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 심층 인터뷰 “소통 대통령이 불통 대통령 됐다”
  • 김정록 자유기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08.24 14:00
  • 호수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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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향해 거침없이 비판 쏟아내는 2030 시민 10인 거리 인터뷰

문재인 대통령의 든든한 지지 세력이던 2030세대가 현 정부에 등을 돌린 데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뒤따랐을 것이란 전문가들의 평가가 이어진다. 지난해 조국 사태를 비롯해, 올해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촉발된 공정성 논란, 여당 소속 지자체장의 연이은 성추행 의혹,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 회계부정 의혹, 청년 일자리·부동산 혼란과 같은 경제 문제 등이 크고 작은 요인으로 작용해 젊은 층의 민심을 서서히 돌아서게 했으리란 분석이 그것이다.

시사저널은 2030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고자 여론조사 실시와 함께 거리에 나가 20~30대 시민들을 만나봤다. 임기 초 문재인 정부를 향했던 큰 기대감이 왜 지금 실망감으로 바뀌었는지 들어보기 위해서다.

ⓒ시사저널 이종현
ⓒ시사저널 이종현

“보수정권보다 말할 자유 줄어든 것 같아”

“‘소통 대통령’을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이 ‘불통 대통령’이 됐다.” 아르바이트생 김동영씨(28)는 문 대통령이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말에도 좀 더 귀 기울여주길 기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집값 급등 문제에 대한 일방적 대책이나 대북 관련 과도한 저자세 등 부정적 여론이 많은 사안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을 잘 듣지 않는 것 같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김씨는 “따가운 반대 목소리도 참고해서 정책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길 여전히 바라고 기대한다”고 밝혔다.

기자 지망생 변은샘씨(여·27)도 이와 비슷한 지적을 했다. 그는 “진보 정부가 들어서면 비판적 목소리도 좀 더 자유롭게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일부 극성 지지자들 때문에 언론이나 시민들이 비판하는 목소리가 차단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변씨는 “오히려 보수정권보다 더 말할 자유가 줄어든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경제 실책을 비판하는 청년도 적지 않았다. 이들 역시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무역업에 종사하는 권덕호씨(29)는 현 정부에 부정적으로 돌아선 주된 이유로 부동산 문제를 꼽으며 “집값 잡겠다고 말은 하고, 정책도 계속 나오는데 계속 오르기만 한다. 그 피해는 돈 없는 서민들한테 몰린다”고 지적했다. 권씨는 “특히 나 같은 사회초년생은 정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해도 집 살 꿈을 꾸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익명을 요구한 취업준비생 황아무개씨(30) 역시 고질적인 청년 일자리 문제를 꼽았다. “최저시급은 올리는데 정작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나름대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어찌 됐든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융학 전공 대학원생 홍아무개씨(29)는 정권 초기 문 대통령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기대를 가졌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경제와 코로나19 확산 등 외부요인이 있기도 했지만, 결국 어떠한 경제효과도 보지 못했다”며 “그 와중에 실효성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돈 뿌리기식 정책으로 재정 적자만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미래세대인 우리에게 짐으로 돌아오는 것 아닌가”라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2030세대들은 현 정부에서 연이어 터진 여권 인사 관련 성범죄 의혹에 대한 대처 방식에도 실망감을 드러냈다. 익명을 요구한 공무원 김아무개씨(여·32)는 “대통령 스스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고 한 만큼 젠더 문제에서 진보적일 것으로 기대했다”며 “그래서 이번 성 관련 이슈가 터졌을 때 대통령이 애매모호한 자세를 취한 점에 특히나 실망했다”고 말했다. 최근 안희정 전 충남지사 모친 빈소에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범죄 의혹 와중에 피해자 보호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은 점을 구체적 이유로 지목하며 “성 관련 범죄를 방지하는 정책이 세워지지 않는 한 다시 대통령을 지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공정 강조했던 대통령 말, 구호에 그쳐”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경지영씨(여·29)는 정부 정책이 되레 성 평등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씨는 “부동산이든 출생 장려 정책이든 모두 ‘정상가족’이란 프레임에 갇혀 있다”며 “남성 중심의 국회에서 여성 국회의원 비율을 올리겠다던 약속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젊은 세대는 1인 가구가 많은데 청약제도 등으로 집을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결혼하지 않은 청년이 집을 얻을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되길 바란다”고 얘기했다.

자영업을 하는 이정민씨(32)는 여전히 현 정부를 지지하는 편이라면서도, 성범죄 방지 대책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씨는 고위공직자들의 성 관련 논란이 반복되는 점을 짚으며 “반성하는 모습과 재발 방지를 위한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측근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대통령이 단호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개혁정책들보다 여성 인권과 같은 기본적 가치가 존중되는 게 먼저”라고 덧붙였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취임 당시 대통령의 말도 달콤한 구호에 그쳤다.” 취업준비생 조수현씨(31)는 정부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조씨는 “특히 노동을 존중한다면서 ‘노동자들은 이제 을(乙)이 아니다’ 같은 발언이 나온 데 대해 크게 실망했다”고 밝혔다.

2030세대 분노의 주요인으로 꼽히는 ‘공정성 논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의견을 피력하는 이들도 있다. 이른바 ‘조국 사태’에 대해 경지영씨와 홍아무개씨는 “분노보다는 무력감에 가깝다”고 했다. 홍씨는 “원래 기득권들이 다 그랬던 것 아닌가”라며 “오히려 그렇게 해도 다른 대안이 없는 데 무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촉발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에 대해선 정부에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권덕호씨는 “정규직화로 가는 길에 여러 논란이 있지만, 그래도 비정규직 문제를 푸는 방향으로 가는 게 옳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영씨는 “정규직화되는 비정규직이 기존 정규직들과 똑같은 처우를 받는 것도 아니어서 크게 불공정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전히 문재인 정부를 지지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외국계 무역업에 종사하는 임정훈씨(29)는 “부동산, 청년실업 등에서 청년 세대가 실망한 점을 이해한다”면서도 “경제 문제는 어느 정부에서나 있었다는 점에서 이게 현 정부만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씨를 비롯해 다수 청년들은 현재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선 하나같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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