수립에 나섰다. 당시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계획을 살펴보면 공간적 범위가 지금과 달랐다. 현재는 행정구역에 따라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를 수도권으로 분류하지만 1963년의 수도권 개념은 한강수계와 생활권에 따라 서울과 더불어 인천, 의정부, 춘천, 원주, 이천, 수원을 연결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수도권 계획의 핵심은 서울에 과다하게 집중된 공업시설을 수도권 내 다른 곳으로 배치하고, 서울-인천 축선에 집중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서울-춘천 간의 공업화, 주거지역의 주변 도시로의 분산 등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수도권의 개념은 이후 행정적 규제의 대상 범위로 유지되다 1983년 수도권정비계획법이 제정되면서 법률적으로 구체화됐다. 서울·인천·경기 전 지역을 과밀억제권역, 성장관리권역, 자연보전권역의 세 부류로 나누고, 공장·학교 및 대형 업무시설 등 인구 집중 유발 시설의 설치를 제한한 수도권 규제는 40년 동안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으나 기본 방향은 계속 유지됐다. 계속되는 규제에도 수도권으로의 집중은 이어져 인구의 50.18%가 거주하는 곳이 됐으며 경제력 및 사회·문화·예술 등 제조업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세종시로의 이전이 가시화할 경우 수도권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원칙적으로 보면 수도권으로의 집중은 이 지역이 ‘수도’이기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존 규제는 계속 이뤄지는 것이 타당하다. 특정 지역으로의 집중을 억제하는 것은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하며, 그 지역이 수도권이었기 때문에 수도권 규제가 된 것이지, 수도가 있는 지역이라서 규제가 가해진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수도권에 대한 규제는 지속되는 것이 타당하다.

반면에 수도권이 별도의 특별 규제를 계속 받아야 하는 것엔 논리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다. 수도권 성장에 서울과 수도권에만 존재하던 각종 행정기관과 공공기관이 큰 역할을 했는데 대다수의 기관이 수도권을 떠나 그 전제가 사라졌다는 논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행정·경제 등 모든 면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던 곳에서 경제적 중심지 역할만 수행하는 것으로 바뀌었음에도 계속 규제를 가한다는 것은 특정 지역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볼 수 있다. 

행정수도 이전은 참여정부 당시에도 추진됐지만 강한 반발에 부닥쳐 완성되지 못하고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뉴스뱅크 

수도권과 지역 간 갈등 심해질 수도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로서의 기능이 분리된 수도권은 향후 지금과 달리 지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이촌향도 현상이 60년 동안 지속되면서 이제 수도권에 거주하는 인구 상당수는 수도권을 고향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지방과의 연계의식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수도권에서 창출된 경제력을 지역에 분배하는 방식에 대한 거부감과 반발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국회의 의석 배분 역시 오랫동안 수도권과 도시에 비해 지방이 과잉 대표되면서 예산 배분의 결정에 있어 지방이 유리한 측면이 있었지만 선거구별 최소·최대 유권자 수 비율을 1 대 2로 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점차 수도권의 인구에 걸맞은 정치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고령화에 따른 지방 소멸 추세를 감안하면 정치·행정 권한이 분리된 수도권이 오히려 더 큰 정치력을 확보하게 되는 변화가 발생할 수도 있다. 양원제 등 지역 간 정치력의 균형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수도 이전 후 수도권과 기타 지역 간 갈등은 첨예화될 가능성이 높다. 

수도권 집중과 불균형 발전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지방의 상대적 위축과 정보통신기술 및 서비스업으로의 경제구조 전환과 맞물리면서 더 확대되고 있다. 최근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한국판 뉴딜의 양대 축인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 역시 지방보다는 대도시, 특히 수도권의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수도 이전과 관계없이 수도권의 경제적 비중과 역할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정치적으로 독자적 세력화를 추진하며, 막강한 경제력을 갖춘 수도권은 자신이 기여한 만큼의 몫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인구구조 및 인구분포 등을 고려하면 2026~28년이 되면 이런 목소리는 현실적인 세력으로 대두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수도권 정책에 대한 합의와 논의는 지금부터 이뤄져야 한다. 

세종시로의 이전은 길게는 60년, 짧게는 20년 동안 추진되어 온 균형발전을 완성하는 상징적인 조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상징과 현실은 일치하기보다는 모순된 관계일 때가 많다. ‘수도’라는 번거로운 명예를 던져버린 수도권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도록 할 것인지를 고려하지 않고 수도 이전에만 집중한다면 향후 더 큰 갈등이 초래될 것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