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구례는 지금 ‘망연자실’
  • 정성환·전용찬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0.08.1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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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범람 큰 피해…“밀려오는 흙탕물에 몸만 피해”
물 폭격 맞은 구례…5일시장 상인들은 물벼락, 시장은 폐허
구슬땀 복구 인력난…자고나면 피해액도 ‘눈덩이’로 증가

“정신이 없다. 살아생전 이렇게 큰 난리는 처음이다.”

8월11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 읍내는 폭탄을 맞은 듯 처참한 모습이었다. 구례는 지난 8일 오전 10시50분쯤 5일 시장 인근 섬진강 제방이 50m 가량 무너지면서 읍내 전체가 물에 잠겼다. 구례에는 지난 7일과 8일 이틀 동안 500㎜가 넘는 집중호우가 내렸다. 처음 운동화가 젖을 정도 높이의 물이 어느새 어른 허리까지 올라왔다. 물은 점점 불어나더니 표지판과 전신주는 윗부분만 겨우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구례읍 시가지가 물속에 파묻혀 버렸다. 주민 김아무개(58)씨는 “점심을 먹고 있는데, 영화 해운대의 한 장면처럼 흙탕물이 밀려와 불과 한 시간만에 시가지를 집어삼켰다”며 “구례 역사상 처음 겪은 일이다고 혀를 내둘렀다. 

‘지붕까지 잠긴 구례읍’ 8월 8일 오후 전남 구례군 구례읍 도심이 섬진강 강물 범람으로 침수돼 있다. ⓒ 연합뉴스
‘지붕까지 잠긴 구례읍’ 8월 8일 오후 전남 구례군 구례읍 도심이 섬진강 강물 범람으로 침수돼 있다. ⓒ 연합뉴스

물 빠진 삶의 터전은 ‘쓰레기 산’에 아수라장

이날 오전 11시께 구례읍 5일 시장. 시장은 입구부터 폐허를 방불케 했다.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건물 1층 높이까지 물이 찼던 이곳은 거의 물이 빠졌다. 하지만, 5일 시장은 주변 주유소와 숙박시설 등에서 기름까지 유출되면서 기름 냄새와 악취가 진동했다. 시장 안에는 못쓰게 된 가재도구와 집기류가 ‘작은 산’을 이뤄 아수라장이 됐다. 이곳이 장터였는지 의심케 할 정도였다. 대신 침수 피해로 사실상 모든 물건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어서 상가 내부는 텅텅 비어 있다.

예상보다 피해가 컸던지 대부분 상인은 망연자실했다. 5일시장 이을재 상인회장은 막 마친 문재인 대통령과 국무회의 화상통화에서 “살려달라고 했다”며 손을 자신의 머리 위 입간판으로 뻗으며 침수 높이를 설명했다. 이 회장은 “섬진강댐 방류와 주암댐 방류가 만조와 겹치면서 섬진강 지류인 읍내를 지나는 서시천이 범람하게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침수돼 상품성을 잃은 참깨 포대를 나르던 김 아무개(62·남)씨는 “자연재해는 뉴스에서만 보던 남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직접 이런 일은 겪으니 정신이 없다”고 밝혔다. 아들, 친척들과 함께 가게를 정리하던 양곡상회 주인은 “쌀, 콩 등 곡물이 물에 잠겨 다 못쓰게 됐다”며 “아이고, 차마 피해를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쓰레기 산’ 이룬 구례읍 5일 시장. ⓒ시사저널 정성환
‘쓰레기 산’ 이룬 구례읍 5일 시장. ⓒ시사저널 정성환

상인들 “아이고” 한숨 소리만…농경지도 쑥대밭

식당을 하던 이 아무개(62)씨는 “가게를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데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과일을 판매하던 김 아무개씨는 “물건을 다 버려야 할 것 같은데 참담한 심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시장 입구에 있는 주유소 저장탱크에 물이 들어가 전문업체에서 나와 조기 복구에 안간힘을 썼다. 침수된 차량을 견인하는 모습도 여러 곳에서 보였다.

주민들과 상인들은 하루빨리 수해의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집과 상점의 가재도구와 상품을 모두 빼냈지만, 수도마저 끊기면서 씻을 길이 없었다. 현재까지 공급률은 약 80% 수준인데 물줄기가 약하고 일부 가게들은 여전히 물이 나오지 않고 있다. 할 수 없이 상인들은 침수된 지하에서 양동이로 퍼낸 물로 씻어 내거나, 경운기를 친척에게 빌려와 물을 퍼내며 기름 물로 집기를 씻어 냈다. 

