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오취리가 쏘아올린 '블랙페이스' 논란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5 12:00
  • 호수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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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달리 한국 영향력 상승…차별 표현에 대한 문제의식 키워야

최근 샘 오취리가 의정부고등학교의 졸업사진을 비난했다가 역풍을 맞고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샘 오취리가 사과까지 하도록 비난한 한국 누리꾼들의 행동이 정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또 일어났다. “학교에서 인종 차별에 대한 교육을 해 달라”는 국민청원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문제가 된 졸업사진은 ‘관짝소년단’ 패러디였다. 아프리카 가나의 일부 지역엔 고인을 행복하게 보내주려는 마음으로 장례를 축제처럼 치르는 풍습이 있다. 그래서 ‘댄싱 폴 베어러스’라는 장례 행사팀이 등장했다. 이들은 상여꾼 역할을 하는데, 관을 멘 상태에서 집단 안무를 소화하며 이동한다. 그 모습이 이채로워 2017년 BBC 다큐멘터리 이후 인터넷에서 널리 알려졌고, 마침내 비의 ‘깡’처럼 인터넷 유행, 즉 ‘밈’이 됐다. 인도, 페루, 레바논 등 지구촌 곳곳에서 패러디가 등장했다. 우리 누리꾼들은 이들이 관을 메고 아이돌처럼 칼군무를 춘다고 해서 관과 방탄소년단을 합성한 관짝소년단이란 이름을 붙였다.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은 해마다 화제의 인물들을 선정해 똑같이 분장하고 졸업사진을 찍는다. 최근에 이 학생들이 찍은 관짝소년단 패러디 졸업사진이 알려졌다. 의상과 관을 똑같이 재현했는데 얼굴색까지 재현한 것이 문제였다. 이에 대해 샘 오취리가 “저희 흑인들 입장에서 매우 불쾌한 행동입니다. 제발 하지 마세요. 문화를 따라 하는 건 알겠는데 굳이 얼굴 색칠까지 해야 돼요?”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논란에 불이 붙었다.

샘 오취리의 의정부고등학교 ‘블랙페이스’ 비판을 두고 다양한 논란이 일어났다. ⓒ의정부고등학교 학생자치위원회 페이스북 캡처
샘 오취리의 의정부고등학교 ‘블랙페이스’ 비판을 두고 다양한 논란이 일어났다. ⓒ의정부고등학교 학생자치위원회 페이스북 캡처

샘 오취리의 지적과 반박

샘 오취리가 지적한 건 ‘블랙페이스’다. 블랙페이스는 미국에서 백인 배우가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 역할을 맡는 걸 뜻한다. 뮤지컬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19세기 미국의 촌극 《민스트럴 쇼(Minstrel Show)》에서 벌어진 일이다. 주로 과장된 분장으로 흑인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며 조롱했다. 이것이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을 거치면서 가장 대표적인 흑인 차별 행위로 규정돼 금기시됐다. 샘 오취리가 지적한 맥락이다.

하지만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은 이런 맥락을 이해하고 흑인을 조롱하려는 의도로 분장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원래 대상이 누가 됐든 똑같이 분장해 왔다. 이번에 관짝소년단 패러디를 준비하면서 만약 흑인이라는 이유로 분장을 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차별처럼 비칠까봐 평소처럼 분장했다고 한다.

샘 오취리는 이렇게 악의 없이 분장한 것에 대해 차별이라고 비난했는데, 일부 누리꾼은 샘 오취리 자신은 그런 적이 없었느냐고 물었다.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서 샘 오취리가 눈을 찢는 동작을 한 적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눈 찢는 동작은 대표적인 아시아인 비하 행위다. 비하의 뜻이 없고 단지 예능에서 웃기려고 한 것일지라도 샘 오취리가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을 비난한 대로라면 샘 오취리의 행위도 문제가 된다.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도 단지 웃자고 한 것이었다. 이러니 샘 오취리의 입지가 옹색해졌다.

