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에게 민주화 세대는 무엇일까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24 14:00
  • 호수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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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대 진영’ 문제 아닌, ‘새로운 것 대 낡은 것’ 문제임을 생각해야

우리 사회는 여전히 많은 정치적 갈등을 겪고 있다. 과거에는 ‘진보 대 보수’라는 구도 속에서 갈등과 충돌이 생겨났지만, 이제는 그 갈등의 구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조국 사태부터 고 박원순 시장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건을 거치면서 기성세대들은 모든 것을 진영에 따라 판단했고, 진영에 따라 이중적인 잣대를 적용했다. 그러니 남은 것은 ‘진영’이었고, 사라진 것은 ‘사람’이었다. 그러자 2030세대는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어째서 같은 진영, 같은 편이라고 해서 자기들끼리 그토록 감싸주고 있는가. 

세대 간의 차이는 역사적 경험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지난 역사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끼리는 한 시대의 동질적인 의식을 갖게 되기에 세대론이 존재하게 된다. 586이라는 용어로 상징되던 중장년 기성세대는 민주화를 이끌었던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최루탄을 맞으며 직접 투쟁을 했든, 아니면 멀찌감치 그 광경을 지켜보며 박수를 쳤든, 독재권력을 무너뜨고 민주화를 성취했다는 자부심은 이들 세대의 삶을 뒷받침해 주는 한 축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 세대에게는 ‘우리는 공공의 선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라는 집단적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조국 전 장관 일가가 겪은 일견 모진 수사에 분노하며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웠다고 믿는 ‘서초동 촛불’들의 모습이 그러했다. 고 박원순 시장이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며 뭔가 억울한 상황에 내몰렸을 것이라고 믿었던 추모의 열기 또한 그러했다. 조국이든 박원순이든, 논란의 당사자들을 부정하면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 같은 동질적 의식을 이 세대는 갖고 있었다. 그래서 차마 그 사실들을 인정하고 마음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게다가 서로가 너무 많이 얽히고설켜 인간적 의리를 저버리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 여성에게 의심의 시선을 던지는 세대 내부의 흐름이 견고하게 만들어진다.

8월1일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인천공항공사 직원 및 취업준비생 등이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8월1일 서울 청계천 광통교에서 인천공항공사 직원 및 취업준비생 등이 인천공항공사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규탄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30 눈에 비친 기성세대는 ‘자기들만의 진영 안에서 사는 사람들’

그러나 2030세대는 기성세대의 이 같은 이율배반적 태도를 납득할 수 없다. 이들 세대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의 평판과 업적 같은 것이 아니라, 오늘 그가 저지른 잘못이다. 2030세대의 눈에 그 사건들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상처를 준 불공정 행위’였고, ‘서울시장이라는 권력에 의한 성추행’이었을 뿐이다. 논란의 당사자들과 얽힐 것도 설킬 것도 없어 거리를 두고 있는 세대이기에 냉정한 객관성을 유지하게 된다. 일면만 보고 극단적 판단을 내릴 위험은 있지만, 사실을 덮고 은폐할 이유는 없다. 어쩌면 진영이나 연줄 같은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실에 다가갈 조건을 갖추고 있는 세대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을 이끈 것은 20대와 30대의 지지 철회로 나타난다. 시사저널의 이번 ‘2030세대 여론조사’에서도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부정적 의견(53.0%)이 긍정적 의견(41.1%)을 크게 앞서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지지 기반이었던 2030세대의 이반은 그동안 있었던 많은 일이 복합적이고 누적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특히 조국 사태,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 등에서 대두된 불공정 시비, 그리고 주거 사다리를 걷어차 내 집 마련의 꿈을 사라지게 만든 부동산 정책에 대한 반발이 쌓여 지지를 철회한 것으로 파악된다. 시사저널 조사에서 부정적 응답자들이 “대화·타협 없이 독선적이어서”라는 이유를 가장 많이 꼽은 사실은, 다수의 힘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데 대한 반감이 이들 세대의 여론을 한층 악화시켰음을 말해 준다.

2030세대는 특정 진영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무당파적 특성을 상대적으로 많이 갖고 있다. 그래서 어떤 정권이나 정당에 대해서든 상황에 따라 지지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하는 유동성을 보인다. “아무리 잘못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미래통합당 좋은 일 시킬 수는 없지 않냐”며 문재인 정부를 지켜주자는 민주화 세대의 말에 설득당하지 않는 것이 이들이다. 시대정신을 말해 왔던 민주화 세대이건만, 2030세대의 눈에 비친 그들은 ‘시대’도 ‘정신’도 놓아버린 채 자기들만의 진영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한 시대를 이끌어 오늘의 민주화를 만들었다는 세대이건만, 어느덧 자식뻘 되는 세대로부터 ‘꼰대’ 소리를 듣는 위치가 되어 버렸다. 결국은 ‘라떼는 말이야’로 돌아가 자신들이 가져왔던 신념을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는 민주화 세대. 그러니 노력한 만큼 보상받게 해 달라며 불공정의 문제를 제기하는 그들에게, 어느 여당 의원은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임금 2배 받는 게 오히려 불공정”이라는 초점이 전혀 빗나간 훈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직접 보고 들은 경험에 따라 판단하는 2030, 훨씬 합리적

민주화 세대가 2030세대를 상대로 벌이고 있는 싸움은 결국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과거를 인정해 달라는 ‘인정투쟁’이다. 이들은 말한다.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짓을 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짓을 하지 않으리라 보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2030세대는 지켜봐왔다. 누구나 ‘기게스의 반지’(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마법의 반지로, 이 반지를 끼면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를 끼고 나면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있음을 이들은 눈으로 보면서 알아왔다. 자신들의 경험을 절대화하는 기성세대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보고 들은 경험에 따라 판단하는 2030세대는, 생각보다 훨씬 합리적이다.

우리 세대의 많은 이가 그러했듯이, 필자 또한 민주화를 위해 함께했던 일원이었음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세상에서 벌어지는 광경들을 보면서 평생 가져왔던 그 자부심이 무너져 내림을 느끼기 시작했다. 욕하면서 닮아버린 ‘내로남불’의 모습들, 옳고 그름을 가리기에 앞서 누구 편인지부터 따지는 모습들, 젊은 세대가 받고 있는 상처를 이해하고 껴안기는 고사하고 훈계부터 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며, 우리 세대가 정녕 역사를 위해 자신을 던졌던 그 세대가 맞는가라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자신들의 소중했던 과거를 지키기 위해 우리 자식들이기도 한 미래 세대와 말도 안 되는 싸움을 벌이는, 어느덧 ‘꼰대’들이 되었고 또 다른 기득권 세력이 되어 버린 것이다. 

민주화 세대는 자신들이 살았던 과거를 지키려 하고 있고, 2030세대는 자신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새로웠던 것이 어느 사이에 낡은 것이 되었고, 다시 새로운 것에 의해 거부당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눈을 갖고 보면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순리다. 그렇다면 더 이상 욕심 부리지 말고 기꺼이 우리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 옳다. 이 세대 교체는 생물학적인 나이를 넘어 민주화 세대가 갇혀 있던 낡은 사고를 비로소 넘어서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이제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것은 ‘진영 대 진영’의 문제가 아닌, ‘새로운 것 대 낡은 것’의 문제임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 세대가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렀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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