수해 현장에는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민원실 필수 요원을 제외한 곡성군청 소속 공무원 전원과 경찰, 소방관, 군인, 자원봉사자 등 2000여명이 피해지역 복구작업 총력전을 벌였다. 전남도청 직원 500여명을 비롯해 인근 여수·광양시 공무원들도 찾아와 원상복구에 구슬땀을 흘렸다. 이들은 덤프·펌프·살수차 등 장비 수십 대를 동원해 피해지역 곳곳에서 상품·집기 등을 정리·세척했다. 소방차는 연신 길바닥에 물을 뿌리며 흙탕물을 씻어내기에 바빴다. 하지만 여전히 인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구례의 농경지와 비닐하우스도 쑥대밭이 됐다. 서시천 제방이 붕괴한 현장 바로 옆 논밭에는 밀려든 강물에 원래 모습을 가늠하기도 어렵게 변한 비닐하우스는 뼈대만 어지럽게 얽혀 있었다. 물에 휩쓸린 컨테이너가 비닐하우스에 올라가 있기도 했다. 서시천 제방은 끊긴 채 복구는 손을 못 대고 있었고, 제방 붕괴와 함께 유실된 도로변 복구 작업만 겨우 진행되고 있었다. 구례읍으로 이어지는 일부 국도는 아직도 물이 빠지지 않아 곳곳이 통제 중이었고 주유소와 LPG 가스충전소도 침수로 영업을 중단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쑥대밭이 된 양정마을 농경지 ⓒ시사저널 정성환
폐허가 된 농경지 ⓒ시사저널 정성환

축산농가 밀집 양정마을, 폭격 맞은 전쟁터 

이어 찾은 구례읍 봉서리 양정마을 침수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특히 저지대인 이 마을의 피해가 컸다. 5일 시장에서 300m 직선 거리에 있는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매케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길 양쪽에 늘어선 비닐하우스는 기름을 뒤집어썼다. 농가에 설치한 유류저장탱크가 침수돼 기름이 유출되면서 빚어진 일이라고 한 주민이 설명했다. 
 
마을 안으로 깊이 들어가자 마을 주민과 인근 부대에서 나온 장병들이 축사 복구에 여념이 없었다. 이 마을 40여 축산농가가 사육하던 소 1527두 가운데 213두만 구조됐다. 목숨을 구한 소들은 마을 축사에 혼합해 수용돼 있다. 이곳이 일종의 임시 대기소 역할을 하는 셈이다. 나중에 소귀에 붙은 일련번호를 확인해 소 주인을 찾아 준다고 한다. 

봉성농장 주인 백남례(61)씨는 “주민들의 집은 물론 삶의 터전인 축사가 모두 잠겨버렸다”며 “엊그제는 길바닥이 소 사체로 가득했다”며 몸서리를 쳤다. 백씨는 사육하던 270여두 중 겨우 30여두만 구했다. 백씨는 “갑자기 물이 불어나면서 축사에 있는 소들이 전부 물에 빠져 죽을 것 같아 문을 일부러 열어 놓았다”고 했다. 오전에 경남 하동군청으로부터 자신의 소가 생존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거센 섬진강 물살에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와중에 백씨 농장에선 마을이 침수되는 난리 통에 지붕 위에 올랐다가 구조됐던 암소가 구출 직후인 11일 새벽 쌍둥이 송아지를 출산했다. 백씨는 “유독 저 소만 지붕에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해 결국 마취총으로 재운 다음 구조했다”며 “새끼가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고 울먹였다. 이어 “살아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쌍둥이까지 무사히 출산하다니 너무 대견하다”고 말했다.

양정마을 이장 전용주(56)씨는 “주민들의 집은 물론 삶의 터전인 축사와 비닐하우스가 모두 잠겨버렸다”며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를 해줘야 조금이나마 힘이 될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기름섞인 물을 마신 탓인지 사료도 못 먹고 물도 안 먹는 소들이 많다”며 “향후 피해조사에서 눈에 안 보이는 부분까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마에 지붕 찢겨나간 양정마을 축사 ⓒ시사저널 정성환
수마에 지붕 찢겨나간 '양정마을 축사' ⓒ시사저널 정성환

피해액 ‘눈덩이’…침수 원인 놓고 논란 가열될듯

구례군이 공공시설·민간 피해조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군은 10일 오후 11시 기준으로 잠정피해액이 1268억 원이라고 밝혔다. 이는 9일 오후 7시 추정치보다 700억원이 늘어난 규모다. 피해조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피해신고가 지속해서 접수되고 있어 피해 규모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구례에서는 지난 8일 집중호우로 전체 1만 3000가구 중 10%에 달하는 1165가구가 침수 피해를 입었고, 이재민 1318명이 발생했다. 또 농경지 400여ha가 물에 잠기고 가축 3650마리가 피해를 봤다. 5일 시장 157개 점포는 모두 2.5m 높이의 물에 잠겼다. 구례군은 상가당 최소 피해액을 평균 3000만 원으로 예상했다. 상하수도 사업소, 종합사회복지관 등 공공시설 67개소가 물에 잠기며 기능을 잃었다. 

주민들은 섬진강댐에서 갑자기 물을 흘려보내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해 향후 침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놓고도 논란이 치열할 전망이다. 주민 박모(64)씨는 “비가 많이 오는 것으로 예보됐으면 섬진강댐에 있던 물을 미리 빼놨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제방이 무너진 것은 급격하게 늘어난 방류량 때문”이라고 했다. 

영산강홍수통제소는 지난 8일 섬진강댐 수위가 계획 홍수위인 197.7m에 근접한 196.7m까지 차오르면서 이날 오전 6시 30분부터 수문을 열고 방류를 시작했다. 오전 6시30분부터 초당 1000톤을 방류하다, 오전 10시30분부터는 초당 1700톤을 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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