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경기 강행’ 고집하는 아슬아슬한 KBO의 도박
  • 이상평 야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23 15:00
  • 호수 161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기 축소되면 중계권료도 ‘위태’…“선수 부상·경기력 저하 우려” 애써 외면

갈수록 상황이 호전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는 코로나19 유행은 스포츠계에도 치명타를 안기고 있다. 무관중 또는 최소한의 관중 입장으로 간신히 시즌 일정을 진행하고 있는 국내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프로야구 또한 큰 고민에 빠져 있다. 과연 정상적인 일정 소화가 가능하겠느냐는 현실적인 고민이 그것이다. 이미 미국 메이저리그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올 시즌 팀당 60경기로 대폭 축소된 ‘미니 시즌’을 운용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개막이 당초 예정보다 한 달 이상 늦어진 KBO리그는 지금도 팀당 144경기 전 경기 소화를 고집하고 있다. 지난 4월21일 개막을 논하기 위한 회의에서 KBO는 144경기를 전부 강행해 시즌을 진행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연히 우려하는 목소리는 컸다. 팬과 전문가들은 물론 구단 내에서도 개막이 기존 계획보다 한 달 이상 늦춰진 만큼 정상적으로 144경기를 전부 치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았다. 무엇보다 코로나 상황은 계속 진행 중이었다. 지난 시즌 우승팀인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의 경우, 언론 인터뷰에서 직접적으로 이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KBO의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결정으로 현재 팀들은 크나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5월6일 잠실야구장에서 방송 관계자가 프로야구 두산-LG 무관중 야간경기를 중계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대 최장기 장마 직격탄까지…취소된 경기 너무 많아

한반도의 기후적 특성에 따라 KBO는 원래 7~8월 장마 기간 우천 취소, 그리고 취소될 경기들에 대한 가을 예비일 편성에 상당히 익숙한 리그다. 그러나 올해는 늦어진 개막으로 인해 포스트시즌을 고척돔에서 겨울에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고척돔을 11월3일부터 대관하기로 한 KBO는 어떻게 하든 11월2일까지 모든 정규시즌 경기를 끝내겠다는 입장이다. 그 때문에 예비 편성일을 넉넉히 배정할 수 없어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야기될 문제는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해 중부지방의 장마가 54일간 지속되면서 기상 관측 이래 가장 긴 장마의 악재까지 덮쳤다. 특히 이번 장마는 비가 열대지방의 ‘스콜’처럼 좁은 지역에 강하게 많이 내리는 특성을 보이면서 야구경기 진행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장마 기간 동안 어떻게든 경기를 진행해 보려 갖은 노력을 했지만, 대전·사직처럼 배수시설이 좋지 않은 구형 구장들은 물론,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처럼 비교적 배수시설이 좋은 최신식 구장들도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비를 견디지 못하고 취소되기 일쑤였다.

결국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면 현재 70%를 바라봤어야 했을 경기 진행률이 겨우 60% 정도밖에 도달하지 못했다. 휴식일인 월요일 경기 편성, 서스펜디드 게임 등 기존에 하지 않던 방안들까지 내놨음에도 이 정도 수치밖에 이루지 못한 것이다. 예년 같으면 9월은 시즌 막바지 순위 결정으로 포스트시즌 진출 팀의 윤곽을 드러내는 시기다. 결국 KBO는 기존 예정됐던 9월이 아니라 혹서기인 8월25일부터 더블헤더를 진행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혹서기에는 선수들의 체력적 부담이 매우 크기 때문에 더블헤더는 진행되지 않았었는데, 이를 깬 것이다.

혹서기 더블헤더로 인해 선수들, 특히 투수들의 체력적 부담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따른 부상 위험도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또한 너무 많은 더블헤더로 인해 회복 시간이 줄어든다는 점, 월요일 경기 등으로 휴식일이 없어지며 선수들이 체력과 컨디션 관리를 하기 힘들다는 점 역시 모두 구단들의 불만을 높이는 요소다. 이미 겨울에 포스트시즌을 치르기로 한 탓에 선수들의 부상 위험도가 높아진 데다, 포스트시즌 전 경기를 고척돔에서 모두 치르기로 하면서 키움을 제외한 다른 9개 팀들의 불만을 샀던 상황에서 더 큰 불만 요소를 안기고 있는 상황이다. 선수들의 부상 위험도를 높이는 타이트한 스케줄에 대한 팀들의 우려가 괜한 걱정이 아니라는 것은 올 시즌 유독 잦은 선수들의 햄스트링 부상에서 알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2월3일 KBO-지상파 3사 업무협약 및 중계방송권 계약 조인식을 마친 후 정운찬 KBO 총재(오른쪽 두 번째) 등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처음부터 무리였던 스케줄, 그럼에도 강행하는 이유는? 

정부가 8월15일 수도권을 중심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로 다시 격상하면서 프로야구 경기 또한 ‘무관중 경기’로 되돌아간 상황에서도 KBO가 현재 팀당 144경기 전 경기 강행 고집을 굽히지 않는 데 대해 팬과 전문가들의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또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경기 수를 줄여 현장 관계자들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KBO가 경기 수를 축소하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돈 때문이다.

KBO는 지난 몇 년간 이어져 온 프로야구 흥행으로 굉장히 큰 규모의 계약을 연달아 맺어왔다. 지난해 초에는 네이버·카카오 등 5개 기업의 통신-포털 컨소시엄과 뉴미디어 중계권으로 5년간 1100억원짜리 계약을, 올해 초에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에 지상파 3사와 중계권으로 4년간 2160억원짜리 계약을 맺었다. 이 두 계약만 해도 연평균 76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물론 구단들과 수익 분배를 해야 하지만, 메인 스폰서를 비롯한 다양한 마케팅 관련 계약들까지 고려했을 때 KBO는 돈방석에 앉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그러나 연평균 760억원에 달하는 금액이 사실상 경기 중계권 계약이라는 점이 ‘144경기 강행’이라는 무리수를 고수하게 된 배경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KBO가 맺은 계약들은 대부분 144경기로 시즌이 진행된다는 전제하에 맺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144경기를 전부 진행하지 못한다면 계약된 금액을 전부 받을 수 없거나, 더 나아가서는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10개 구단도 마찬가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입장 수익 대폭 감소로 모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단들의 사정 역시 현장의 불만이 다소 있더라도 더 큰 재정적 손실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말한다.

144경기 강행을 결정한 지난 4월 이후 많은 비판에도 KBO는 월요일 경기 편성, 혹서기 더블헤더와 같은 유례없는 카드를 꺼내들며 전 경기를 모두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확고히 했다. KBO가 재정적 이유를 내세웠음에도 비판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은 KBO가 현 상황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보완점을 내놓아야 한다는 팬과 전문가들의 뜻이 아닐까. 전 경기 소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수준 높은 경기력과 선수들의 건강 및 안전 문제인 것이다. 무리한 일정으로 선수들이 부상에 신음하고, 이게 경기력 저하로 이어질 경우 자칫 더 큰 화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KBO의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