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책보기] 명불허전(名不虛傳), 조선 삼대 구라의 ‘찐구라’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thebex@hanmail.net)
  • 승인 2020.08.1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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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ㅣ황석영 장편소설ㅣ창비 펴냄ㅣ620쪽ㅣ2만원

‘구라’는 거짓말의 속된 표현이지만 ‘구수하게 펼치는 이야기’를 뜻하기도 한다. 후자의 뜻에서 방대하고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하는 ‘조선 삼대 구라’로 알려진 사람 셋이 있다. 통일운동가 백기완, 풍운아 방배추(방동규), 소설가 황석영이 그들이다.

셋의 공통점은 일제시대에 태어나 식민지 역사와 근·현대사를 거쳐온,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그 만큼 콘텐츠가 풍부한 사람들이란 점이다. 백기완, 황석영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겠으나, 방배추는 《배추가 돌아왔다》(다산책방)를 읽으면 그가 누구인지 자세히 알 수 있다. 시대의 협객이었던 그는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주먹이었다고 한다. 이 세 사람의 입담이 얼마나 대단한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 유홍준 박사, 동양철학자 도올 김용옥 교수 정도는 이들에 비하면 ‘EBS 교육방송’ 쯤 된다고 한다.

소설가 황석영의 작품은 굵직굵직한 분수령으로 필자의 삶에 관여해 왔다. 청년 때 《장길산》과 《무기의 그늘》을 읽으며 민중의식에 눈을 떴고,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알게 됐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1989년 북한을 방문한 후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펴냈을 때는 시대와 민족의 아픔을 고뇌하는 작가 황석영에게 경의를 갖게 됐다. 북한 방문으로 인해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5년의 옥고를 치러야 했다.

황석영의 신작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는 그가 북한 방문 때 만났던 어느 노인의 이야기가 모티브가 됐다. 서울 영등포 출신인 노인은 철도학교를 졸업한 후 전국노동조합평의회(전평) 소속 철도 기관수로 일하다 해방 후 미군정의 압박을 피해 아들을 데리고 월북했던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그 즈음 만주 출신의 어린 황석영은 부모를 따라 평양에서 월남해 영등포에 정착했으니 노인과 겹치는 시공간의 교집합으로 인해 작가는 노인의 파란만장했던 인생 이야기를 경청할 기회를 얻었다.

《철도원 삼대》는 1910년 즈음부터 2015년까지 근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100여 년에 걸친 노동(자)의 역사가 담겼다. 196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이자 금속노조원 이진오, 해방 후 산업화 시대 철도 노동자를 지냈던 그의 아버지 이지산과 어머니 윤복례, 일제시대 전평 소속 철도기관수를 하다 월북했던 할아버지 이일철과 방직공장 노동자이자 활동가였던 할머니 신금이의 일생을 다룸으로써 노동의 역사에서 상대적으로 조명이 부족했던 근대 노동자들의 역사를 들추어 냈다. 이 역사는 예상대로 굴곡진 역사인데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일제시대부터 산업화를 거친 현대까지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곧 ‘빨갱이’로 낙인 찍혀 핍박 받는 일관성을 가졌다.

소설은 이진오가 ‘분할매각저지 고용노동보장하라! 노조승계 전원복직!’ 프래카드를 내걸고 서울의 발전소 공장 45미터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가는 것에서 시작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노동의 역사를 거쳐 2015년 8·15 광복 70주년을 맞아 410일(1년 45일)간 벌였던 농성을 끝내고 내려와 지방의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 그러나 다시 투쟁을 위해 굴뚝에 오르기로 다짐하는 데서 끝난다. 지방의 공장은 평택의 자동차 공장일 수도 있고, 군산의 조선소일 수도 있고, 전국 어디의 공장일 수도 있다.

평소 그 비좁은 고공의 굴뚝 위나 크레인 위에서 어떻게 1년 넘도록 농성을 지속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면 배설물 처리하는 법부터 화초 기르고, 운동하는 법까지 자세한 방법론에 궁금증이 모두 풀린다. 삼대에 걸친 근·현대 노동자들의 투쟁과 일상을 합집합으로 다룬 《철도원 삼대》에는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 고공 크레인 장기 농성자 김진숙의 《소금꽃나무》,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 박완서의 옛 서울살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안경환의 《조영래 평전》 등이 부분집합으로 들어있다.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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