더 큰 문제는 샘 오취리가 이 문제제기를 영어로도 했다는 점이다. 한국인에게 경종을 울릴 의도라면 한국어로만 해도 됐을 텐데 굳이 영어로도 올려 한국을 인종 차별 국가로 알려지게 만들었다. 심지어 K팝 관련 해시태그를 달아 한류 혐한 세력에게 이용될 빌미까지 제공했다. 그리고 사과는 한국어로만 해서, 해외에 부정적으로 알려진 것을 바로잡지 않았다. 이래서 사과 이후까지 비난이 쏟아졌다.

블랙페이스 비판은 우리에겐 억울한 부분이 있다. 미국에서 생긴 일인데 미국은 노예제를 운영했고,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참혹한 흑인 차별의 역사가 있다. 그런 맥락 속에서 백인 배우들이 흑인을 조롱하는 악극을 했고, 그것이 백인들에게 사랑받은 데서 블랙페이스 문제가 터져 나왔다. 우리나라엔 이런 역사가 전혀 없다. 제국 열강이 유색인종을 착취할 당시에 우리는 식민지 착취를 당했다. 황인종은 세계에서 가장 차별을 많이 받는 인종 중 하나다. 이런 우리에게 미국 백인들에게 적용하는 것과 같은 기준을 들이대며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렇지만 흑인들이 블랙페이스에 상처를 받고, 국제적으로 이것이 흑인 차별의 기호로 통용된다면 우리도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과 같은 참혹한 역사는 없지만 우리에게도 흑인 차별 분위기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샘 오취리가 더 예민해졌을 수도 있다. 2017년에 개그우먼 홍현희가 흑인 분장을 한 것에 대해 샘 해밍턴과 샘 오취리가 비판했던 적이 있다. “2017년의 흑인 분장. 이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개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샘 오취리는 이렇게 주장했는데 2020년에도 여전히 유사한 일이 벌어지자 격분했을 가능성이 있다.

샘 오취리를 향한 비판에는 차별 표현이 포함된 공격이 많았다. ⓒ연합뉴스

우리가 돌아봐야 할 부분

이런 식의 차별적 표현 논란은 주로 약소국이 강대국에 제기한다. 그래서 주로 미국의 백인들이 표적이 된다.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무슨 표현을 하건 과거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한국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나라가 되어 간다. 마치 할리우드 콘텐츠처럼 한국 콘텐츠가 국제적으로 팔려 나간다. 한국의 위상이 올라갈수록 국제적인 시선을 더 많이 신경 써야 한다.

이젠 국제적인 차별 코드 정도는 학교에서 교육해야 한다. “학교에서 인종 차별에 대한 교육을 해 달라”는 국민청원은 이래서 의미가 있다. 많은 누리꾼이 “얼굴에 검은 칠을 하는 게 인종 차별 코드인 줄 몰랐다. 모르고 악의 없이 했는데 왜 문제인가?”라고 반론했는데, 한국의 위상이 올라갈수록 모르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이다. “있는 그대로 묘사했는데 왜 문제인가”라는 반론도 있었는데, 이 역시 너무 단순한 생각이다.

의정부고등학교 학생들은 인종 차별을 한 것이 아니었지만 샘 오취리 논란이 터진 후에 나온 반응 중엔 차별적인 공격이 많았다. 샘 오취리가 사과한 후에도 차별적인 공격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은 차별을 많이 해서 차별 표현에 대한 금기가 발달했는데, 우린 차별당한 역사가 깊다 보니 우리 스스로의 차별 표현에 대한 문제의식이 발달하지 않았다. 천민자본주의, 황금만능주의, 뿌리 깊은 서열주의와 결부돼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 대한 차별 의식이 점점 더 심화돼 온 측면도 있다. 국력은 커졌지만 그런 사회의식은 퇴보했다. 이런 부분을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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